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느낀 생각을 씁니다.
<Tribute>
1.
'weird'란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기이한' 혹은 '기묘한'이라고 나온다. 'awkward'란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색한' 혹은 '불편한'이라고 나온다. 맞는 해석이긴 한데, 영어의 뉘앙스를 알고 나면 이 해석이 살짝 아쉽다. 특히 이 두 단어로 누군가를 묘사할 때 그렇다. 이를테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유학시절 대학원 다닐 때 난 좀 weird 하고 awkard 한 학생이었는데, 그렇다고 '기묘한 이야기'의 옷장 속에서 괴물 나오는 그런 기묘함이나 처리하기 귀찮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그런 불편함은 아니었다. 그냥 뭔가 안 맞는, 마치 동그라미 쿠키 틀에 네모난 쿠키를 꾸겨 넣으려고 애쓰는 것 같은, 왠지 붕 뜨고 겉돌고 부조화스러운, 하여간 희한한 학생이었다. 그래, 한 마디로 뭉뚱그려 '희한한'이란 말이 맞겠다. 난 weird 하고 awkard 하고 희한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 친구 크리스 도퍼(Cris Dopher)도 마찬가지였다.
2.
뉴욕대 Tisch School of The Arts의 Department of Design for Stage and Film. 같은 과였지만 크리스는 조명 디자인 전공이었고 난 무대 디자인 전공이었다. 대학원 1학년생이면 모두가 들어야 하는 장식 미술사 (History of Costume and Decor) 수업을 제외하면 딱히 같이 수업을 들은 적이 없어서 별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좀 잘난척하고 까칠해 보였고, 독특한 목소리라고 느꼈고, 항상 기침을 해서 '몸도 왜소한데 저렇게 매일 감기를 달고 살면 어쩌나.'라고 생각했을 뿐 그닥 이 친구에게 관심을 둔 적이 없었고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이 친구가 '낭성 섬유증 (Cystic Fibrocis)'란 병을 가졌다는 건, 또 이 병을 가진 사람의 대부분은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72년 생이었는데, 다들 그가 그 나이까지 살아있는 건 기적이라고 했다. 그런 크리스가 어느 날 나에게 룸메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weird 하고 awkard 하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까? 끼리끼리 알아봤던 걸까? 크리스는 2000년대 초반 약 2년간 내 룸메이트였고 최근까지도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미국 시간으로 지난 8월 25일 밤 11시 10분, 48세 생일을 3주 정도 남긴 채 47세의 나이로 다시 오지 못할 레테의 강을 건넜다. 난 어젯밤 페이스북에 그의 엄마가 올리신 글로 그의 죽음을 알았다.
3.
이 친구에 대한 생각을 잡생각이라고 할 순 없겠다. 그래서 오늘의 잡설은 감히 잡생각이라고 쓰지 못하겠다.
4.
이 친구로 말하자면, 크리스에 대해 정의하자면, 그쪽으로만 부각되는 게 불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서바이버 (survivor)'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그는 그냥 사는 게 아닌, 말 그대로 평생을 '생존'했다. 우선 낭성 섬유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부터가 그렇다. 5살까지밖에 못 살 거라는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그는 폐 이식 수술을 받은 42살까지 그 병을 조절하며 버텨냈다. 5살을 넘겼을 때부터 그는 이미 서바이버였다. 새로운 폐와 함께 새사람으로 태어난 그는 마라톤을 뛰었고 오토바이로 전국 일주를 하며 낭성 섬유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모금 운동을 했고 병원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약혼도 했다. 그렇게 잘 사는가 싶었고 결혼식을 올릴 거라며 날 초대했다. 하지만 이식 과정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암이 왔다. 하나도 아닌 간암과 대장암을 이겨냈다. 상태가 조금 나아진 듯싶을 때 그는 몇 년 만에 다시 오토바이로 전국 일주를 시도한다. 그리고 SUV와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고속도로에 사정없이 패대기쳐졌다. 6주 만에 깨어난 그는 마치 조각조각 부서진 프라모델을 다시 끼워 맞추듯 회복의 긴 싸움을 해야 했다. 분명 크리스는 그 싸움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설마 이보다 더 나쁠 수 있겠어? 하지만, 어쩌나, 나쁠 수 있었다. 폐암이 왔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으나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은 그 약을 이겨낼 수 없었다. 평생 불사조로 살 것 같았던 그도 이번엔 날개를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5.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2000년대 초였을 것 같다. 장소는 721 Broadway 학교 건물. 난 게시판에서 룸메이트 구하는 공고를 찾고 있었다. 당시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남자친구랑 살겠다며 나가달라고 해서였을 거다. (ㅠㅠ) 그때 우연히 크리스가 지나갔고, 그런 날 본 크리스는 자기도 곧 이사해야 한다며 같이 아파트를 찾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때는 더더욱 남자와 여자가 같이 룸메이트로 산다는 건 우리나라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정서였는데,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난 오케이를 했고, 놀랍게도 우리 엄마도 오케이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하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그렇게 갑자기 핑거 스냅처럼 룸메이트가 되다니. 같은 과 친구들도 토끼 눈이 되어 미간을 치켜올렸다. 으잉? 까칠이 Cris와 맹한 Yeon이 같이 산다고? 진짜로 weird 하고 awkard 한 조합이었다.
우린 부룩클린 한구석에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자기 이름으로 계약을 한 크리스가 큰 방을 차지했다. 그가 예쁜 고양이 남매 맥과 메이블을 입양한다고 서류에 싸인 했을 때 내가 옆에 있었고 그가 첫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구입하고 자랑질 하고 싶어 난리였을 때 내가 옆에 있었다. (오토바이에게 이름을 붙여줬는데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여배우 이름이거나 극 중 이름이었는데... 록시였나? 남자가 아닌 여자 이름이었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전쟁터 같던 혼돈의 카오스를 뚫고 내가 간 곳은 크리스의 NYU 사무실이었다. 거기서 전철이 다시 운행할 때까지 그 난리를 피해있었다. 종종 같이 코니 아일랜드의 놀이동산에서 유명 핫도그인 네이단 핫도그(Nathan's Hot Dog)를 사 먹기도 했고 프로스펙트(Prospect) 공원에서 롤러 블레이드를 타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커플인 줄 알았지만 우린 그냥 그의 방을 거쳐갔던 여자 친구와 나의 방을 거쳐 갔던 남자 친구의 얼굴을 모두 아는, 굴곡 많은 서로의 연애사를 잘 아는 좋은 친구였다.
아, 맞다. 크리스를 얘기할 때 카우보이 모자를 빼놓을 수 없지. 항상 갈색 낡은 가죽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작은 키를 커버해주는 좋은 패션 아이템이었다. 다른 사람에겐 어색했겠지만 그에겐 잘 어울렸다.
6.
일단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종일 울고 육두문자를 쓰며 욕을 했더니 기운이 없다. 다음 잡설에 더 써야지. 미루가 내 기분 풀어준다고 노력했는데, '엄마는 슬픈데 왜 그리 짜증을 내냐'며 결국엔 울어버렸다. 짜증 내면 안 되는데, 자꾸 이 불공평한 삶에 대한 분노가 뾰족뾰족 가시가 되어 내 몸에서 에일리언처럼 튀어나온다. 그나마 이렇게 글로 푸니 진정이 된다. 마치 그가 내 소설의 가상인물 주인공 같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난 지금 크리스 도퍼란 인물의 일생을 다룬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Yeon Choi란 인물이 Cris Dopher를 보는 관찰자적 시점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15 잡설에서 썼던 '뭣이 중헌디'의 테마는 계속 된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오오오!!!
#편히잠들길나의친구여
#평생호흡때문에고생했는데이젠진짜로편히숨실수있겠구나
#글쓰기는영혼의치유
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예전엔 대학로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고,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