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설 #24 - 20191014

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by Yellow Duck

<변해가네 1>


1.

어제 쓴 글인데 날짜만 바꿔 오늘 올린다.



2.

비밀 하나 밝히자면, 사실 난 '노마드'란 단어가 싫었다. 딱히 우리 상황을 설명할 단어를 못 찾아서 그 단어를 썼을 뿐, 속으로는 항상 노마드임을 거부했다. 현재 상황이 이럴 뿐이지 '언젠가는 제대로 정착해서 멋지게 살겠노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히피이길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까서방은 자긴 평생 돌아다니며 살다 죽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난 '오우, 노노~ 난 결코 캐러밴에서 죽지 않을 거야!'라고 종종 말했다. 까서방은 노마드를 이른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람과 세상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임무를 찾는 모험', 혹은 '흘러가는 대로 상황에 맞춰 자신의 인생을 풀어가는 모험'으로 바라봤지만 난 그 반대로 '변덕쟁이', 혹은 '무언가를 진득하게 제대로 이루어 내지 못하는 인생' 쪽으로 바라봤다. 모험이고 뭐고 다 좋은데,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무릎이 아파 계단도 못 올라가는 때가 되고서도 모험 타령할래?



3.

난 성격이 급하다. 뭘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당장에 이뤄내야 하고 빠른 결과를 원한다. 이런 급한 성격은 꽤 강한 추진력을 내지만 반대로 너무 즉흥적이어서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의외의 복병에 뒤통수 맞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또 뭐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해서 중간에 밍기적거리는 걸 못 참는다. 솔직히 이런 성격의 내가 지금까지 '느린 여행'을 했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아마 '독립적 자원봉사 여행'이건 '공동체 찾기'건 '어떤 목적'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4.

이랬던 내가 슬슬 변한다. 노마드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굳이 빨리 뭘 이루어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예전에는 떠남에 있어, 혹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있어 어떤 목적이 있어야 했는데, 이젠 굳이 목적을 찾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한 어떤 사명감, 혹은 소명의식이 강했는데, 이젠 세상에 뭘 그리 증명할 게 있어서 이리 안달인가 싶다. 그리하여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로도 잘 살 것 같다. 이 변화는 뭘까? 이게 근 3년의 한국 생활이 낳은 결과일까? 이 변화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5.

사람들은 항상 내게 답을 원한다. '왜' 떠나냐고. '왜' 그렇게 사냐고. 전엔 딱 떨어지는 답을 좋아했지만 이젠 슬슬 질린다. 어쩌나, 살다 보니 답이 없는 걸! 내가 종종 미루에게 하는 말이 '그럴 수도 있지.'인데, 이젠 이 대답으로 모든 걸 '퉁' 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이거 내 다음 책 제목으로 할까?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6.

꽤 오랜만에 감기가 올 듯 말 듯, 몸살이 나서 종일 누워 잤다. 사람들은 내 체구를 보고 흔히 약할 거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난 꽤 건강하고 튼튼해서 잔병치례를 안 한다. (물론 허리가 아프네, 어깨가 결리네, 에구에구 엄살떠는 건 누구 못지않게 잘한다.) 그런데 이렇게 몸살이 난 걸 보니 1차 짐 정리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한꺼번에 확 없앨 생각 말고 천천히 정리해야 하는데, 또 급한 성격을 보이며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바라다보니 마음만 급하고 몸만 상했다. 오늘도 지난 일요일처럼 벼룩을 할까 하다가 더 밀어붙였다간 호되게 앓지 싶어서 그냥 이불을 둘러 쓰고 종일 잤다. 카밀은 미루를 데리고 한강으로 뛰러 나갔고, 난 이제야 기운 좀 차려서 빨래하러 나왔다. 미싱이 돌아가듯 빨래방 세탁기는 잘만 돌아가고 난 건너편 단골 커피샾에 앉아 따뜻한 밀크티 한 잔과 함께 이 글을 쓴다. 살짝 막힌 코를 훌쩍이며 아직 헤롱헤롱 하지만 글 쓰기엔 딱이다. 아! 진짜 감기 오면 안 되는데! 안 그래도 엄마들 단체 카톡방엔 독감 주사 얘기가 한창인데...



7.

빨래가 끝났다. 까서방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미루 킥보드를 밀고 한강 따라 압구정까지 뛰어갔단다. 아무튼 이 아저씨, 대단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루랑 피자를 먹고 있나 보다. 난 그냥 집에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다시 자야겠다. 내일 전신 마사지나 받아볼까? 더 큰 탈이 나기 전에 몸을 제대로 풀어줘야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에에~~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에에~~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에에~~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에에~~


그거 아는가? 퀸의 'We Will Rock You' 노래에 맞춰 박수 치다가 '변해가네'를 부르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노마드

#여행

#인생

#답이없네

#그럴수도있지

#굳이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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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예전엔 대학로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고,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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