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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18. 2018

질문 둘: 그래서 공동체는 찾았어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로 그 이상향


이상적인 공동체를 찾아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
과연 우린 바로 앞에 있는 파랑새를 두고
기나긴 길을 돌고 돈 것일까?


스페인 남부 도시 그라나다 근처의 히피촌 엘 모리온(El Morion)


# 유토피아는 과연 존재할까?


미국 작가 로런 그로프(Lauren Groff)의 2012년 작 ‘아르카디아(Arcadia)란 소설을 읽었다. 70년대 히피 문화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 절대 자유와 평등, 사랑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아르카디아의 흥망성쇠와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비트(Bit)란 남자의 근 50년의 삶을 숨 막힐 정도로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린 소설이다. 바깥세상을 모른 채 공동체의 품속에서 살던 비트는 사춘기가 되자 서서히 세상의 전부였던 아르카디아의 어두운 면을 보기 시작한다. 가난, 마약, 쾌락, 방종, 목소리 큰 자의 독재 등 일련의 사건을 거쳐 아르카디아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와해된다.  

임시 천막, 캐러밴, 마을버스, 마을 회의장, 공동주택과 부엌 등 소설에 묘사되는 장소들은 내가 유럽에서 경험했던 여러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소설의 묘사와 어찌 그리 다를 게 없던지! 물론 70년대 히피를 배경으로 했기에 부정적인 면이 도드라졌을 수도 있지만, 현재에도 많은 공동체가 겪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커뮤니티(Community). 흔히 공동체라 해석되는 이 단어엔 아주 많은 개념과 형태가 함축되어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사전에는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통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생태마을로도 불리는 에코 빌리지(Eco village)는 여러 규모로 전 세계에 걸쳐 약 천여 개가 있다. 그중엔 독일의 지벤 린덴(Sieben Linden), 포르투갈의 타메라(Tamera), 호주의 크리스탈 워터스(Crystal Waters), 인도의 오로빌(Auroville) 등 크고 오래 지속된 마을도 있다. 이 중 우린 타메라와 오로빌을 방문했는데 퍼머컬처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실험 및 조직적인 면에서 꽤 인상적이었다. 

규모와 성격은 다양하다. 영적 믿음을 바탕으로 엄격한 규칙에 따라 사는 집단도 있고 과학 실험을 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집단도 있다. 모두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자연과 공생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한다는 점은 같다. 친환경, 공유, 퍼머컬처, 영성, 자연 회귀, 지속 가능성 등의 키워드는 생태마을을 설명하는 대표적 단어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책이 나와 있으니 전문가도 아닌 내가 굳이 어설프게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는 건 피하는 게 낫겠다.


북유럽에서 온 히피들이 많이 모여 사는 포르투갈 중부의 작은 마을 코자(Coja)


# 공동체를 찾아 헤매다.


사실 지난 여행에서 공동체를 빼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인데, 이에 대해 쓰려니 너무 어렵다. 당최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다. 사랑과 증오의 관계랄까? 살고 싶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내 안의 온갖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편협한 내 경험만으로 정의하기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서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한 곳. 


카밀과 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방문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큰 생태마을 외에 주로 작은 규모의 신생 공동체를 방문했는데 빈집이나 땅에 불법으로 들어가 사는 스쾃팅(squatting) 공동체, 공동 투자로 땅을 사서 각자의 프로젝트를 하는 공동체, 한 개인이 땅을 산 후 사람을 모아 같이 사는 공동체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큰 생태마을은 사전에 미리 방문을 신청해야 한다. 즉흥적으로 여행했던 우리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다수가 그 생명이 길지 못했다. 한 커플에 의해 20년간 지속되다가 결국 커플 가족만 남고 뿔뿔이 흩어진 공동체도 있었다. 카밀과 난 우리가 보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그 이유가 뭘까 상식에 근거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생각은 이렇다.


1. 기본적으로 공동체 생활은 고도의 사회성과 자기 수양, 그리고 일정량의 희생을 요구한다. 이는 이기적이고 부와 편리를 추구하고 먹고사니즘에 바빠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요즘 자본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2.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과 미래를 걱정하는 의식이 필요한데, 이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지만 당장 피부로 와 닿는 주제가 아니기에 대중적인 관심을 얻지 못한다.

3.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유와 프라이버시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재화를 공동으로 소유할 경우 쉽게 마음이 떠나버린다. (실제로 개인 소유가 아닌 공동주택에 살수록 유동인구가 더 컸다)

4. 하나의 공동체가 제대로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당장의 결과를 바라는 성질 급한 사람들은 그만큼을 기다리지 못한다.

5. 안에서 벌어질 온갖 징글징글한 인간관계의 드라마를 생각해보라! 의견 일치를 위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이들이 달리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겠는가!

 

이 모든 걸 생각할 때 어쩌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 그릇이 안 될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도 그래도 무조건 직진!


# 돌고 돌아 내린 결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14개의 생태마을을 방문한 후 그 경험을 ‘에코빌리지, 지구 공동체를 꿈꾸다. (원제: Ecovillages – Lessons for Sustainable Community)’란 책에 담은 저자 케런 T 리트핀(Karen T Litfin)은 생태마을 주민들의 세계관과 자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썼다.

 

1. 생명의 그물은 신성하며 인류는 그 그물의 일부다.

2. 환경적으로 세계는 갈림길에 서 있다.

3. 긍정적 변화는 주로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4. ‘예’라는 말이 ‘아니요’보다 더 큰 힘의 원천이다.

 

카밀과 난 자원봉사 세계여행 ‘채리티 트레블’ 프로젝트 후 소규모의 공동체 생활 지구 상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줄 거란 생각에 이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일련의 경험 후 우린 생태마을이 추구하는 위 정신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굳이 공동체에 합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를 그들에게 맞추거나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는 그곳에서 그 정신을 어떻게 일상 속에 적용하고 이웃과 공유하며 실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공동체는 유일한 정답이 아닌 하나의 방법일 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형태나 조직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몇몇 이웃과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가는 법을 실천하려는 의지였다.

참 오래 돌고 돌아서 내린 결론이었다. 겨우 그거 알아냈냐고, 뭐 그리 시시하냐고, 찾아다닌 세월이 아깝지 않냐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내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고 나의 의식을 확실히 깨워줬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 이 여행은 우리 자신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돌고 돌아도 의미가 있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는 얼마 못 가 망할 것 같다. 이미 석유 등 몇몇 자원은 임계점에 도달했고, 수많은 환경 단체와 운동가, 과학자들이 이를 경고하지만 세상은 꿈쩍도 안 한다. 이쯤 되면 누구나 바라는 이상형 ‘아르카디아’의 실현은 물 건너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손을 잡을 이웃이 있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아르카디아'의 주인공 비트처럼 불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도 마지막엔 기필코 희망을 찾았고, 그건 사람을 통해서였으니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존재. 내게 공동체는 짝사랑으로 머물 것 같다. 



사족: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란 책이 출간되었다. ‘지구를 살리는 희망의 지도 - 서로 배우고 연대하며 그리는 아름다운 생태 발자국’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Global Ecovillage Network)’의 출범 20주년에 맞춰 생태마을을 설립하고 오랫동안 생활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하나로 모은 책이다. (보판으로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사례도 포함되어 있다) 지구가 마치 두세 개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갉아먹는 현세대에서 대안적 삶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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