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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22. 2018

질문 넷: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요?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철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채찍질하는 세상에
굳이 우리를 맞출 의향은 없다. 
우리 그냥 이렇게 살게 해 주세요. 


서방님 서방님 우리 서방님


# 카밀은 피터팬


카밀은 피터팬이다. 

그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만 항상 보면 어른인 몸이 어색해 기회만 되면 가죽을 벗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 같다. 솔직히 나이 들어서도 피터팬이라는 게 항상 칭찬은 아니다. 누구는 순수하다고 하겠지만 누구는 나잇값 못 하는 철부지라며 혀를 끌끌 찰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팬이 네버랜드에서 왕초로 살아가는 건 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카밀도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네버랜드를 짓고 그 안에서 왕초로 살고 싶은 걸까? 거기엔 항상 꽃길로 이어진 장밋빛 미래가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와이프 입장에선 당장 정신 차리라고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긴 하다. 


지금은 미루 덕분에 좀 달라졌지만 카밀은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바로 천둥이 칠 듯 저기압을 느껴지고 그들의 대화는 허공에 대고 주장하는 선거 유세 같다. 의사이신 시아버지께선 기독교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사시는 분이다. 노동의 가치를 높이 사고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검소하며 (이건 네덜란드 국민성이기도 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한 곳에서 열심히 일해 가족을 이루고 사회로부터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 즉 좋은 직장에, 좋은 보수에, 좋은 집에, 토끼 같은 자식에, 화목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최고의 인생이라 생각하신다. 그런 시아버지께서 우리의 ‘떠돌이’ 라이프 스타일을 고깝게 보시는 건 당연하다. 아버지와 이해의 폭을 좁히고자 노력했던 카밀은 어느 순간 그 시도를 중단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한 존중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매번 자신을 변호하고 증명해야 하는 게 지겹단다. 사실 어디 시아버지뿐일까 싶다. 사회의 기준에선 우린 한참 어긋나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 루오 마을에서.


# 우리는 이상주의자


언제 어떻게 될지 미래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한다. 은행에 저축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고 헬스에서 몸을 만들며 주택청약을 든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불안해한다. 그걸 달래기 위해 종교를 찾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생각해 보라. 저축하고 투자하고 운동하고 집장만을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계속 불안한데, 우리라고 안 그럴쏘냐.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다.  


카밀과 난 종종 이상주의자란 말을 듣는다. 아쉽게도 사람들이 내뱉는 그 단어의 톤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어떤 궁극의 목적, 혹은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노력해 가는 정신 태도’를 이상이라 하고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상주의자다. 세상은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바뀌어 왔다란 말을 흔히 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해 손가락질당했다는 일화도 많고, 그 시대엔 무시당했을지라도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발전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정형화된 규칙을 요구하고 사람들은 그에 맞춰 살려고 발버둥 친다.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로 인생을 평가하기엔 너무나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는데, 조금만 이에 반하면 철없는 소리 그만하고 현실을 직시하라며 채찍질을 한다. 이상주의자를 우상화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공장에서 찍어낸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려는 세상 이치의 아이러니. 


이런 세상에서 불안 없이 이상주의자로서 살려니 사뭇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언제든 ‘과연 그럴까?’라고 질문하는 자세를 가지는 거다. 어떤 가치를 현실에 적용했을 때 괴리감이 크다면 과감히 버릴 준비를 하는 거다. 

내가 겸손하고자 하는 이유는 시아버지를 비롯 우리를 철없고 회의적으로 보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자신의 가치’ 안에 갇혀 질문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너무나 확고한 신념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카밀과 내가 추구했던 '자연주의'니 '공동체'니 '노마드'니 하는 것 역시 '이상주의'라는 그럴싸한 이름 속에 갇혀버린 건 아닌가 하고.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 그래서 말인데, 부탁한다.


곧 다시 비행기를 탄다. 불안하다. 아이가 있으니 더하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길거리에 나앉을까 불안하다. 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선택한 미루의 교육이 잘못될까 봐 불안하고 욕이 튀어나올 만큼 빌어먹을 상황과 사람에게 상처 받을까 불안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리 사냐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를 때도 많다. 이런 줄 알고 살았는데 저렇고, 저런 줄 알고 살았는데 이렇고... 젠장, 현실은 뭐가 이리 복잡한지. 


그렇다고 도피하고 싶진 않다. 어차피 여행은 지극히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스스로 복기하며 겸손하게 질문한다. 


도대체 우린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걸까?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불안이 사라지고 다시 용기가 생긴다. 


조심스레 부탁한다. 다음에 우리를 만나거든 걱정이나 냉소 대신 그냥 ‘잘 지내지?’하고 어깨를 툭 쳐주길 바란다. 우리 라이프 스타일이 고까우면 충고 대신 그냥 무시하길 바란다. 우리가 여행하면서 힘들었던 건 육체적 고단함도 아니고 금전적 쪼들림도 아닌 사람들의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이상주의자이건 현실주의자이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 거면 군말 없이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다. 겸손할 기회를 더 주는 것일 테니 말이다. 덤으로 ‘파이팅!’을 외쳐준다면 진심으로 고맙겠다. 무한정 믿어주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래도 춤추게 할 엄청난 힘이니 말이다.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 앞에서 카밀이 처음으로 나에게 ‘채리티 트레블’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했을 때 그의 눈을 바라보며 ‘이 남자 생각보다 괜찮네’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아들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시아버지께서 이해해주실 날을, 바로 그날을 기다린다.


A boy always will be a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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