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도 그런가요? 저 혼자만의 얘기는 아니겠죠?
1.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 있어요. 오늘 하루 정말 알차게 보냈어! 뭐 이런 거요. 하지만 시간과 일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죠. 밥을 짓고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은행 일을 보고 남편과 아이의 조잘거림을 들어주다 보면 딱히 자신을 위해 한 일이 없는데도 해는 벌써 지고 있어요. 아, 게다가 전 잠이 많고 게으름을 즐기기까지 해요. 생산성과 게으름이라는 이 이중성 사이에서 전 매일 패배와 승리를 동시에 느낀답니다. 매일 ‘내일부터 달라져야지! 다시 뛰고 요가도 하고 식단도 바꾸고 언어 공부도 하고 목표한 거 다 끝내야지!’ 하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아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유명하죠.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 혹은 이러다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겠구나란 생각. 물론 꼭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무엇’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저에겐 커다란 공포에요. 그래서 생산성에 더 집착하는지도요. 여기서 제 자괴감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습니다.
2.
돋보기가 아니라 그냥 안경을 써야 할 때가 됐어요. 이 세상 모든 게 흐려졌어요. 눈이 너무 좋아서 세상의 보기 싫은 것까지 봐야 한다는 재수 없는 투정은 이젠 옛날 얘기가 됐어요. 다시 보니 정말로 재수 없는 말이었네요. 몸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반년만 지나면 5학년이 된다는 게 실감이 나요. 5학년으로 향해 가는 길은… 순간순간이 살얼음판 같아요. 잘못 밟았을 때 저를 가운데에 두고 우지직! 소리를 내며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금을 상상해요. 그러다 훅 꺼지는 얼음 사이로 살을 베는 찬물에 빠지는 상상도요. 4학년이 될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체력의 차이일까요? 경험치의 차이일까요? 문득 나이 든다는 건 몸의 변화 말고도 자신이 얼마나 구린 사람인지 점점 더 알게 되는 거라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지금이라도 루테인을 챙겨 먹어야겠어요.
3.
저 같은 올빼미형 인간에게 아이의 학교 등교는 끊임없이 돌덩이를 이고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하는 시지프스에게 내려진 형벌과도 같아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 깨우고, 도시락 준비하고, 아침 먹이고, 8시 반까지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는 이 루틴은... 정말이지 고통스럽습니다. 직장 다니시는 분들, 어떻게 매일 출근이란 걸 할 수가 있죠? 대단하십니다. 보낸 후 너무 졸려서 다시 자고 일어나면 해는 벌써 중천에 있지요. 오늘 아침도 이렇게 보냈구나, 한숨이 나옵니다. 다시 자려니 시간이 아깝고 안 자려니 피곤하고. 대부분은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자는 것에 몸을 맡깁니다만... 한동안은 다시 자는 걸 막기 위해 학교 앞에서 아이와 빠이빠이 한 후 바로 그 앞에 있는 호수 공원을 뛰었어요. 팟캐스트를 들으며 천천히 3바퀴를 돌면 6킬로고, 한 시간 정도 걸리죠. 그렇게 뛰고 집에 오면 몸도 개운하고 잠도 사라지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상쾌한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비가 자주 오는 겨울이 시작됐네요. 오늘 아침에도 비가 왔고, 11도에 바람까지 부니 감히 뛸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예, 물론 핑계겠지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올빼미형 엄마는 억울하단 것입니다.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려면 최소 밤 11시 반이나 12시엔 하던 일을 멈추고 자야 한다는 이 현실이 왠지 억울합니다! 밤 시간이야말로 제가 창의력 대장이 되는 최고의 시간인데 말이죠!
4.
백인이 주류인 곳에 살다 보니… 점점 백인들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로 보여요. 얼굴 구분을 잘 못하겠어요. 길 가다가 누군가 저에게 인사하면 누구지? 한참 생각하다가 아! 미루 학교 친구 엄마구나! 혹은 아, 우리 아파트 이웃이구나, 하게 되어요. 서양 사람들이 동양인 얼굴 구분 못하겠다고 하는 거, 전엔 쟤 뭐야? 했는데 이젠 이해가 가네요. 한번 눈썰미는 영원한 눈썰미인줄 알았는데, 눈썰미도 없어질 수 있군요. 조심해야겠어요. 잘못하다간 무례한 사람이 되니까요.
5.
다른 작가의 기가 막힌 글을 읽을 때마다 제 글쓰기 능력을 생각하게 돼요. 물론 저에겐 하등의 도움이 될 것 없는 생각이죠. 제 능력이 그들의 능력에 미치지 못함을 상기하게 되니까요. 절대 지양해야 할 습관입니다. 그저 그 기가 막힌 글을 읽을 수 있음을 축복하며 즐기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글은 제가 쓰고 싶으니까, 또 써야만 하니까 쓰는 거지 스스로를 판단하는 수단은 아니니까요. 사실 전 쓰자고 마음먹으면 바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까서방만 해도 최소 3일간 치통이 없어야 하고 번역 일이 없어야 하며 잠을 충분히 잔 후에야 글을 쓸 수 있는, 참 가지가지 한다 싶은 조건들이 있는데 전 맘만 먹으면 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요. 이 능력을 믿고 그저 되든 말든 써야겠어요. 솔직히 꼭 써야 할 이유도, 출간을 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여기서 1과 연결이 되죠. 전 생산성 강박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6.
전 아주 산만해요. 그림과 글쓰기를 동시에 하고, 글도 여러 꼭지를 왔다 갔다 동시에 쓰고, 책도 여러 권을 동시에 읽어요. 선택과 집중? 저에겐 개뿔 같은 소리예요. 전 동시성의 집합소랍니다. 사실 이러니 일이 진척될 리가 없죠. 아마 제 묘비엔 ‘죽음 외에 또 뭘 하고 있니?’라고 쓰여질 거예요. 가끔은 ‘이 시간에 이걸 하세요!’라고 따박따박 정해주는 매니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전 정말 군말 없이 잘 따르는 성실한 일꾼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이 잘 진척될까요. 때때로 산만함의 위대함을 전파하고 싶지만 이마저도 5분 후에 ‘잠깐만, 나 00 좀 하고 올게’하며 뒷전으로 밀릴 게 뻔하기에, 결국 돈을 많이 벌어서 매니저를 고용해야 할까 봐요. 어, 이야기가 기-승-전-돈으로 가나요?
알아요. 저 참 피곤하게 살죠? 게다가 완벽주의 성향까지... 외부로부터 자극엔 지극히 무디고 영향을 받지 않는 성격인데, 반대로 전 스스로를 괴롭히는 유형인가 봐요. 그 속에서 은근 희열을 느끼는, 자의식 과잉의 변태일지도 모르죠. 트위터에 수시로 짧고 거칠게 제 자괴감을 쏟아놓아요. 이상하게 페북엔 창피해서 못 쓰겠더라고요. 트위터는 제 자괴감 창고에요. 하루에도 몇 개씩 자괴감이 쌓이고 쌓이죠. 그걸로 제 얼굴을 조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면서 쓰는 사람으로서의 제 정체성을 찾아요. 자괴감이 만들어내는 제 안의 사소한 감정을 발전시켜 세상의 사소한 감정까지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자괴감은 어쩔 수 없이 필수인 거네요… 이런 빌어먹을 악순환은 뭔지… ㅎㅎㅎ 그래도 언젠가 자물쇠로 잠긴 제 트위터 창고를 열고 궁상스러웠던 지난 모습에 낄낄거릴 수 있기를 빌어요. 사실… 글쓰기의 모든 시작은 자기혐오이지 않나 싶습니다.
글이 길어졌어요. 그래도 주절거리고 싶었어요. 이래저래 오늘 하루 완전 망친 제 못난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대해 생각하다가 분명 나만 이렇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이 팍 들었거든요. 맞죠? 저만 이런 거 아니죠? 동의받고 싶어요. 쓸 얘기는 끝도 없지만 내일 미루를 등교시키려면 지금 잘 준비를 해야 하기에, 제 자의식 과잉은 여기서 멈출게요. 그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