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잡설 #5-20190712

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by Yellow Duck

오늘의 잡설 #5 - 20190712

'현타의 날카로운 첫 키스'


1.

어쩌다 보니 또 아침에 잡설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저번처럼 시작은 아침에 했으나 올리는 건 나중이 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온다. (이 '느낌적 느낌'이란 말의 유행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표현이 저렴하지만 자꾸만 쓰게 되는 중독성은 어쩔 수 없는 '느낌'이다.)


2.

그동안 드문드문 페북에 ‘오늘의 잡설'이란 이름으로 평소 스쳐갔던 소고들을 짧게나마 기록해왔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매일은 아닐지라도) 쓰자고 결심한 이유는, 내 노트북 한구석에 박혀 있는 폴더 안의 글들이 아깝기 때문이다. 폴더의 이름은 'writings'이고 이 폴더 안에는 내가 작년 여름에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손가락 끝에 모터를 달아가며 끝냈으나 결국 출판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에세이 초고와, 상황이 바뀌면서 추가로 쓴 글들이 다소곳하고도 소복하게 쌓여있다. 그런데 이 글들과 잡설이 무슨 상관이냐고? 주제 없이 횡설수설하는, 말 그대로 '잡설'이지만 이렇게라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날 '삘' 받아서 폴더 안의 글들을 확! 정리해 진짜 액션을 취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지금은 뭔 생각이 그리 많은지 제대로 정리를 못 하고 있다.) 또 누가 아는가? 나중이 이런 잡설이 쌓이고 쌓여 나름 새로운 문학 장르로 자리 잡는 선구자적 역할을 할지. 잡설은 분명 일기와는 다르다. 그때 나를 작가가 아닌 '잡설가'라고 불러다오. 음홧홧홧!!


3.

결심하고 써서 올리기 시작한 지 두 번째 만에 내가 애정 하는 '최민석' 작가님('베를린 일기', '꽈배기의 맛', ‘미시시피 모기떼의 습격’ 등)께서 페북에 멕시코 여행기를 올리기 시작하셨는데, 사실 그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작가님의 재미난 여행기를 읽다 보면 쓰고 싶은 잡설들이 몽글몽글 스팀처럼 내 머리 위로 올라온다. 물론 작가님처럼 재미나게 쓰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내 글이 하품 나올 정도로 지루한 글은 아니라고 자부하기에 계속 쓰련다. 생각보다 내가 잡생각을 정말 많이 하더라고.


4.

수요일 일정에서 제대로 느낀 '현타'에 대해 쓰고자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약속 때문에 나가야 한다. 다 쓰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느낌적 느낌이 맞았구나. 오후에 올리련다.


5.

이틀 전, 내가 있는 일반인 해금 동아리 '두줄'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를 했다. 노인 요양센터에서 열린 어르신 생일잔치에서 '찔레꽃'과 '첨밀밀' 두 곡을 연주했는데, 그 공연 동영상을 어제 볼 수 있었다. 같은 날, 방탄 안무 전문 댄스 학원에서 방탄의 'Pied Piper'란 노래의 안무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수업 동영상 역시 어제 볼 수 있었다.

아아~~!! 이게 바로 인싸들이 쓰는 ‘현타’라는 거구나! 왜 하필 그 동영상 둘을 연속으로 봐서리, 한동안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진지한 성찰을 해야 했다. 그 동영상을 봤을 때 난 매트릭스의 네오나 다름없었다. 몰피우스가 내미는 빨간색과 파란색, 두 개의 알약 중 그냥 파란색 약을 먹고 환상 속에 있었어야 했는데. 즉, '그래도 내 해금 연주는 들어줄만하지 않아?', 혹은 '설마 내가 그렇게 몸치겠어? 나도 리듬은 탄다고!' 이 환상 속에서 편안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왜 난 빨간색 약을 먹고 매트릭스를 현실을 보았단 말인가! 동영상을 보지 말았어야 했어!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다음 주 화요일에 또 같은 레퍼토리로 해금 연주 하나가 잡혀있고, 다음 주부터 방탄의 아주 빡센 안무인 Fake Love를 배운단다. (이건 뭐 어제 바이올린 사고 내일 바로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세상에, 웨이브 자체가 안 되더라고!) 하아... 그래, 어디든 나 같은 캐릭터 한 명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고 위로를 해보지만, 이 깊은 현타는 어쩔 수 없구나. 에잇! 아줌마 파워를 보여주겠어! 정복할 거야!


6.

그래도 즐겁게 했으니 됐다! 정말 즐거웠다.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그래도 즐겁게 했으니 됐다! 정말 즐거웠다.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그래도 즐겁게 했으니 됐다! 정말 즐거웠다.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그래도 즐겁게 했으니 됐다! 정말 즐거웠다.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그래도 즐겁게 했으니 됐다! 정말 즐거웠다.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의 무한 루프. 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날 벗어나게 해다오.


날카로운 현타의 추억을 곱씹으며 내가 느낀 교훈(?)에 대해 쓸 수도 있겠으나,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음에 쓰련다.

그리하여, 진짜 오후에 올린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래서결론은

#오로지연습뿐

#해금동아리두줄

#웨이브잘하는법




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예전엔 대학로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고,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잡설 #4-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