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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Feb 11. 2019

쫓겨나다

갑과 을

얼떨결에 전화위복의 기회를 준, 
우리를 쫓아낸 피터와 모나 커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집 앞 풍경


# The House with a View


포르투갈 중부 지방의 메다 데 무로스(Meda de Mouros)란 시골 마을에서 한참 땅을 알아볼 때였다. (아아~~! 그랬다! 땅을 보러 다닐 때도 있었다!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유럽에서 땅 보러 다녔다.'는 이 말은 얼마나 럭셔리 한가! 하하!) 

우린 폰타네이라(Fontanheira. ‘강한 바람’이란 뜻이다.)란 이름의 집을 렌트해서 살고 있었는데, 집이 커서 추웠고 태양열 판이 낡아서 전기가 끊기기 일쑤였지만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전망과 자연, 벽돌집의 예쁜 인테리어 때문에 예산 초과의 월세에도 불구하고 몇 달 동안 살던 집이었다. 이 집의 주인은 이십몇 년 전 이 마을에 터를 잡은 60대의 네덜란드 커플로 근처에 새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우리는 계약서 없이 서로를 믿고 유동성 있게 처리하자는 식으로 구두계약을 했다. 


그들은 친절했다. 

중고차 구입을 도와줬고 부동산 정보가 있을 때마다 알려줬다. 또 근처 다른 마을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서 앞으로 미루가 다니면 좋을 거란 생각에 학교 행사에도 몇 번 갔었다. 우리는 그들의 목장 일을 도왔고 음식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꽤 좋은 주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그들은 우리는 쫓아냈다. 


왜냐고? 사연은 다음과 같다. 


바로 저 집. 추웠지만 예뻤다.


# 쫓겨난 사연


두 커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한 커플은 카우치서퍼, 한 커플은 친구의 사촌이었다. 각각 이틀씩, 총 4일 밤을 머물고 갔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주인이 그걸 탐탁지 않아한다는 걸 알았다. 

난 이해가 안 됐다. 엄연히 월세를 내고 있고 세입자의 권리가 강한 유럽인데, 아무리 내 소유의 집이 아니라지만 친구를 불러서도 안 되는 건가? 이해는 안 됐지만 앞으로 친구를 부르려면 먼저 물어봐 달라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물어볼 일이 생겼다. 


복잡한 사연으로 혼자 딸아이와 여행하는 친구가 있었다. 힘들어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잠시 우리 집에 있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 후 집주인에게 물어봤다. 친구에 대해선 주인도 알고 있었기에 괜찮을 거라 확신했는데, 얼레? 그 예상은 빗나갔다. 이틀 정도는 괜찮지만 1주일 이상 있는 건 불편하며 특히 자기 땅에 친구의 캐러밴이 서있는 게 싫다고 했다. 

실망했지만 별 수 있나. 그 사람들 땅인데 할 말 없지. 이게 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의 비애 아니겠나. 우린 알겠다고, 오지 말라고 하거나 며칠만 있다 가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얘기가 끝난 줄 알았다. 


아아~ 진짜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는데!


다음 날이었다. 날짜까지 기억한다. 2015년 2월 23일. 

편지 한 통이 문 앞에 있었다. 그 편지엔 우리가 사람들을 초대해 이른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불편하니 2주 안에 다른 곳을 찾아 나가라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젊은 여자(우리 친구) 혼자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게 이상하며 행여 그 아이가 마을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곤란해지니 그게 싫고, 또 계속 사람들을 부르는 우리가 싫다는 거였다. 

한동안 멍하게 편지를 바라봤다. 분명 영어로 쓰인 편지였지만 그건 영어가 아닌 외계어 같았다. 언제 우리가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했다는 거지? 안 부르면 그만인 것을 왜 우리 보고 나가라는 거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이렇게 달랐던가? 허허… 기가 막힌 헛웃음이 내 허파를 뚫고 나와 길게 입김을 만들고 찬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카밀은 불타는 용광로 같았다. 


내 앞에선 웃는 얼굴로 친구 걱정까지 해줬으면서
하룻밤 만에 이렇게 돌변해서 편지 한 통으로 통보하다니!
내가 이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을 상대하기 싫다니까! 


카밀은 집주인과의 만남을 거부했고 덕분에 잔금 처리 및 기타 일처리를 모두 내가 해야 했다. (까서방! 비겁한 변명입니돠아아~!)


포르투갈 전통 건축 형식인 치스톤 벽돌집이었다.


# 참으로 어려운 인간관계


그렇구나. 이래서 다들 우리 집, 우리 집, 하는구나.

아무리 잘 지낸다 해도 그들과 우린 결국 돈으로 엮인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였을 뿐, 각자의 이해 상황에 따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 같은 관계였구나. ‘이웃’이란 이름 하에 같이 나눈 시간을 소중히 여긴 우리가 순진한 바보였지. 하룻밤 사이에 갑의 본질을 제대로 느끼다니. 


우린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 간신히 머물 곳을 찾았고, 열흘 후 폰타네이라를 떠났다. (그렇게 해서 찾은 집이 'ep#06 핫 샤워와 세탁기'에 쓴 샘과 까따레나의 집이다!)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 집주인과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카밀은 창밖으로 주인집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린 후 자동차 액셀을 세차게 밟았다. 비포장도로가 유난히 덜컹덜컹 느껴졌다. 먼지를 날리며 새벽길을 가르는 흰 자동차의 뒷모습을 창문 커튼 사이로 주인 내외가 봤을까? ‘저놈들 드디어 내보냈네.’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까? 


그들이 운영하던 숲 속 학교. 여기에 미루를 보내고 싶었는데.


난 세상에서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 모두 나와 동의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한다지만 알고 보면 몇 겹의 껍질이 막을 치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 사이의 관계. 특히 돈이 얽혀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진정 사람 사이에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가능할까? 무라카미 하루끼의 '상실의 시대'에서 여주인공 나오코는 인간 사이에 오가는 언어 자체를 믿지 않았었지. 

‘모두 내 맘 같지 않다’는 그 진실이 무섭다. 쉽게 정을 주고 사람을 믿는 내가 미워진다. 상처는 상대가 줬는데, 왜 내가 나를 미워해야 하는지, 그게 더 싫다. 



# 그래도 어쩌겠어. 전진해야지.


후에 난 편지를 썼다. 왜 쫓겨나야 하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그래도 그동안 잘해줘서 고맙다고. 

카밀은 이런 날 이해 못 했지만 난 끝을 맺는 게 중요했다. 며칠 후 ‘우리가 좀 과민 반응한 것 같다’란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그 말이 허무하게 끝난 인간관계의 공허함을 채워주진 않았다.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지? 누구 저에게 말해주실 분 있나요? 


평화롭게 근 넉 달을 살던 폰타네이라와의 작별은 그렇게 갑자기, 열흘 사이에 어이없이 이뤄졌다. 

마치 정전 때문에 갑자기 꺼진 티브이처럼.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끝나버린 영화처럼. 

아! 잔인한 인간이여. 


우린 괜찮아. 그치, 미루야?


편지를 받은 후 한참 화가 나 있을 때, 인터넷에서 우연히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여성학자인 박혜란 선생님의 인터뷰를 읽었다. 인터뷰 중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진흙탕에 나만 빠지면 불운이지만
여럿이 함께 빠지면 놀이터가 된다.


이 말이 큰 힘이 됐다. 카밀과 미루가 옆에 있으니 지금의 이 어려움은 불운이 아니라 놀이터라고. 이건 다름 아닌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이후 우리의 인생은 다른 국면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우리를 쫓아낸 피터와 모나 커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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