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16일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16
2022년 9월 16일
애석하게 난 쪼잔한 사람인 관계로
어제 일로 여전히 카밀에게 화가 나
입꼬리를 평행으로 굳게 잠근 채 꽁해 있는데
낮게 꺼진 집안 공기가 숨 막혔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미안했는지
이 양반, 계속 치근덕대고 엉긴다.
커피도 타다 주고, 백허그도 해주고, 하는 일 잘 되냐고 자꾸 물어보고,
문장 끝마다 붙는 아임 쏘리 아임 쏘리.
그러거나 말거나 나 화났다 있는 대로 티 내며
눈을 도화지에 고정하고 저리 가 저리 가 팔만 훠어이 훠어이.
꾸준한 엉김과 천연덕스러움에 짜증이 발끝에 스며들 무렵
더한 꾸준함으로 결국은 내게 죄책감을 안기는
희한한 재주를 가진 이 양반.
더 꽁해 있으면 나만 더 쪼잔한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는
부조리하고 부당하고 억울한 이 상황.
아니 이 양반아, 왜 사람을 치사한 사람으로 만드나!
내 분노는 정당하단 말일세!
카밀의 이 빌어먹을 의문의 치통은
그 원인을 못 찾은 채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언어의 필터 없이 고통을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내게는 해도 해도 적응 못 할 월요일 출근이다.
아픈 걸 (그게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쉽게 표현 안 하고
안으로 삼키는 성향의 내 눈엔
온 세상이 자신의 고통을 알아야만 하는 카밀의 표현법이
미성숙하고 의젓하지 못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그런데 아까 도화지를 가르는 청록색 색연필을 멈추고
커피를 내리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양반에게 ‘우아하게 아프기’를 요구하고 있나?
이 백조와도 같은 형용모순이 가능한가?
독일 배낭여행 후 허리가 아팠을 때 난 우아했던가.
바닥에 떨어진 연필 하나 몸을 접혀 제대로 못 주울 때
승무의 하이얀 고깔을 나부끼듯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부드럽게 손을 뻗어
궁극의 나빌레라 우아함을 발산했던가.
인간이 고통을 감당하는 형태의 각은
삼각형, 사각형, 십육 각형, 실로 다양할 텐데
난 이 양반에게 몇 각형이 되기를 요구하는가.
각이 무한대로 늘어나 동그라미가 되기를 요구하는가.
오늘이 지나면 풀릴 화지만
치통은 신의 손을 가진 명의를 만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기에
내 정당한 분노는 가소로와진다.
옛날 유머 일번지의 ‘고독한 사냥꾼’에서
코너가 끝날 때마다 전유성이 항상 최양락의 뒤통수를 때렸는데
(내 기억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다)
싸운 다음 날, 카밀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난 전유성에게 뒤통수 맞고 에구구구! 하는 최양락을 생각한다.
내 손바닥이 조용히 울고 있다.
난 그가 가져다준 커피를 무심히 받는다.
여전히 눈은 도화지에 굳건히 둔 채,
난 본질을 바꾸지 않고 여전히 쪼잔하다.
우리가 싸울 때는 이때 뿐이다.
#일기 #이방인일기 #부부싸움 #싸움의본질 #우아하게아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