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크리스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날, 난 종일 울고 하늘을 향해 육두문자를 쓰며 욕했다. 며칠을 기운 없이 보냈고 이 불공평한 삶에 대한 분노가 뾰족한 가시가 되어 에일리언처럼 내 몸에서 튀어나왔다. 한 번은 미루가 자기 전에 '엄마! 내일은 엄청 좋은 날을 보내자!'라고 하길래 '오늘은 안 좋았어?'라고 물으니 '당연히 좋았지! 그런데 내일은 더 좋을 거야.'라고 했다. 매일 좋은 날을 살겠다는 아이의 모습에 크리스가 겹쳤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매일 즐겁게 살려고 했던 그가. 공연 때문에 너무 바빠 좋아하는 드라마를 못 보는 날이면 그는 이건 결코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고, 내가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낼 때까지 투덜거렸다. 귀에 거슬리던 그 특유의 그 투덜거림마저도 그립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법이다. 계속 눈이 퉁퉁 붓도록 울 줄 알았는데, 난 금세 놀이터에서 노는 미루를 보며 웃었고 남편의 따스한 포옹에 미소 지었고 맛난 음식을 사 먹으며 즐거워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쫓고 쫓기며 하루하루를 마쳤다. 삶은 계속됐고, 또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살다가도 문득, 멀쩡히 잘 있다가도 예고도 없이, 어떤 감정이 쓰나미처럼 북받쳐 왔다. 욱했고 화가 났고 울었다. 뭐야, 인생이 뭐 이래? 왜 이리 불공평해? 젠장, 이런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한다고? 크리스의 삶이 짠하다가 내 삶이 짠했다. 노마드일 수밖에 없는 남편의 삶이 짠했고, 앞으로 나보다 두 배는 오래 살 미루의 삶이 짠했고, 그러다 이 세상 모든 이의 삶이 짠했다.
그날도 울고 있었다. 울다 보니 배가 고팠고 갑자기 곱창이 무지 땡겼다. 혼자 단골 곱창 가게에서 만 원짜리 야채 곱창을 하나 샀다. '젓가락은 하나면 돼요.' 했더니 아주머니께서 '혼자 드실 건가 봐요?' 하셨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곱창을 달랑달랑 흔들며 한강으로 갔다. 마침 저녁 6시 40분. 전경 좋은 계단에 자리 잡으니 저무는 붉은 햇살을 받은 성산대교가 멋진 실루엣을 드러냈다. 그걸 보며 곱창을 마구 입으로 집어넣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붉디붉은 노을빛을 받은 구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마치 크리스가 '옜다, 이왕 먹는 거 눈 호강하며 먹어라' 하며 선물을 주는 것 같았다. 입에서 못 할 말이 나왔다. 젠장, 크리스 이 자식... 왜 죽고 지랄이야... 마지막으로 본 크리스의 모습은 2010년 뉴욕에서였는데, 헤어질 때 그가 한 말은 이거였다.
- 글쎄, 과연 내가 널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 있을까?'
잔인한 놈, 그 말을 정말 실천하다니. 이 자식아, 꼭 그랬어야 했냐? 슬퍼도 배는 고팠고, 울면서도 곱창은 맛있었고, 목이 멨지만 꼴딱꼴딱 잘도 넘어갔다. 주변 사람이 쳐다보는 쪽팔림에도 불구하고 엉엉 울면서, 코를 팽팽 풀면서,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 젖은 곱창을 먹었다. 간 사람은 모르겠지만 남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간다며 말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울면서 곱창을 먹게 될까?
죽음은 항상 곁에 있었다. 다른 대학원 동기는 젊은 나이에 피부암으로 죽었고 미국 취업 비자 취득을 도와준 선배는 6년 전 희소병으로 죽었다. 공연을 같이했던 조명 디자이너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공연의 주인공이었던 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크리스의 죽음이 주는 상실감은 더 깊었다. 그의 인생이 남달라서였을까? 죽음을 접하는 상황은 점점 늘어갈 거다. 다들 이런 순환을 겪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를 살아가겠지. 이렇게 난 주변에 의해 커간다.
우리는 대체로 타인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본다. 타인은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삶이나 기구한 삶을 살기도 한다. 이해될 때도, 이해가 안 될 때도, 경외심을 품을 때도, 경멸을 보낼 때도 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을 위로하고 연대 의식을 갖는다. 이렇게 다양한 삶 앞에서 한 번쯤은 오그라드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삶이란 뭘까? 당신에게, 또 나에게 삶이란?
여행하며 참 여러 인생을 만났다. 크리스의 인생도 기구하지만 만만치 않은 인생이 많았다. 단지 시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사건을 겪으며 도망 다녀야 했던 N, 불임으로 고생하다 겨우 쌍둥이를 낳았는데 아이 한 명이 장애로 태어나 계속 병원에 가야 하는 S와 L 커플, 미국 출신으로 터키에 정착해 쿠르드족 난민을 위해 밴드를 만들어 모금 연주를 하는 O, 남극에 깃발을 꽂겠다는 일념으로 네덜란드에서 남아공까지 트랙터를 타고 내려가 오랜 훈련 끝에 남극에 도착한 M… 해는 서서히 성산대교 너머로 저물었고 난 눈물 젖은 곱창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이들을 생각했다. 마침내 밤이 왔고 난 마지막 곱창을 넘긴 후에도 비어 있는 해의 자리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물도 안 마신 채, 목이 콱 막혔지만 개의치 않고.
그가 떠난 지 벌써 2년 반. 여전히 문득문득 그가 생각난다. 크리스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호흡기를 물 때마다, 기침할 때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투사일 수밖에 없는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자신이야말로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라 말하던 그 옆에서 친구랍시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그의 고독을 다독이지 못했던 철없는 내가 밉다.
삶이 고통과 상실을 줄 때마다 난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거나 이렇게 글을 쓴다. 크리스를 주인공으로 뭔가를 쓰고 싶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난 지금 크리스 도퍼란 인물의 일생을 다룬 희곡을 쓰고 있다. Yeon Choi란 인물이 Cris Dopher를 보는 관찰자적 시점의 희곡을.
<씬 1. 2000년 초 뉴욕, 721 Broadway NYU 건물>
(학교 게시판을 보고 있는 Yeon Choi. 그 옆을 지나가는 Cris. 흘깃 그녀를 보고 멈춰 선다. 붉은색 카우보이 모자를 살짝 올리며 기침이 가시지 않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묻는다.)
Cris: Hey, are you looking for a place?’
(고개를 돌리는 Yeon. 예상치 않은 얼굴의 등장에 적잖이 놀란다. 문득 근 3년의 학교생활에서 그와 제대로 눈 맞춤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란 걸 깨닫는다.)
Yeon: Uh... yes?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오늘이 좋은 날이 되길. 어제도 좋았지만 오늘이 더 좋은 날이 되길. 그리고 이 글을 끝낼 때 내일이 더 좋은 날이 되길. 그렇다면 난 크리스처럼 사는 거다. 크리스가 내 친구여서 행운이었다. 그가 날 친구라고 불러줘서 행운이었다. 그가 죽기 며칠 전, 쾌차를 빌며 보낸 내 그림은 주인에게 다다르지 못하고 어딘가에 있겠지. 먼 훗날 내가 직접 전달할 때를 기다린다.
크리스! 널 위해 이 글을 쓴다. 식상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지만 ‘불꽃같이 살다 간’ 널 위해. 알아 둬. 내 글에서 넌 죽지 않는 불사조야. 다시 만날 때까지, 호흡기 없이 편하게 숨 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