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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Oct 13. 2022

마성의 대한민국

'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처음 카밀의 고향인 네덜란드에 대한 인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사람들은 풍차튤립운하그리고 주먹으로 댐의 구멍을 막아 마을을 살리고 하늘나라로 간 용감한 소년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네덜란드를 살기 좋고 아름다운 복지 국가라고 말한다또 영화 ‘헤롤드와 쿠마(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에서 묘사된 것처럼 마약과 매춘이 허락되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언덕을 산이라 우기는 평평한 땅과 그림엽서처럼 예쁘지만 지루한 풍경우울한 날씨세계 3대 상인의 명성에 맞는 인색함과 건조함차별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무지의 인종 차별 등 짧은 기간 방문할 때마다 겪은 일련의 경험들은 내게 이 나라를 ‘꽉 막히고 지루한 나라’로 만들어버렸다물론 카밀의 영향도 있다. ‘네덜란드는 7, 80년대에 만들어진 이미지로 먹고산다며 냉소적으로 말하곤 했으니까

 

  그랬던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장기간 지낼 기회가 생겼다. 2014년 여름여행 가신 시부모님의 집을 봐 드리며 한 달 반을 지낸 거다좋지 않던 이미지가 ‘실제로 살아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네’로 변해갈 즈음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고가 났다전시 상황이었던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반정부군이 쏜 미사일에 의해 격추당한 사건이었다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고암스테르담과 쿠알라룸푸르 구간이었기 때문에 총 298명의 희생자 중 193 2/3가 네덜란드인이었다티브이에선 종일 사건 관련 방송을 했고 희생자 전원의 이름과 출신 지역이 신문에 올랐다카밀은 나라가 워낙 작아 두세 사람만 건너면 다 안다며 천천히 꼼꼼하게 한 명 한 명 이름을 읽었다네덜란드 정부는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를 했고 1962년 여왕의 서거 이후 처음으로 시신이 돌아온 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했다. (네덜란드는 입헌군주국이다

  사고가 난 지 6일 후군용기를 타고 시신이 돌아왔다그 모습이 티브이로 생중계되었다수습된 시신 중 1차로 도착한 40구를 국왕 내외와 총리가 직접 맞이했고, 40개의 관이 군인들에 의해 천천히 운구차로 옮겨졌다운구차가 지나가는 100km 거리의 고속도로는 전면 통제됐고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으며 군용기 도착에 맞춰 전국의 교회에서 5분간 추모 종이 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슬쩍 카밀에게 물었다

  - 이렇게 국장으로 하는 거혹시 반대하는 사람이나 의원은 없었어?’

  - 아니누가 이런 걸 반대해?

  - 아무것도 아냐…

  2014년이었다공교롭게도 이 사고가 일어나기 몇 달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크나큰 비극이 생각나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사뭇 국민을 대하는 국가의 위엄을 느꼈다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그래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자국민이니까이역만리 공중에서 어이없이 한순간에 사지가 흩어져 버린 억울한 네덜란드 국민이니까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질투 어린 시선으로 그 모든 걸 지켜봐야 했을까국가가 국민에게 가져야 할 책임의 범위를 생각하며 네덜란드에 대해 사뭇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일까참 어려운 질문이다초등학교 때 국가의 3요소라 배운 ‘국민’, ‘영토’, ‘주권’이 서로 결을 맞춰 제대로 굴러가는 국가는 과연 세계에서 몇이나 될까? ‘헬조선’이란 말을 참 싫어했다집 떠나면 모두 애국자 된다고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새삼 우리나라의 힘이 보였다국민 수준 운운하며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태도에 알레르기를 일으켰다그러던 차에 ‘촛불’이란 큰 격동이 왔다그때 난 네덜란드에 있었는데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교민 시국 선언 집회에도 참여하고 실시간으로 유튜브를 통해 광화문에서 달아오르는 촛불 파도의 열기도 함께 했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 네덜란드에서 한때 냉소적이었던 우리나라 국민의 무한한 힘에 환희를 느꼈다그리고 그 힘은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결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 2022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핫하다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특종들의 연속이고 이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다쌓여가는 거짓말과 어설픈 해명에 피로가 쌓인다날 한국으로 돌아가게 했던 그 힘이 그리워지고 항공기 격추 사건을 대하는 네덜란드의 태도에서 느꼈던 국가의 위엄을 다시 떠올린다정치적지리적으로 매우 다른 상황에 있는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를 비교하는 건 어리석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묵직한 국가의 힘을 내 조국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라는 극과 극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세계 최고의 인터넷을 자랑하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문화체육부 홍보 문구였던 ‘다이나믹 코리아’가 딱 들어맞는 역동의 대한민국밖에 있으면 너무 그립지만 안에 있으면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그야말로 마성의 대한민국...

 

  판데믹 이전에는 대한민국 여권 파워가 세계 2위였다. 5mm의 얇은 녹색 대한민국 여권만 있으면 세상 못 갈 곳이 없었다국경에서 여권을 내밀 때마다 새삼 대한민국의 파워를 느끼며 으쓱했었다미루는 대한민국 여권과 네덜란드 여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한국어와 네덜란드어를 동시에 쓰며 한국 문화와 네덜란드 문화를 동시에 경험한다미루가 옆에 있는 한 난 어쩔 수 없이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계속할 것이다이 질문이 의미 있는 질문이기를 바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항상 말한다미루가 커서 국가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최소 자신이 태어난 대한민국이란 조국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클리쉐 같은 말이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꾼다누구를 지지하냐좌냐 우냐를 벗어나 여러분과 같이 만들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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