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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Oct 06. 2022

나는 히피가 아니다.

'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한때 난 공공연히 말해야 했다 히피가 아니라고사람들은 우리가 정착지를 아 (좋은 말로 하면여행했다고, (까놓고 얘기하면떠돌았다고 하면 바로 우리를 히피로 정했다그들이 생각하는 히피가 정확히 무엇일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미디어에서 본 이미지에 기반할 거다알록달록 염색한 셔츠에 배기 팬츠(이른바 똥 싼 바지)를 입고 머리에 밴드를 두르거나 꽃을 꽂고 세상만사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자유분방하게 사는 이미지도어즈 (Doors)우드스톡 (Woodstock)이니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g)이니 하는 것들그럴 때마다 난 가 하는 인생을 찾아 여행할  히피는 아니라고 했다아니우겼다 ‘우겼다 단어를 는 들이 라고 하든 나와 내 인생을 정 카테고리에 고 지 다는 의지의 표방이다.

 

  히피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2015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살 때 포르투갈 중부 지방의 산 속에서 열린 ‘인보우 게더링 (Rainbow Gathering)’이란 모임에 일주일간 여한 바 있다. ‘문명을 벗어나 연 에서 사랑과 화합을 래하며 지내는 공동체 생활이라고 이 모임을 명할  있지만그냥 ‘히피 모임이라고 하면 이해가 이미 히피 마을에서 지낸 이 있어서 뭘 보게 될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그래도 300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히피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었다수시로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레인보우 게더링은 그 종류와 규모가 다양한데세상을 경험하려는 10, 20대 은이들이 대다수지만 아이가 있는 3, 40대 가족도 있고 아우라가 대단한 6, 70대 히피도 있다레드락 리 스타일을 하고 알록달록 날염 을 고 기타드럼바이올린 등 기를 연주하고라후프나 저글링을 하는 사람영화 올드 보이의 전갈 자세 같은 고도의 가 동작을 하는 사람벌거벗고 자연인이라며 온몸으로 주장하는 사람불 앞에서 명상하는 사람에 를 바르고 요상한 뱀 춤을 추는 사람 등 ‘히피’ 하면 생각나는 모든 사람이 모인말 그대로 히피 종합 선물 세트다.

  자연주의를 구하기 때문에 전기 사용이  고 화장실도 을 게 서 쓰는 재래식이며 도 달샘에서 아 신다르는 물에 몸을 씻고 비누샴푸 사용은 대한 자제한다전자 기기 사용이 지여서 카메라나 휴대폰컴퓨터 등은 한낮 고철덩이로 전락한다시계도 다 보니 시공간의 을 놓쳐버리지만오히려 자기 몸과 주변그리고 자연의 변화에 집중하게 된다이 모임엔 리더가 없고 규칙이 없다모임을 주관하는 조직은 있지만 앞장서 지휘하거나 명령하지 않는다모두에게 언권이 있고 서로의 의견을 들으며 숙식 및 워크숍 활동 등이 자발적이고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자유박애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규칙 아 굴러가는 것이다이는 매우 이상적으로 들린다자연으로 회귀하여 사랑을 바탕으로 모든 이를 감싸 안은 모임이라니난 그 공간과 사람이 어내는 에너지에 매료되었고 진심으로 이 세상이 이런 아름다운 에너지로 가득 길 기도했다이 엄청난 마력의 집단에 발을 딛는 저절로 자신의 인생관과 위치를 돌아보게 되고 지구를 더 아끼게 되며 조리한 사회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뭐가 이리 거창하냐고이렇게 좋으면 히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물론 얘기가 이렇게 순조롭게만 간다면 참 좋겠지만글의 초반에 언질을 남겼듯 안타깝게도 내게 그 이상적인 경험은 일주일이 한계였다한없이 아름다울 것 같던 그 공간은 서서히 그 이면도 드러냈다마리화나와 마약에 찌든 공간이었고 혼자 인생을 득도한 것 마냥 허세가 권력을 잡은 공간이었으며 사회와 류하지 한  그들만의 버블 안에 갇힌 철없는 고립의 공간이었다슬슬 곳곳에서 ‘허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허무는 항상 내게 순간의 쾌락과 황홀 후에 오는 벌이었는데대학 시절 신촌의 록카페나 강남의 나이트클럽에서 놀 때도 허무는 가슴을 리는 스피커의 진동보다 강했다허둥지둥 올라탄 2호선 차가 당산 철교를 지날 때 창문 너머 한강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허무를 레인보우 게더링을 빠져나오며 달리던 비포장도로에서 느끼다니같이 갔던 친구는 자동차 들을 바짝 고 장한 경험이었다며 흥분했지만 난  조명에 빛났던 63 빌딩을 떠올렸다. ‘도대체 내가 일주일간 뭘 본 거지?’라고 질문할 때 친구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찾았다고 했고(이상향?!) ‘이런 건 한 번이면 족해라고 생각할 때 친구는 다음 모임에도 가겠다고 했다(이걸 또?!). 누구에겐 진정한 천국인 이 모임이 내게는 왜 허무로 다가왔을까쾌락 너머 레인보우의 정수를 느끼기엔 일주일이 짧았던 이게 내 한계일까단점만 크게 보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내 냉소가 미웠다

  다녀온 후 꽤 오랫동안 상념에 겼다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계속 찾아오며 집은 점점 히피 집이 되어갔지만 (당시 우린 쉐어 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다딱히 동화될 수 없던 난 서서히 그 속에서도 이방인이 되었다주변에서 겉도는 것에 자기 검열이 들어갈 즈음난 상념을 멈추고 결심했다어떤 분류로 날 규정하지 않겠다고방법이 다를 뿐 그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된다고그들은 그들대로 행복할 것이고 난 ‘히피란 카테고리가 아닌 나로서 행복할 거라고.

 


  손사래 치며 규정되기는 걸 거부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했던 카테고리는 있다난 내가 ‘연극인’, 혹은 ‘여행자 불릴  편했다 단어에 자부심도 느꼈다그런데 이젠 연극 작업을 하지 않으니 ‘연극인도 아니요, 여행하지 않으니 ‘여행자도 아니다행동이 없는 한 정체성도 없는 법. 단어 하나에는 수많은 함의가 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함의를 충족할 수 없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아도 날 규정하려는 단어의 침략은 수시로 벌어진다종류도 다양해서 나이인종젠더직업, 성향  각양각색이다어른동양인한국인, 여성, 엄마, 외국인, 이방인 등등… 편한 단어는 하나도 없고여전히  모든 단어가 어색하다.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부르지만 이 역시 편하지 않다. 이 모든 단어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있을까?

 

  내 주변엔 한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단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지키기 위해 투쟁도 서슴지 않는다세상에는 카테고리 안에서 행복한 사람과 카테고리 밖에서 행복한 사람 부류가 있나 보다난 후자다문득 포스트 코로나로 접어든 지금도 레인보우 게더링이 열릴지 궁금하다. 비공개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열리는 모임이니 분명 지구 어느 한구석에서 열리고 있을 거다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충동은 있지만 경험은 역시  번으로 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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