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18일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18
2022년 9월 18일
뭘 먹으면 몸에서 바로 반응하는 나이가 되었다 .
라면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고기를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며
피자를 먹으면 졸린다.
몸이 내게 말한다.
‘니 내한테 와 이러는데? 니 불만 있나?’
머리로는 식단 조절하며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지만
언제나 찰나의 게으름이 의지를 이긴다.
이른바 ‘자기 관리’라는 환상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그 본분을 충실히 하고 있다.
저녁으로 피자를 먹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졸린다.
먹고 바로 누우면 끝장인데,
로렐라이의 유혹처럼 카우치가 이리오라고 하프를 켠다.
그런데 이건 피자 탓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젯밤에 영화를 본 후 바로 잤었어야 했는데
그놈의 길 건너 파티는 끝날 줄을 몰랐고
그 순간 넷플릭스는 희한한 알고리듬으로 어떤 추천작을 화면에 띄웠고
빌어먹을 내 손가락은 그걸 눌러버렸고
그만 아침까지 정주행을 해버렸다.
블라인드 사이로 푸르스름한 빛이 들어올 때
난 침대도 아닌 카우치에서 잠이 들었다.
혼자였기에 가능했고
오늘이 일요일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뭘 봤냐고?
웃지 마시라, 리얼리티 데이트 쇼 ‘Love Is Blind 시즌 2’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는 게 가능한지
여러 남녀를 모아 놓고 하는 데이팅 실험이다.
(자세한 내용은 검색창에서 찾아보시길)
이 그로테스크한 쇼를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눌러가며
14회까지 다 본 후 난 생각했다.
카밀에게 잘해야겠다고.
그리고 나에 대한 확신을 더 키워야겠다고.
이에 대해 더 쓰고 싶은데 피자 때문에 너무 졸린다.
12시까지 10분 남았으니 내일 더 써야겠다.
자꾸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면 성의 없어 보이는데
내일부터는 쓰는 시간을 앞당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