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 기록했던 걸 정리합니다.
저랑 비슷하게 느끼시는/생각하시는 분 계시겠죠?
2021년 11월 18일
어제 지인과 길을 걷던 중, 한 (생긴 건) 아랍계인 남자가 우릴 보고 대놓고 Fxxxing Asian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와서 처음 듣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이었다. 입술과 치아 사이로 세어 나가는 F 발음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는 지나갔고, 난 Yeah, yeah, Fxxx you back!이라고 소리쳤다. 그가 쫓아올까 봐 살짝 긴장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너무 작아 킥복싱 수업 듣는 걸 포기했는데, 다시 들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무엇이 동양 여자를 만만하게 만드는가.
추가: 쫓아오면 재빠르게 도망갈 순발력 및 체력과, 주변 사람 가리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두꺼운 면상과, 미친년처럼 한국의 찰진 욕을 시전할 배짱과, 정 안 되면 회심의 돌려차기를 할 무에타이 실력을 기를 거라고 결심, 또 결심!
2021년 11월 17일
예전엔 먹방 보는 거 진짜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젠 내가 먹방을 봐.
지금 미루랑 유퀴즈 먹방 모음 보는 중.
유재석과 조세호 참 맛있게 먹네.
미루와 둘이서 침 흘리며 보고 있네.
그러니까 결론은,
지금의 확신을 맹신하지 말라는 것.
지금의 확신에 의심의 여지를 두라는 것.
하지만 확신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궁극적인 결론은,
먹는 것 때문에라도 내년엔 한국에 가고 싶다는 것.
2021년 11월 16일
언어 기초반에 있으면 마치 굴러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는 사춘기 소녀처럼 작은 것에도 크게 반응하고 많이 웃게 된다.
동사 Zien(보다)의 일인칭 현재형이 zie인데 과거형은 zag라고 하자 선생과 학생들 모두 까르르르 한참을 웃었다. (학생은 나 포함 4명)
'잉? 뭐가 이렇댜?'라는 학생들의 느낌과 '그러게 말여, 왜 그런지 나도 몰러~'라는 선생의 느낌이 동시에 교차해서였다.
터키 아저씨 한 분, 인도네시아 아줌마 한 분, 무슬림 아줌마 한 분 (국적은 모름), 한국 아줌마 한 명(나), 그리고 네덜란드 할머니 한 분(선생님).
국적, 나이, 성별, 다 달라도, 그렇게 한 순간 하나로 통할 수도 있다.
그 순간이 참 정겨웠다.
아, 물론,
찐따 되는 것도 한 순간이다.
자원봉사자처럼 보이는 할머니 선생님은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노트에 써보라고 했다.
네덜란드어로 부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쥐가 아니라 아, 베이, 쎄이, 데이, 에이, 에프, 혜이...)
그걸 알려주려는 의도였겠지만,
마치 ㄱ, ㄴ, ㄷ을 배우는 유치원 아이처럼
에이, 비, 씨, 디를 쓰려니 기분이 정말 묘했다.
그 와중에 네덜란드에서 22년을 사셨다는 터키 아저씨는
그 알파벳을 다 쓰지 못했다.
난 제대로 못 읽고,
(g가 '혜이'고, h는 '하'고, J는 '예이'고, 왜 이리 헷갈려!)
아저씨는 제대로 못 쓰고,
우리는 다 평등하다.
2021년 11월 14일
무료로 네덜란드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있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이래저래 시간이 안 맞아서 못/안 가다가 드디어 맘 먹고 지난주 일요일에 시내 도서관에 가서 첫 수업을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선생이 전문적인 선생이 아닌 것 같은 거라. 체계적 시스템 없이 그냥 은퇴 후 자원봉사하는 느낌.
그냥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혼자 유튜브로 공부하거나, 도서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는 수업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언어 교환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지.
이 작은 소도시에서 과연 한국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다가, 옳타꾸나! 페북의 BTS 네덜란드 그룹(BTS NL)에 글을 올려보자! 생각이 들었지. 방탄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어서 네덜란드에 오자마자 가입한 그룹이거든. (물론 그럴 수 있는 곳은 없었... ㅠㅠ) K-Pop 좋아하는 외국인만큼 한국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아미잖아!
Anyway,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섞어서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혹시 한국어-네덜란드어 언어 교환에 관심 있는 분은 메세지 주세요' 했더니 어이쿠, 댓글이 주르르르 달리네! 안타깝게도 대부분 서쪽에 살고 있어서 (암스테르담 및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는 다 서쪽에 있음) 직접 만나 언어 교환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는 댓글들이 오고 갔지. 그리고 드디어!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이 댓글을 달았어! 보니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네. 으흐흐흐... 빨리 만나자고 해야지. 만나서 방탄 얘기도 하고 네덜란드 생활의 즐거움과 푸념을 얘기해야지. 방탄 팬들은 다 이렇게 친절하다니까!
방탄은 내가 우울할 때마다 날 구해줬지. 2019년도 초 내가 아주 심각하게 우울했을 때 방탄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어. 지금 2021년에도 이렇게 날 도와주네.
'그 손을 내밀어 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여전히 내 방탄 최애곡은 Save Me)
2021년 11월 14일
오늘 아침, 네덜란드어 수업에 안 가기로 결정한 후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던 중 개 산책 시키고 돌아온 이웃과 눈이 마주쳐 미세한 까딱임과 함께 ‘Goedemorgen’ 인사했는데, 순간 내가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면 내 사회 반경이 훨씬 넓었겠구나 생각했다. 짧은 인사 대신 강아지가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고 싶은 마음을 눌러야 했으니까.
6년 전 혼자 2주간 영국을 여행했을 때, 도착하는 순간 눈과 귀가 뻥 뚫려서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 기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 홀 뉴 월드! 쟈스민이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던 그 기분. 굳이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딱히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사방의 모든 게 ‘이해’될 때의 그 기분. 난 방언하듯 사람들을 붙잡고 얘기했지. 버스 승객과, 슈퍼마켓 캐셔와, 박물관 직원과... 스몰 토크의 즐거움이란! (아, 첨언하자면 이건 지극히 런던에서만이다. 밖으로 벗어나자 난 pardon?을 입에 달고 다녔다. 엑센트가... 엑센트가...ㅠㅠ)
언어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는 얼마나 짜릿한가! 내 귀에 바벨 피쉬가 탑재되지 않는 한, 한국이나 영어권 국가에서 살지 않는 한, 내가 이방인임은 영원한 디폴트다. 이 나라에서 내가 독립선언문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화요일 아침 수업에는 엄마들이 더 많다는데, 그 수업에 가봐야겠다. 아니 차라리 언어 교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까?
수업 땡땡이치고 하는 생각치고는 참 건방지군. 쓰레기 버리며 시작된 의식의 흐름은 아침 먹을 때까지도 흘렀는데, 내가 까서방에게 더듬더듬 Je gaat vandaag naar Amsterdam? 하고 묻자 그는 Yes, I go later. 하고 답했다. 이 양반아, 내가 노력하고 있잖아... 맞장구 좀 치라고...
그 이웃에게 최소 mooie hund!라고 말할걸, 하고 후회 중이다.
2021년 11월 12일
어제 오후 3시,
미루의 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미루를 기다리며 이런 생각을 했지.
네덜란드에서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돌아다니며 살래.
그럼 자연스레 환갑이 되겠지.
내 환갑은 뉴욕에서 맞고 싶어.
내겐 이른바 제 2의 고향이니까.
코니 아일랜드 해변에서 네이든 핫도그를 먹으며
먼저 간 친구/하우스메이트 크리스를 위해 경배를 들고,
그때 최고로 구하기 힘든 티켓의 뮤지컬을 낮 시간에 볼 거야.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한복판에 누워서
경찰이 여기서 뭐하냐 쫒아낼 때까지
천정의 별자리 장식을 봐야지.
저녁은 부룩클린 내 옛 동네에서
단골 집이었던 테라스 베이글의
블루베리 크림치즈 베이글과 필리 치즈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먹을 거야.
테이크 아웃해서 바로 옆 프로스펙트 공원에 앉아
사람 구경하며 먹는 것도 좋겠지.
거기에 코네티컷 머핀의 밀크 커피도 함께 하면 금상첨화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 남편과 아이가 조인하면 좋겠어.
그렇게 같이 공원을 산책하다가
내 그림이 걸린 전시회를 보려고 첼시로 가는 거야.
갤러리 주인과 농담 따먹다가 사람들 반응도 보고
그림 앞에서 사진 찍어 SNS에도 올리고...
여기까지 상상하는데 미루가 나왔어.
같이 집으로 가는데 동네 집 하나 앞에 매매 표시 간판이 있더라.
아, 저 집 내놨구나.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저 집은 얼마나 할까.
집에 와서 funda.nl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집이 올라와 있네.
사진들을 보고, 침을 흘리고, 가격을 보니 구억 오천이야.
방 5개, 다락 포함 137 평방미터 3층 집이 구억 오천인 게
비싼 건지 아닌 건지 헷갈려 하다가 에라 출출한데 뭐 좀 먹자,
미루랑 같이 간식으로 빵을 먹었지.
그러다 아까 상상한 환갑이 생각났어.
내용을 추가할까 하다가
저렇게라도 된다면 이미 완벽한 환갑이라고 생각했지.
아무튼, 그냥 느낌이 그래.
코로나니 뭐니 다 상관없이
여기에 오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남이 뭐라든 계속 돌아다니며 살래.
운동 열심히 해야지.
팔자 타령은 하지 않을래.
니 팔자야아~~ 아 대박 아 대박 아 대박
니 팔자야아~~ 왕 대박 왕 대박 왕 대박
니 팔자야아~~ 또 대박 또 대박 또 대박
니 팔자야아~~ 걱정은 걔나 줘~!
(위대하신 노라조의 말씀)
2021년 11월 10일
어젯밤에 킥복싱/무에타이 시험 수업을 들었는데, 태국에서 두 달 배운 게 그래도 몸에 좀 남아 있더라. 다행이었지만 절망했던 게, 아, 그래, 여기는 거인국 네덜란드지, 모든 게 다 큰 거라! 다리 보호대도, 글러브도, 물론 수업 듣는 건장한 사람들도. (12명 정도 됐는데 나 포함 여자는 셋, 나머진 다 남자. 다들 너무 커!) 내 다리 보다 긴 보호대에 치여 어기적 킥을 차고, 안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지 않으면 글러브가 흘러내리고, 결정적으로 스파링 상대의 키가 너무 커서 난 주먹을 위로, 상대는 밑으로 내리꽂아야 하는 상황이 너무 웃긴 거라. 나중엔 상대가 제대로 연습을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해서 난 그냥 샌드백을 쳤다. 으헝~ 태국 쌤이 그리웠다... 태국 쌤은 몸집이 크지 않아서 부담 없었는데... 이 사람들아~ 니들이 몰라서 그렇지, 나 이래 봬도 태국 현지에서 태국 지역 챔피언 쌤에게 배운 사람이란 말이다아~~!
등록하기 전에 듣는 시험 수업이라 앞으로 등록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하고 싶지만 이 모든 상황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스파링 시간이 많은데, 나랑 하면 아무래도 제대로 연습이 안 되니 민폐가 될 것 같아. 킥복싱 수업에서 따가 되긴 싫어... 이럴 때 내 키를 실감한다. 작아도 어지간히 작아야 말이지!
같은 시간에 옆 반에선 타이치를 하던데, 타이치를 들을까? 그래도 난 킥복싱이 더 좋은데... 안타깝게도 여성 전용 킥복싱 수업은 집에서 멀다. 아아~~ 태국 쌔에에엠~~
오랜만에 격한 운동을 했더니 삭신이 쑤신다. 으흐흐흐...
2021년 11월 4일
3시에 학교에서 미루를 픽업하는데, 친구 집에서 놀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친구 집이 마침 우리 집 근처라서 안 되는 네덜란드어로 더듬더듬 친구 엄마와 대화하며 걸어갔다. 친구 집 앞에 다다랐고, 픽업 시간 약속을 잡고, 미루에게 '잘 놀다 와' 인사하고 가려던 찰나, 친구 엄마가 들어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했다. 어머나, 이런 제안을 받다니! 친구 엄마가 차를 끓일 동안 아이들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 히히덕거리며 동영상을 찍네 마네 하며 놀았고, 난 녹차 한 잔과 함께 친구 엄마와 손짓 발짓 모든 몸을 써가며 대화했다. 친구네 가족은 11년 전 모로코에서 네덜란드로 이민 온 이민자 가족이다. 그녀는 네덜란드어는 쉬운 언어라며 조금만 공부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게 용기를 주었다. 세상에, 네덜란드어가 쉽다고? 부러웠다. (그녀가 영어를 못했기에 난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가 말하는 네덜란드어에서 내가 알아듣는 단어를 찾아내야 했다)
이때까지 미루가 학교 친구 집에 놀러갈 때,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란 말은 딱 한 번 들었는데, 그때는 터키 이민자 가족이었다. 이런 상황은 이민자 가족에게서만 벌어진다. '들어오세요, 정 안 되면 물이라도 한 잔...' 이런 문화는 네덜란드엔 없다. 이들은 계획되지 않은 방문을 좋아하지 않기에 항상 현관에서만 인사하고 헤어졌었다.
아무튼, 흔하지 않은 일이기에 그녀와 마시는 차 한 잔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2021년 11월 2일
미루가 또래 보다 확실히 작은데,
- 넌 엄마 딸인데 엄마가 작잖아. 어쩌겠어. 네가 딱히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래도 많이 먹고 많이 뛰고 잘 자고, 그러면 크지 않을까? 해보지 뭐.
계속 이렇게 말했더니 받아들이는듯하다.
난 꽤 작은데, 신기하게도 살면서 내가 작다는 걸 별로 인식 못 했다.
(높은 선반 위의 물건에 손이 안 닿을 때 빼고는)
거인국 네덜란드에 있으니 작은 게 유난히 더 튀긴 한다.
하지만 역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키 큰 니들에게 내가 맞출 순 없는 노릇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