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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18. 2018

질문 여덟: 돈은 어떻게 벌어요?

당신이 가장 묻고 싶었던 바로 그것


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모두가 무슨 돈으로 그렇게 다니냐고 물으니까.
결론적으로 우린 딱 벌만큼 벌고 소비를 줄인다.  


인간의 욕망


# 그냥 물어보시라.


실례가 될까 대놓고 물어보진 못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뭔지 난 알고 있다. 물어보고 싶어 입은 근질거리는데, 그저 쭈뼛거리는 상대방을 보며 미소 지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런데 돈은요?
여행할 돈이 어디서 나와요?


그렇다. 모든 건 돈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당연하다. 돈이 없으면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가겠는가. 아무리 물욕이 없다 해도 삼시 세끼는 먹어야 하고 누울 잠자리와 비를 막아줄 지붕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법정 스님이 아닌 이상 누군가 돈에 초연하다고 하면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이 돈에 초연할 수 있을까?


단도 진입적으로 말하면 우린 딱 먹고살만큼만 벌며 산다. 이걸로 월세, 통신비, 관리비, 식비, 기타 잡비 등 다 해결한다. 금수저면 얼마나 좋겠냐만 안타깝게도 그 0.1 퍼센트에 들지 못했다. 

글을 쓰는 카밀은 원고 투고나 번역으로 돈을 번다. (주로 시나 단편 소설을 쓴다. 그렇다! 난 시인과 결혼했다! 이거 무슨 소설 제목 같구나) 이는 여행할 때 매우 유용하다. 랩탑과 인터넷만 있으면 세상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떠오르는 디지털 노마드는 이래서 가능하다) 또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꾸준히 저축한 돈이 있어서 급할 때 임시방편으로 통장에서 꺼내 쓴다. 다행히 카밀은 경제 개념이 좋아서 자신의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카밀에 비해 난 상대적으로 수입도 적고 숫자 개념도 약하다. 역시 번역으로 돈을 벌었고 영어 강사나 드로잉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까진 얼추 별 탈 없이 잘 살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벌고 더 저축해야 할 것 같다. 미루가 멈추지 않고 자라고 있고 우리 또한 멈추지 않고 늙어가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4년 하고도 한 달 12일째 되던 날, 미루는 처음으로 나에게 뭘 사달라고 요구했다. 그 첫 요구는 ‘엄마, 핑크색 모자 사주세요.’였다.)


리스본의 한 상점


# 카밀과 나의 소비 성향


카밀과 난 여행할 때 요구하는 스탠더드가 매우 낮다. 무슨 뜻이냐면, 잠은 깨끗하고 하얀 시트 위에서 자야 하고, 숙소 뷰가 좋아야 하며 아침에 조식으로 드립 커피를 마셔야 한다, 뭐 이런 기준 말이다. 우린 여느 인도인처럼 기차역 바닥에서 자도 좋았고, 통조림 속 정어리처럼 옆 사람과 붙어 가는 케냐의 낡은 버스도 괜찮았으며 세끼 배만 채울 수 있다면 ‘맛’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케냐의 옥수수떡 우갈리를 종일 먹어도 상관없었다. 즉 ‘웬만한’ 건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소위 이런 ‘싸구려’ 성향은 여행에 있어 경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카우치 서핑으로 숙소를 해결했고 *헬프 엑스로 노동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았다. 물론 미루가 태어난 후엔 유동적이어야 했지만, 근본적인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우선 카밀은 짠돌이다. 검소한 네덜란드인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아 소비주의에 반대하고 ‘웬만한’ 건 중고로 산다. 집에 있는 가구나 물건 대부분은 길거리에 버려진 걸 가져와 고친 것들이다. (항상 한국 사람들은 너무 쉽게 멀쩡한 물건을 버린다고 투덜거린다) 가끔 극단적으로 속옷이나 양말까지도 중고로 구하려고 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서방님아, 남이 입던 팬티까지 입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한편 난 선천적으로 물욕이 없다. 소비를 통해 욕망을 해소하려는 마음이 없고 비싼 메이커에 큰 가치나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사고 그래서 굳이 새것이 아니어도 좋다. (그래서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같은 캐릭터를 이해 못 한다. 도대체 마놀라 블라닉, 그게 뭐라고!)

이쯤 되면 감이 왔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큰돈 없어 여행하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는지를. 만약 카밀과 나의 성향이 달랐다면 꽤 삐걱거렸을 거다. 우린 우리가 벌 수 있을 만큼 벌고 소비를 줄인다. 누구는 궁상이라고 하겠지만 영혼까지 궁상이 될 정도는 아니니 괜찮다. 

 

우리네 인생, 슈트케이스 몇 개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 돈은 진정 중요하다.

 

유교의 선비 사상 때문인지 돈을 하대하고 돈 얘기를 하면 속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돈은 결코 부정적으로 봐야 할 대상이 아닌,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중요한 도구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분명 가난이 주는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가능성을 더 넓혀줄 수 있다. 

결국 돈에 대한 태도가 문제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이 태도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너무 뻔한 말이라 민망하지만 나도 같은 말을 한다. 살짝 기준을 낮추고 작은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돈에 대해서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 느끼는 행복의 강도는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그동안 난 천천히 나만의 재화를 쌓아왔다. 그 재화는 바로 다년간 여행으로 쌓인 나만의 경험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다행히 나에겐 글과 그림과 사진과 연극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재주가 있다. 그걸 어떻게 돈과 연결 지어 제대로 펼칠지 고민한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다는 게 함정이지만 차곡차곡 쌓인 내 재화의 힘과 돈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믿기에 내일 내야 할 월세가 걱정일지라도 희망적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많이 벌어서 많이 베풀고 싶다. 응원해주길 바란다. 단순해서 그저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해주면 금방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니까. 



사족 1:

노마드 생활을 유지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군은 한계가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 자처하며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IT 계열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창의적인 재주가 있고 네트워크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이용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작은 재주를 하나씩 키워보는 건 어떨까? 뜨개질, 요리, 요가, 명상, 드로잉, 글쓰기, 저글링, 버스킹, 스쿠버 다이빙, 유튜브 등,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만도 이만큼이다. 여기서 핵심은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를 잘 해야 지속 가능하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잘하려면 넉살은 필수다. 그래, 먼저 넉살부터 키우자.  


사족 2:

* 카우치 서핑: 현지인이 여행자에게 무료로 자신의 숙소를 제공하며 네트워크를 쌓는 여행 커뮤니티

* 헬프 엑스: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숙소 및 음식을 받는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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