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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Jun 13. 2019

질문 아홉: 체력 안 달려요?

이제 난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무엇이든 건강이 최고!
이 단순한 진리를 왜 이리 잘 까먹는가? 


아이들은 놀아도 놀아도 또 놀 에너지가 남아있거늘


# 뻔한 레퍼토리


사십 대 중후반.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요즘 어느 모임에서든 화두는 ‘건강’이다. 몸이 예전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임은 어느새 종합병원이 되어 각자의 몸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현상들을 성토한다. '너도 꼭 건강 검진 받아라'는 기본이며 개인 PT, 필라테스 강습을 받은 경험담이나 지인들의 각종 투병 스토리는 분위기를 더욱 비장하게 만든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투병하는 친구들이 왜 이리 많은지!) 그리고 한참의 이야기 끝에 다다르는 귀결점은 언제나 같다.


이제부터라도 운동해야 해.


그리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는 게 진리인 것처럼, 모임에 있는 인원수만큼 그 진리가 허공에 둥둥 떠다닌다.

- 내일부터 헬스 끊어야지.

- 내일부터 걸어야지.

- 내일부터 요가해야지.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 내일부터 꼭 아침에 30분 요가하고 저녁에 망원 유수지 걸어야지!


요즘 부쩍 신체적 변화를 느낀다. 정말이지 살이 쪄도 너무 쪘다. 출렁이는 배를 만지며 아이가 ‘엄마 배 몰랑몰랑해~’ 하며 키득일 때, 인간적으로 내 몸에 너무 무심한 나 자신이 한심해서 피식 웃는다. 재작년에 받은 건강 검진 결과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뭐 별다른 문제는 없으나… 운동하세요!’쯤 되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제대로 된 운동을 안 하다니, 이거 진짜 한심하지 아니한가!



# 갱년기가 오고 있다.


비단 살만이 아니다. 마치 2차 성징기에 당황하는 청소년처럼, 앞으로 다가올 갱년기의 전초전인듯한 변화는 내게 위기의식을 안긴다. 이미 작년에 돋보기를 마련하게 한 노안도 노안이거니와 얼마 전엔 귀도 슬슬 그 기능이 쇠함을 느꼈다. 평소 절대음감을 자랑하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그게 무너진 것이다. 매주 한 번 듣는 해금 교습에서 기본음이 ‘F(파)’인 노래를 연주하는데 내 귀엔 자꾸 ‘솔’로 들렸다. 선생님께 확인하고, 튜닝 앱까지 켜가며 맞췄건만 내 귀에 계속 울리는 공명은 ‘솔’. 그러자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 왜 원래 할머니들이 나이 드실수록 간을 못 맞추시겠다고 하시잖아요...

아아~ 이렇게 적확한 팩트 폭격이라니! 그렇다! 이건 늙어서인 게다! 난 이제 간을 못 맞추는 할머니인 게다!


어느새 폐경과 갱년기를 얘기하는 친구들과 자신의 병마 소식을 알리는 친구의 문자 메시지 속에서, 이런 신체적 변화들은 걱정과 한탄을 배가시키지만 이상하게도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혹은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뭐든 맛있게 먹어야지!’라는 객기만 늘어날 뿐. 이러면 안 되는데! 운동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내겐 강한 정신력과 의지밖에 방법이 없는데!

사실 이건 생존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다시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을 계획하는 우리에게 체력은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타고 휭~ 날아가는 ‘쉬운’ 여행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쉬운 길은 기필코 피하는 우리이기에 배낭 메고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덜컹덜컹 달구지 타는 이 모든 여정엔 튼튼한 기초 체력은 필수다. 카밀이 들떠서 앞으로 있을 모든 여행을 얘기할 때, 같이 심장이 뛰며 얼씨구나 하면서도 한편으로 한숨이 포옥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안 봐도 비디오! 얼마나 고생일까! 난 더는 그 고생을 감당할 체력이 안 된다! 그래서 결국 다다르는 귀결점은 같다.

 

- 이제부터라도 운동해야지.



#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


모임에서 또다시 운동 얘기가 나온다.

- 그 기사 봤어요? 칠십 몇 세에 보디빌딩 대회에서 상 탄 할머니. 허리가 너무 아파서 고치려고 PT를 받기 시작했는데 푹 빠져서 보디빌딩까지 했대요.

- 이번에 10킬로 마라톤 도전할 거예요. 트레이닝하고 있어요. 내일 같이 뛸래요? 아, 그러면 러닝화 사야 해요. 운동복도 필요하고, 모자도 그냥 모자는 안 돼요. 머리에 있는 열이 빠지질 못하니까.


자극은 끝이 없고, 그에 따른 결심도 반복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내 몸을 움직이는 내 마음의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수많은 자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불속으로 몸을 파묻는 내 마음의 PT는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할까? 어디 쫀득쫀득한 마음 운동 삼 개월 무이자 정액권 끊을 곳 없나? 이렇게 글을 쓰면 되려나? 명상을 할까? 책으로 정신적 자극을 주면 되려나? 몸과 마음 중 뭐가 먼저일까? 몸을 먼저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일까? 아니면 그 반대? 이렇게 계속 질문을 하느니 그냥 움직이는 게 나을까?


체력 안 달리냐고? 당연히 '딸'린다. 그래서 난 이제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어쨌든 긴 여행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니 앞으로 계속 생명을 유지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더불어 건강한 식단은 필수겠지.

오늘 밤, 드디어 박차고 일어나 한강으로 간다. 마음 맞는 몇몇 분과 함께 6킬로 되는 거리를 걷고 뛰었다. 천천히 뛰었음에도 땀이 흠뻑 나고, 기분이 아주 좋다. 같이 뛰신 분이 (10킬로는 물론 하프 마라톤까지 뛰신 분이다) ‘그래도 기초 체력이 있네요!’라고 말해주시니 용기가 생긴다. 금요일에 또 뛰기로 약속한다. 이러다 진짜 마라톤에 도전하는 거 아냐?

 

운동을 했다. 왠지 진정한 인생의 2막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뛰어다니는 녀석 쫒아 다니려면 운동해야 한다는 결론. 미루야, 너 왜 그리 빠르니?


Photo by Yellow 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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