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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Mar 27. 2019

질문 여섯: 밖에서 본 한국은 어때요?

네덜란드에서 경험한 국가의 위엄 


내가 그린 암스테르담


# 내가 겪은 네덜란드


카밀의 고향인 네덜란드에 대한 내 인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풍차와 튤립, 운하, 그리고 주먹으로 댐의 구멍을 막아 마을을 살리고 하늘나라로 간 용감한 소년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네덜란드를 살기 좋고 아름다운 복지 국가로 규정하거나 영화 ‘헤롤드와 쿠마(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에서 묘사된 것처럼 마약과 매춘이 허락되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덕을 산이라 우기는 평평한 땅과 그림엽서처럼 예쁘지만 똑같은 풍경, 우울한 날씨, 세계 3대 상인의 명성다운 인색함과 드라이함 (어우, 진짜 정 없다!) 틀에서 벗어나면 배척하는 태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우파 정부의 이민 정책, 차별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무지의 인종 차별 등등 내가 겪은 일련의 경험들은 이 나라를 ‘꽉 막히고 지루한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평소 ‘네덜란드는 7,80년대 만들어진 이미지로 먹고산다’며 자신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이었던 카밀의 영향도 있었지만 실제 내 눈에 비친 네덜란드도 그랬다.



#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고


그랬던 네덜란드에서 시댁 집을 봐드리며 한 달 반 정도 살 기회가 생겼다. 마냥 나빴던 이미지에서 ‘실제로 살아보니 아주 나쁘진 않은걸’로 변해갈 즈음,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고가 났다. 전시 상황이었던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반 정부군이 쏜 미사일에 의해 격추당한 것이다.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고, 암스테르담-쿠알라룸푸르 구간이었기에 총 298명의 희생자 중 193명, 즉 2/3가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티브이에선 종일 사건 관련 방송을 했고 희생자 전원의 이름과 출신 지역이 신문에 올랐다. 카밀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새기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나라가 워낙 작아 두세 사람만 건너면 다 안다면서. 카밀의 입에서 네덜란드 정부에 대해 좋은 얘기가 나오는 건 드문 일인데 그런 그조차 정부가 러시아를 상대로 처신을 잘하고 있고 시신이 돌아온 날을 1962년 여왕의 서거 이후 처음으로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한 건 잘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 6일 후, 군용기를 타고 시신이 돌아왔고 우리는 그 모습을 티브이로 지켜봤다. 수습된 시신 중 1차로 도착한 40구를 국왕 내외와 총리가 직접 맞아했고, 40개의 관이 군인들에 의해 천천히 운구차로 옮겨졌다. 운구차가 지나가는 100km 거리의 고속도로는 전면 통제됐다.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으며 군용기 도착에 맞춰 교회에서 5분간 추모 종이 울렸다. 


<사진 출처: 허핑턴 포스트, 관련기사: '네덜란드: 이런 게 '국격'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4/07/25/story_n_5619457.html?ir=Korea&utm_hp_ref=korea)>


난 슬쩍 카밀에게 물었다. 

- 이렇게 국장으로 하는 거, 혹시 반대하는 사람이나 의원은 없었어?’

- 아니. 누가 이런 걸 반대해? 왜?

- 아, 아무것도 아냐…’

문득 우리나라의 어떤 집단이 생각났다. 그들이라면 이렇게 말했을까?


- 아니, 솔직히 자기들이 좋아서 놀러 갔다가 교통사고 당한 건데, 푸틴에게 손해 배상 청구해야지,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전용기도 그렇고, 운구차 값이 얼만데 그걸 머릿수대로 다 하라고? 그럴 돈이 어디 있어? 그냥 합동분향소 하나 만들어 주고 끝내!


사뭇 국민을 대하는 국가의 위엄이 느껴졌다. 이유야 어쨌든, 그래도 자국민이니까. 이역만리 공중에서 어이없이 한순간에 사지가 흩어져 버린 억울한 네덜란드 국민이니까.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난 질투 어린 시선으로 그 모든 걸 지켜봐야 했는지. 국가가 국민에게 가져야 할 책임의 범위를 생각할 때, 부정적이었던 네덜란드에 대해 사뭇 경의의 마음이 생겼다. 어른들 말대로 '가만히 있'던 아이들을 차디찬 바닷속으로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진 시국 선언. 파리, 베를린 등 다른 유럽 도시에서도 있었다.


#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질문은 갈수록 답을 찾기 어렵다. 

국가의 3요소가 ‘국민’, ‘영토’, ‘주권’인 건 초등학교 때 다 배웠는데 그동안 여행하며 접했던 우리나라 뉴스에선 그 요소 중 하나인 '국민' 자체에, 특히 권력을 가진 '국민'에게 질문을 던져야 일이 많았다. 엄마 부대란 자들은 왜 엄마란 단어를 써서 세상 모든 엄마들 이름에 먹칠을 하며 (난 당신 같은 엄마 모르오), 한 번만 용서해주십쇼 피켓 들고 불쌍하게 구걸하던 의원들은 뱃지 한 번 달고 나니 바로 막말을 하고, 가해자에게 물어야 할 죄값을 ‘피해자스럽지 못하다’며 피해자에게 전가한다. 자신의 이익 앞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측은지심을 버리는 국민들이 기득권을 가진 국가라면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나아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란 질문도.   


아웃이야!

‘헬조선’이란 말을 싫어했다. 집 나가면 모두 애국자 된다고, 세상을 다녀보니 우리나라의 장점이 계속 보였고 새삼 우리나라의 힘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국민 수준 운운하며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태도에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그러던 차에 '촛불'이란 큰 격동이 왔다. 그때 난 네덜란드에 있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교민 시국 선언에 참가하고 실시간으로 유튜브를 통해 광화문에서 달아오르는 촛불 파도의 열기를 같이 했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네덜란드에서 한때 냉소적이었던 우리나라 국민의 무한한 힘에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그 힘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아~ 우리 대한민국!



# 지금, 2019년


그리고 지금, 2019년.

여전히 대한민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어쩔 땐 촛불 때 느꼈던 그 국민의 힘이 그리울 정도로 이해 못 할 국민을 보기도 한다. 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내가 바라는 제대로 된 ‘국가의 위엄’과 ‘국민’의 모습을 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치적, 지리적으로 너무나 다른 상황에 있는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를 비교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지만 과연 네덜란드에서 느꼈던 묵직한 국가의 힘을 우리나라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여권이 2개인 미루가 옆에 있는 한 앞으로 난 이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계속할 것이다. 70년대 초반생인 내게 있어 대한민국은 다른 어느 사건도 아닌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항상 말한다. 미루가 커서 국가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라고 굳이 자신이 사는 국가를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최소 대한민국이란 조국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복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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