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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20. 2018

질문 셋: 다니는 거 안 지쳐요?

육체적으로 지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다니는 거 지친다.
그럴 땐 쉬면 된다.
문제는 따로 있다. 

항상 이렇게 웃을 수만 있다면.


# 나의 영원한 적, 냉소


냉소는 내 천성이었다. 하고 착하게만 보이는 얼굴 뒤로 난 항상 팔짱을 끼고 딱하게 서 있었다. 가? 하고 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다. 당신은 지금까지 나에게 보기 좋게 속았다. 부모님 및 주변으로부터 항상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난 왜 그리 삐딱했을까? 지금은 이마저도 내 일부라고 받아들이지만 한때 냉소는 나를 무척이나 롭혔다. 도대체 난 왜 이럴까? 하고.


육체척으로 지칠 땐 쉬면 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칠 땐 참 난감하다. 내 냉소를 더 키우니까. 특히 카밀과 함께 채리티 트레블을 했을 땐 심했다. 아프리카에서 일할 때 피부색이 그들보다 하얗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우리를 걸어가는  자루로 보았다. 생면부지의 남자가 내 앞을 막고 다짜고짜 이발할 돈이 필요하다, 신문 살 돈이 필요하다, 점심 을 돈이 필요하다며 손을 었다. 보디아에선 세상의 거대한 부조리 앞에 속수무책인 자신을 비관하며 알코올 중자가 되어버린 NGO 활동가들을 많이 만났다. 발리의 한 의사는 으로는 간도 줄 것처럼 친절했지만 우리의 기부금을 령했다. 이런 경험이 계속 쌓이자 난 내 진심을 열 수 없었고 비딱하게 눈을 기기 시작했다. 관계가 깊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보기 좋게 뒤통수 맞기가 싫었던 것이다. 여행은 내 냉소를 더 키웠고 더 을 쌓게 다. 아이러니였다. 

 

사실 여행에서 배운 건 많다. 전기와 물을 아껴 쓰게 됐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고 (한국의 여권 파워는 세계 2위다), 응급상황 대처법 알게 됐고, 외국어에 욕심이 생겼고, 덕분에 여러 언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됐고, 담대해졌고, 감정 조절도 잘하게 됐고, 해졌고, 고로 불평  하게 됐며 세상은 결코 자기 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결국 인간은 절대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이면은 더 컸다. 즉 세상을 너무 알아버렸고, 그 앞에 라한 나 자신을 인했고, 그래서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은 왜 사나?’ 같은 재론까지 들먹이게 됐고, 생당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깊은 문제의 골에 질려 아예 무기력하게 됐고, 어짐이 버거워 미련을 주지 않게 됐고, 체력이 많이 어졌고, 큰 것엔 대담하나 사소한 것엔 쩔쩔매게 되었다. 뭐야, 남들은 여행 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자기 성찰을 한다는데, 왜 난 이렇게 삐딱하게만 되는 거지? 그냥 편하게 휴양지나 관광지로 가면 걸, 왜 괜히 험한 을 봐서 이 세상 모든 고민을 혼자 어진 것처럼 진지 떠는 거지? 꼴에   안고 조금의 행복을 허락 안 하려는 내 냉소와 책감과 알량한 자존심이 미웠다. 나도 날 좋은 날 ‘모히또 가서 디브'나 한  마시고 싶다고! 젠장, 괜히 여행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결국 여행이 내게 준 것


그렇다고 걱정은 마시라. 한때 그랬다는 거고 이젠  둥글둥글하다. ‘어쩜 그럴 수가 있어!’라는 격분의 범위도 유들유들해졌다.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고 경험이 늘어나서일 수도 있고 머리가 더 커져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되어 미루를 키우면서 달라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음을 보고 있으면 희망을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앞에서 내 냉소는 사치가 되고 냉소를 부릴 자격은 상실된다. 비단 미루의 웃음뿐 아니라 모든 아이의 웃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 아, 이렇게 해서 몇만 년 인간 사가 이어진 거구나’ 하며 세상 이치를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의무감이 생기고 오기까지 생긴다. 기어코 희망을 찾고 말겠다는 오기 말이다. 냉소의 천척은 바로 아이였다.  

 

생각해 보면 지난 10년의 긴 여행이 궁극적으로 내게 준 것은 ‘인간은 임없이 배우고 알아야 한다’는 자각인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내게 냉소를 키웠을지라도 이 자각은 세상을 배우고 알려는 욕망을 키웠고, 이는 사고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길러줬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힘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휩쓸리지 않고자 한다. 직시의 대상은 나도 포함된다. 자신을 잘 안다는 오만을 버리고 여행을 통해 몰랐던 내 모습을 알게 된다. 장기 여행자들 모두가 그들의 기록에 질리도록 말해서 이제 그리 새로운 사실도 아닌,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는 말은 이렇게 탄생한다. 

 

다니는 거 물론 지친다. 하지만 이제 내겐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내 밑바닥에 깔려 있는 '냉소'라는 무기가 있다. 이젠 이를 괴로워하거나 일부러 피하기보단 어설프더라도 적당한 ‘함’으로 승화하고 여유롭게 같이 놀려고 한다. 이런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배워야 할 것과 알아야 할 것을 던진다. 때로 그 내용이 너무 무겁거나 양이 많아 질려버리면, 그때 난 비장의 무기로 냉소를 꺼낸다. 적당히 좀 하라고. 나도 지금 내 문제로 골치 아파 죽겠는데, 우선 나 좀 살고 보자고. 그러면 진지 떠는 게 그나마 쉬워진다. 이런 여유를 부리다니,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걸까? 많이 컸구나, 최승연!


포르투갈 중부 쎄라 다 아쏘르에 살 때 우리 집 바로 앞의 풍경. 냉소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이런 곳에서 지내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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