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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Aug 03. 2021

당신의 판데믹은 어떻습니까?

'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의 시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의 파리가 생각난다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바탕인 이 뮤지컬의 대표곡이 대성당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꽤 장엄한 이 곡의  클라이맥스 가사는 이렇다

  -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이제 난 가사를 바꿔 이렇게 흥얼거린다

  - 로나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계속 록다운을 맞지 백신을 맞지 않은 인간은 어느 곳에도 들어갈 수가 없지~

  청소하며 흥얼거리다가도 문득 내가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 자각할 때분주히 빗질하던 손을 멈추고 포옥 한숨을 쉰다.  

 

  ‘판데믹의 시대. ‘엔데믹이라지만 앞으로 감기처럼 계속 백신을 맞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판데믹은 모두에게 크나큰 생채기를 냈다우리만 해도 그렇다판데믹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거다예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했던 판데믹이지만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그저 몇 달만 버티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누구나 그랬을 거다참 순진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 때 우린 3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한 후 다시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필리핀말레이시아를 거쳐 태국의 남쪽 휴양지인 끄라비(Krabi)에 도착했다카밀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갔는데그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태국 정부가 록다운을 선언하고 공항을 폐쇄하는 바람에 근 5개월을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말 그대로 어쩌다였다당황스러웠지만솔직히 말하면 끄라비 생활은 염장을 지를 만큼 평화롭고 좋았다. ‘평화와 판데믹이라니이런 부조리가 어디 있겠냐만조금의 불편함만 견디면 ‘뉴 노멀쯤은 껌이었다방 두 개짜리 가성비 좋은 집을 렌트 해 여유롭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커피와 함께 의자에 파묻혀 책을 읽다가 ‘겍꼬~’ 하고 우는 도마뱀에게 인사했다하루 다섯 번이슬람 사원의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알라아~’ 기도 소리에 눈을 감고 명상했다일정 지역 안에서는 이동이 자유로웠기에 갑갑하면 오토바이로 정글을 한 바퀴 돌고저녁이면 아오낭(Aonang) 해변에서 하늘과 바다가 보랏빛으로 합체하는 스펙터클 노을 속에 몇백 마리 박쥐 떼가 날아가는 장관을 감상했다섭씨 32도 이상의 무더위였지만 마침 우기여서 오후 4시면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가 내렸다소나기 후의 공기는 내 몸을 정화했고그 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6킬로는 맛이었다매일 근처 단골 식당에서 삼천 원짜리 테이크 아웃 팟타이를 먹었고 무에타이 지역 챔피언 선생님을 소개받아 매주 2번 개인 레슨도 받았다패드를 킥할 때 빵터지는 소리는 코로나쯤이야 바로 KO 시킬 용기와 희열을 주었다

  - 드루와드루와코로나!, 네까짓 거 니킥으로 맞아주것쓰

 

  오죽하면 카밀의 친구가 여기는 판데믹 파라다이스(Pandemic Paradise)!’라고 말했을까입이 쩍 벌어지는 기암절벽과 투명한 에메랄드 바다의심할 여지 없이 지상 최고의 낙원인 이곳을 아무런 방해 없이 조용히 즐길 수 있으니 파라다이스가 아니고 무어랴하지만… 여보게눈치 없는 친구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이 죽어가고최전선의 의료진은 죽어라 고생하고관광업에 의존해 먹고사는 현지인은 미래가 암담한데어찌 그리 무례한 말을 하는가까놓고 말해서 감히 파라다이스’ 운운할 수 있는 건 자네가 결국 언젠가는 떠날 이방인이기에 가능하지 않은가백인 남성인 자네는 기본값이 다르단 말일세이 어수선한 때에 코로나 청정지역에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인데우리 그 운에 감사하며 조금만 겸손하면 안 되겠나그 말당장 취소하게!

  판데믹 시대의 끄라비는 불안한 파라다이스였다. ‘파라다이스란 정체성을 잃을 때 마주할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혼란과 불안에 애타는 속을 감추고 애써 상담사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파라다이스티브이 뉴스 속의 바깥세상겉은 평화로운 현지 세상그리고 그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친 내 이방인 세상축구장보다 넓은 이 세상의 간극 속에 난 5개월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그리고 2020년 7월 말공항이 다시 문을 열자 우리는 네덜란드로 왔다아시아를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충분히 평화를 누리고 떠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그나마 판데믹으로 얻은 게 있다면 감사함의 자각이 아닐까.

 


  10시간 비행 후에 떨어진 네덜란드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판데믹을 대하는 네덜란드의 온도가 태국의 그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대응은 다를 바 없었지만 이를 따르는 사람들의 태도는 달랐다규칙을 잘 따른 태국인과는 달리 규칙 자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고 ?’라고 묻는 태도가 달랐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그 어떤 가치보다 최우선으로 두는 이 나라를누구는 무책임한 이기주의라 비판했고 누구는 당연한 인간의 권리라며 맞섰다. ‘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아시아인으로 자란 난 자연스레 대의에 대해 생각했다아시아와 유럽의 차이를 제대로 실감했고 종종 판데믹 파라다이스가 그리웠다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왜?란 질문과 혼란은 더해갔다한국은 이렇더라다녀온 지인이 전하는 다름에 놀라며 유럽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날 확인했다이렇게 난 판데믹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경계선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솔직히 고백한다이제 난 판단할 수가 없다아니판단을 유보하거나 포기했다는 말이 맞을 거다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누구의 말을 듣고 흘릴지 판단이 어렵고 종종 귀찮기까지 하다근본적으로 과학과 의학에 먼저 귀를 기울이지만 이 또한 각자의 말이 달라서 헷갈린다소위 음모론을 말하고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몇몇 친구들과 멀어졌지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확신에 차서 내게 온갖 링크를 보내며 설득하려 드는지 궁금하다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내 인문과학 소양에 작아질 때그래서 평소 책 좀 더 읽을걸’ 후회할 때감당 못 할 명제와 공부량에 압도되어 무엇을 취할지 결정할 자유가 버거울 때한낮 범상한 인간인 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회피한다대의와 자유 사이에서 무기력해지고 록다운과 백신 패스와 부스터 샷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대신 침묵한다난 비겁해졌다그리고 아이처럼 떼를 쓴다

  - 아, 몰라, 몰라! 다 모르겠으니 그냥 과거로 돌아가게 해 줘! ‘여행자’란 내 정체성을 앗아간 코로나 좀 누가 어떻게 해달라고! 

  속수무책일 때 인간은 대책 없이 억울함만 호소하게 되는 걸까? ‘코로나의 시대가 찾아왔어~’라고 가사를 바꿔 부를지언정, 인류에게 ‘억울함’란 못을 공평히 박은 판데믹을 극복하고 새로운 천년을 쓰려는 마음은 점점 깊어진다. 이렇게 가열차게 글을 쓰는 것도 ‘하늘에 닿기 위해 유리와 돌에 역사를 쓰는 인간’이 되려는 몸부림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비겁한 나에 대한 변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람들이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과 여행지에서의 사진이 SNS에 줄기차게 올라온다. 핀란드에서 오로라를 봤다고, 하와이 해변에서 수영했다고, 모두 활짝 웃고 승리의 V자를 그린다. 이 모든 난리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고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도 보지만 동시에 이 재수 없는 바이러스는 결코 인간과 작별하지 않겠다는 절망도 본다. 가끔 ‘다들 잘만 다니는데행하지 않는 우가 바보인가?’란 생각도 들지만 이내 복잡한 서류를 감수할 만큼 여행에 절박한가자문한다난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으니까천만다행으로 우리 가족은 수퍼 항체인지 여태 아픈 적 없이 건강하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당신은 이 판데믹을 어떻게 버텼나?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시길 빌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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