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2일
2022년 9월 2일
어제 왜 일기를 쓸 결심을 했는지를 쓰다가
날이 그만 2일로 넘어가는 바람에
문장도 제대로 못 마치고 올렸는데
(9월 1일 밤 11시 59분에 올림)
다시 앉아 쓰는 지금 시각이 9월 2일 오후 4시 47분이어서 그런지
이어서 쓸 ‘매가리’가 없다.
‘메’인가 ‘매’인가?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이것 역시 검색할 매가리가 없다.
매가리는 생선의 이름이기도 해서 저녁으로 생선을 구울까 딴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생선을 굽자니 설거지가 생각나고, 설거지를 생각하니 지금 막혀서 당최 뚫리지 않는 부엌 하수구가 생각나 뒷골이 땡기기 때문에, 이런 끝도 없이 이어지는 딴생각은 진작에 끊는 게 좋다.
어휴, 배관공 부르고 집주인과 돈 얘기하고 어쩌고 하면 그 수고가 장난이 아닌데…
나 또 이런다, 딴생각 스탑!
누가 나 좀 말려달라.
아무튼, 매가리를 추스르고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난 여기서 뭐하고 있나?’,
즉 존재론적 현타다.
어쩌다 난 나이 만 마흔아홉에 고려하지도 않았던 네덜란드란 나라에서 주부로 살고 있나.
글 쓴다 그림 그린다 어쩐다 하지만
내가 진정 하는 일은 뭔가.
쌓인 게 없는 것 같은 내 인생을
박해일과 탕웨이의 얼굴과
박찬욱의 툭툭 끊어 장면을 전환하는 기괴한 연출에서 본 게 이상하긴 하지만,
오랜만에 큰 극장에 앉아 남들 자막 읽기 바쁜 때에
혼자 키득거리며 오롯이 즐긴 분위기도 한몫할 거다.
‘주간 최승연’ 시즌 1때 쓴 첫 글도
평소 생활하며 느끼는 현타에 관한 글이었는데
내가 유독 자주 느끼는 건지
아니면 남들도 자주 느끼는데 말을 안 하는 건지 궁금하다.
시간은 잘만 가고
난 더욱더 꼰대의 나이가 되어가는데
내 목소리가 더 줄어들기 전에
뭐라도 내보려는 발악, 절박함, 조급함.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탄력 제대로 받아서
몇 달 동안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대지 않았던 그림을 끝냈다.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그래도 끝낸 것에 의미를 둔다.
뭐든 끝내는 게 중요하다.
밤 11시쯤 하루를 마감하며 명상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분명 미루 재운다 어쩐다 하면서 어제처럼 제대로 못 끝내고 올릴 것 같아서
그림 끝낸 김에 지금 쓴다.
오늘 네덜란드 날씨는 괜히 기분만 붕붕 뜨게 만드는 경쾌한 날씨다.
카밀과 미루가 소풍 나가서 아파트가 조용하다.
난 날이 아주 좋으면
'내가 진짜 지금 이 순간, 이 공기, 이 햇살을 맞으며 살고 있나?'
묻는 버릇이 있다.
난 여전히 최승연이지만
솔직히 내가 진짜 최승연인지 헷갈린다.
이렇게 계속 질문하는 거,
이거 나만 그런가?
오늘 글은 자의식 만땅이다.
그림을 끝냈으니 다음 그림을 무얼로 할지
사진 폴더를 열어 쭉 봐야겠다.
지금이 5시 32분이니 10분 쉰 후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