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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17. 2018

질문 하나: 왜 계속 떠나요?

내 인생의 결정적 변화를 만든 떠남들

사람마다 떠나는 이유는 다 다르다.
떠남에 대한 책임은 다른 얘기지만,
떠난 이유에 대해 ‘그냥’이란 건
지나고 보면 없는 것 같다.


베를린 상공에서


# 3번의 떠남, 다 사연이 있다.


첫 번째 떠남

1996년 뉴욕 유학길에 올랐을 땐 난 진정 보무도 당당했다. 내 기필코 최고의 무대 디자이너가 되어 브로드웨이를 접수하리라. 한국인 최초로 토니상을 따내고 말리라. 기다려라 뉴욕이여, 내가 간다! 

온 세상을 잡아먹을 객기 어린 젊음은 찬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흘러가지 않았고, 2001년 911 테러의 여파로 비자 연장에 실패한 난 토니상의 '토'자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7년의 뉴욕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떠남

2009년에 떠났을 땐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돌아온 후 난 대학로에서 무대 디자이너로서 정신없이 일했다. 무대 위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시건방지게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선배님들 눈엔 쥐뿔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았을 거다. 그러다 벽에 부딪쳤다. 외부의 벽이 아닌 내가 만든 내부의 벽에. 내가 하는 연극은 연극 같지 않았고 내가 만든 무대는 무대 같지 않았다. 언젠가는 마주칠 벽이었다.

출간 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안갯속에 사라진 여행 에세이 분야의 불후의 명작, 내 첫 에세이 ‘착한 여행 디자인’에서 (웃지 마시라, 그래도 꽤 괜찮은 책이었다!) 난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제가 떠난 건 미쳐서도 아니었고 모험심에 불타서도 아니었습니다. 전 소심 중에도 왕 소심이고, 드러누우면 일어날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입니다… (중략)… 자유를 꿈꾸네, 새로운 영감이 필요하네, 자못 거창하게 꾸몄을지 모르지만, 그냥 비겁했을 뿐입니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 잘 나가는 게 배 아파서, 돈에 초연한 척하면서도 생각만큼 못 버는 내가 초라해서, 이 나이 되도록 사랑 한 번 ‘찐’하게 못 해 본 게 한심해서, 스스로 못났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아무리 못났어도 그렇지 날 안 알아주는 주변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못난 모습이 남에게 들통날까 너무 무서워서. 예,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간 게 맞습니다.”


아! 이렇게 솔직하고 찌질한 고백이라니! 뉴욕행 비행기에서 보였던 그 호방한 객기는 어디 가고 이리 초라하고 구구절절한 변명만 늘어놨단 말인가! 그렇게 떠난 여행이었기에 난 정당성을 찾아야 했고 그걸 카밀과 했던 자원봉사로 메꾸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된통 뒤통수를 맞았다. 자원봉사를 하며 본 날 것의 잔인한 현실이 지금껏 내가 알던 세상의 근본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몰라도 이리 몰랐었다니! 사람에 대한 무지, 세상에 대한 무지, 인생에 대한 무지가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난 카밀과 결혼했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미루가 찾아왔다. 케냐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정기를 받아 내 몸으로 쑥 들어왔을 때, 천지 창조를 일으킨 신의 자격을 받은 것 같았고 그 창조의 기쁨은 나를 전율시켰다. 건강하게 자궁을 뚫고 나오는 생애 첫 위대한 미션에 성공한 3.6킬로의 갓난아이가 내 품에 안기는 순간,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얻었다. 임신 때부터 결코 꽃밭이 아닌 이 세상에 아이를 내놓는 게 과연 옳은 걸까 괴로웠는데, 아이는 카밀과 내가 추구하는 삶에 굽히지 않고 더 다가가야 한다고 확신을 준 것이다.

 

세 번째 떠남

2013년 생후 6개월 된 미루를 데리고 떠났을 때, 우린 미루에게 물려줄 세상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으로 떠났다. 사뭇 거창했지만 브로드웨이를 접수하겠다는 젊은 객기와는 다른, 부모라서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성질의 객기였다. 유럽에서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난 소망했다. 우리가 꿈꾸는 삶을 향해 천천히 행진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기를.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 과정에 의미를 두기를.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길.  

 

프랑스 중부 어느 곳에서 잠깐 휴식을. 이때 미루는... 12개월 조금 넘었었나??


# 난 또 어떤 사연으로 떠나게 될까?


여행하며 우리의 삶의 방향과 가치관은 계속 변했다. 자원봉사를 찾아다녔고 공동체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이젠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삶을 향해 천천히 가는 것 자체로 의미 있기를’ 바라는 건 여전하다. 누구는 우리가 너무 느리고 어리석다지만 우린 그런대로 정착하고 싶은 욕구와 떠나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며 이 과정을 즐기고 있다. 일일이 남에게 증명하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제 다시 떠난다. 그 전의 떠남에는 모두 확실한 목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거기에 임하는 내 태도도 다르다. 솔직히 난 딱히 우리 상황을 설명할 단어를 못 찾아서 '노마드'란 단어를 썼을 뿐 속으로는 항상 거부했었다. '결코 캐러밴에서 죽지 않을 거야!' 하며. 하지만 이젠 '노마드'란 콘셉트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목적을 향한 과정이라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었던 '느린 여행'도 이젠 굳이 목적을 찾지 않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바로,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
  

사람들은 항상 내게 답을 원한다. '왜' 떠나냐고. '왜' 그렇게 사냐고. 전엔 딱 떨어지는 답을 좋아했지만 이젠 슬슬 질린다. 이거 어쩌나, 살다 보니 답이 없는 걸! 내가 종종 미루에게 하는 말이 '그럴 수도 있지.'인데, 이젠 이 말로 모든 걸 '퉁' 치려 한다. 목적이 없어도 방향성만 있으면 목적이 내게 올 거라 믿으며 그렇게 답한다. 

- 그럴 수도 있지.

지난 10년의 여행은 내게 모든 걸 열어두는 배짱을 키웠다. 


곧 만 7살이 되는 미루와 떠나는 여행은 아기 때의 그것과는 또 다를 것이다. 자아가 몽글몽글 만들어지는 미루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떠난다고 하면 그나마 그럴싸한 목적이 될까? 문득 난 죽을 때까지 떠나는 걸 (그게 어떤 의미에서건)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온다. 피곤한 삶이지만 그냥 즐겁게 내 팔자거니 해야지.

사람들이 떠나는 근간에 ‘한국이 싫어서’가 있다. 소설 제목으로까지 나왔으니 보편성이 있는 거다. 하지만 난 이놈의 ‘헬조선’이 싫다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을 조종하려는 내부의 힘으로 떠났다. 내부의 힘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한 결코 떠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앞으로 4번, 5번, 또 어떤 결정적 떠남이 내 인생을 변화시킬지 궁금하다. 인생은 짧다지만 동시에 인생은 기니까. 


허세인가? 허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허세 좀 부리면 또 어떤가? 이 근본을 알 수 없는 뻔뻔함과 자신감을 당신에게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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