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좋아

이제는 친구를 찾을 나이

by Yellow Duck


같이 가, 친구야!


# 미루의 첫 친구


여행하며 미루에게 제일 미안했던 때는 혼자서 노는 걸 볼 때였다. 항상 이동 중이었고, 머문다 해도 외딴 시골이어서 같이 놀 수 있는 또래 친구를 찾는 게 늘 어려운 숙제였다. 기관에 갈 기회가 없던 미루는 나뭇가지를 벗 삼아, 떨어지는 꽃잎을 벗 삼아, 흙덩이를 벗 삼아, 고양이와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놀았다. 미루의 표정에서 미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다고 친구들은 말해주었지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에 스스로를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척 기특하면서도 짠함과 미안함은 같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릴리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올리비아라는 친구가 생겼다.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미루의 첫 친구였다. 27개월 만에 첫 친구가 생기다니! 마음이 들떴다. 그동안 어딜 가든 훌륭한 적응력과 친화력을 보여주었기에 올리비아와도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방심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둘은 결코 잘 맞는 사이가 아니었다. 미루는 올리비아를 ‘아비야~ 아비야~’ 부르며 쫓아다녔지만 올리비아는 미루에게 그다지 살갑지 않았고, 미루는 거기에 비명을 지르거나 무는 걸로 대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미루에게도 ‘성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산속에서 친구 없이 혼자 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집에 살게 된 올리비아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얜 누군데 왜 자꾸 내 걸 뺐는 거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성장의 자연스러운 통과의례라 생각했지만 평화롭지 않았던 둘의 관계는 못내 안타까웠다. 처음으로 생긴 친구인데 말이다.


서울에서도 여전히 친구야~! 하고 부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참 이상하다. 미루는 여전히 올리비아가 보고 싶다고 한다. 올리비아뿐 아니라 지금껏 만났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며 보러 가자고 한다.


- 아비야 어딨어? 보러 가자. 아발렐라 (레오의 옛날 이름 가브리엘) 어딨어? 보러 가자. 미누 (베를린에서 자주 만나 놀던 한국 남자아이) 어딨어? 보러 가자. 멀리 있어? 그럼 비행기 타고 가면 되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시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다. 마을은 조용했고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약간의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미루가 목청 높여 소리쳤다.

한국어로 한 번, 네덜란드어로 한 번.


친구야~~ 어딨니~~!! 낀쪄스~~ 바 벤 냐~~~!!


짠한 마음에 나도 같이 소리쳤다.


- 미루야, 엄마랑 같이 불러볼까? 친구야~~ 어딨니~~!!


쳐다보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앉고 같이 까르르 웃으며 소리쳤지만 미루의 웃음을 결코 즐겁게만 들을 수가 없었다. 혼자 잘 놀아도 미루는 항상 친구가 고팠던 것이다.


현재 미루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산속에서 혼자 고양이를 빨래 빨 듯 주물럭 거리며 놀던 촌뜨기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단짝 친구도 있고 좋아 죽는 남자 친구도 있다. 덕분에 나도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차 한 잔에 수다를 떨면서 잘 지내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놀았고, 누가 이렇게 해서 내가 저렇게 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종알거리는 미루를 보면 올리비아랑 치고받고 다다다다 도망 다니던 모습이 생각나서 언제 이리 컸나 싶고, 종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았음에도 하원 후 ‘엄마, 우리 또 누구 보러 가?’ 하고 물을 땐 참 감사하게 된다. 미루에게 친구가 있어서. 친구를 만들 수 있어서.



# 나이 들어서 친구란


나이 들어서 친구는 자산이요 삶의 윤활유라고 했다. 특히 여자는 남자 없어도 돈과 친구만 있으면 늙어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공자 역시 인생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으로 어진 벗을 두라고 하지 않았던가. 난 요즘 친구의 중요성을 부모님을 통해서 본다. 젊은 시절 추억을 되짚으며 같이 여행도 가고 밥도 먹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게, 집에만 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 움직이라고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고, 자신의 처지에 따라 친구 관계는 그 성질을 달리하지만, 결국 인생의 끝자락에 인간에게 필요한 건 외로움을 달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고 그건 인간관계에 의해 충족된다. 그리고 친구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친구가 많으면 장수한다고도 하지 않은가. 새삼 전화기 속 내 친구들을 확인하게 된다. 나에겐 얼마만큼의 친구가 있나? 난 그들에게 좋은 친구인가?


언젠가 아버지 친구분 중 한 분께서 어머니께 보내신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주위에서 좋은 친구들이 자꾸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습니다.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여생을 즐겁게 지내야지요.


치매이신 80살 아버지를 불러내 점심을 드시고 귀가를 확인한 후 어머니께 보내신 메시지였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친구가 많았다. 많이 베푸셨고 유머가 넘쳐서 분위기 메이커였지만 고약한 장난을 좋아하셔서 친구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셨다. 호불호가 갈리는 분이셨지만 그래도 인기가 많았다. 그 메시지를 보여주시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 요즘 세상에 누가 이렇게 친구 챙기노.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친구라도 팍 내쳐버리지. 네 아버진 젊었을 때 워낙 베푼 게 많아서 지금도 친구분들이 그걸 다 기억하고 찾아주시는 거야. 거의 매일 점심 먹자고 부르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철마다 음식 챙겨 보내고... 요즘에 누가 그라노?


난 왜 아버지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못 따라가는 걸까. 항상 친구가 고픈 미루가 외할아버지를 그대로 닮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러지 못했으니…


미루야, 네가 먼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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