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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19. 2018

질문 열: 시골 생활 안 불편해요?

전원생활이 낭만적일 거라고? 오우, 노노노!

추운 겨울날, 시골 생활은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이다.
원시적인 시골 생활에서 핫 샤워와 세탁기는 사치 중 사치다.
난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오른쪽 벽돌집이 샘과 까따레나의 집이다.


#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은 시골 마을에 대한 로망이 있는 하다. 특히 것을 간직한 유럽 시골이라면 더더욱. 다닥다닥 은 돌집, 파라솔과 의자 하나 내놓은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인 소박한 커피숍, 모서리가 마모된 자잘한 돌길 위로 링띠링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파란 하늘을 뚫고 우뚝 선 전봇대에 걸린 양떼구름과 그 위를 살짝 었다 가는 한여름의 공기, 그리고 저 리 5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 ~뎅~뎅~뎅~뎅~. 아! 이런 만과 여유라니! 하지만 한 장의 예쁜 서 같은 그 모습에 속지 마시길. 사실은 굉장히 치열한 노동으로 철된 곳이니까. 시골 마을은 한 마디로 ‘노가다’다.

 

포르투갈 중동부에 있는 카스텔로 랑코(Castelo Branco)란 소도시로부터 국도 N112를 따라 불꼬불 산속으로 한참 가면 예상치 않은 곳에 카사스 다 제브레이라(Casas da Zebreira)란 마을이 불쑥 나타난다. 얼룩말의 집들’이란 뜻으로, 가구 수가  20여 채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여느 시골 마을처럼 이 마을도 자식을 도시로 보낸 후 당신마저 떠나기엔 켜이 인 세월이 발목을 잡아 차마 떠나지 못한 어르신이 대부분인데 ‘내가 이 마을에 젊은 피를 리리라!’를 치며 돌아온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기에 출신의 샘(Sam)과 포르투갈 출신의 까따레나(Catarena) 커플이다. 그들은 까따레나 할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에서 허물어진 할아버지의 옛집을 고치기 위해 우핑(Wwoofing)과 프 (HelpX) 사이트를 해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마을을 젊은이의 아트 커뮤니티로 만들겠다는 심이 있었다. 이 커플의 프로필을 본 우리는 시지를 보냈고 그들은 쾌히 우리를 받아주었다.


미루는 여기서 철저히 야생으로 지냈다.


# 극한 체험 – 시골 생활


우린 이곳에서 근 한 달을 살았다. 원시적인 시골 생활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불편함은 그리 새롭지 않았다. 그나마 전기가 들어오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겨울이었다는 것. 누가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했나? 추워도 너무 추웠다. 일  중  달만 다는 이유로 난방 시설이 따로 없는 포르투갈의 집은 매서운 바람을 두  벌려 받아들였으니 그야말로 극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까따레나 할아버지의 낡은 집에서 지냈는데, 불 땔 곳이 부엌밖에 없어서 화로 앞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고 아침마다 산에서 가지를 꺾어 불을 때야 했다. 꺾는 게 너무 귀찮아서 그냥 껴입고 버틸까도 했지만 27개월 아이가 있으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매일 아침 옷깃을 세우며 올라가는 산길엔 자연스레 ‘아이고 내 팔자야!’ 한탄만이 울려 퍼졌다. 더운물이 나오지 않아 큰 솥에 물을 끓여 샤워를 했는데 미루는 물의 양이 적어도 괜찮았지만 성인 두 명은 그렇지 않았으니, 결국 귀찮아서 아예 샤워를 안 했다. 떡진 머리는 올겨울 최신 유행! 겹겹이 겹친 스웨터는 믹스 앤드 매치 레어어드 패션! 한 달간 우린 꼬질꼬질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욕이었던 건 빨래였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미루는 그렇다 치고 도대체 카밀은 왜 청바지를 입고 난리인 건지. 욕조에 물을 받아 넣고 았던 그 빨래! 스페인 토마토 제의 토마토였다면 기꺼이 웃으며 밟았겠지만 이건 분노의 금질이요 울분의 벙거림이니, 마치 인형에 바늘을 아 저주를 퍼붓는 부두교 의식처럼 청바지를 카밀 삼아 잘근잘근 밟았지만 울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저  차가워! 비명만 커졌을 뿐. 

이러다 보니 새삼스레 그 뜻을 달리하며 다가오는 단어가 있었으니, 그 단어는 바로 ‘문명’!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가 심각하다 지만, 아 예, 그냥 다 고요, 제발 나에게 그 이기의 발톱만이라도 때어 주세요…


시간은 느리게 지만 그래도 해는 고 졌다. 겨울 땔감을 구하고, 사지을 땅과 을 일구고, 집을 고치는 사이 한 달은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까따레나와 샘은 은 친구가 되었고 자연을 벗 삼아 건강히 크는 미루를 보는 것도 좋았으며 체노동의 결과를 앞에서 보는 즐거움도 다. 하지만 말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좋았을 이 모든 고생이… 었다! 

빨래하면 허리 아프고 손목 시린 게 싫었고, 추워서 스웨터를 겹겹이 입고 자는 게 싫었고, 샤워를 안 해서 고 싶은데 팔이 짧아 닿지 않는 게 싫었다. 얼룩 없는 하얀 시트 위에 자면 꿀잠을  것 같았고 인터넷으로 밀린 한국 예능 프로를 모두 섭렵하고 싶었다. 옛날 유행어 중 이런 게 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나이 타령은 유치한 짓이지만 같은 상황에선 당신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엔간했어야 말이지! 슬펐다. 내가 자처한 그 고생을 즐길 수 없다는 게 슬펐다. 그땐 그냥 모든 게, 몽땅, 다, 에브리띵! 슬펐다.

그래서 했다. 문명을 찾아 도시로 가기로. 작고 달콤한 문명의 입김을 따라, 순전히 내가 우겨서. 까따레나는 리스본에 사는 친구를 소개해줬고, 그렇게 우린 원시생활에서 도망쳐 도시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강아지를 안고 있는 까따레나, 왼쪽에 앉은 샘. 그들에겐 항상 헬퍼들이 왔다.


# 문명은 거부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우와, 이럴 수가! 수도꼭지만 면 뜨거운 물이 나오고 버튼만 누르면 빨래가 된다! 할렐루야, 이런 기적이! 

도시로 온 나는 행복했다. 매일 샤워할 수 있어 행복했고 세탁기가 있어 행복했다. 지금도 난 어딜 가든 이 두 가지만 충족되면 행복하다. 정말이지 행복이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노마드로 살면 기준이 낮아진다.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단순해지고 딱히 뭐가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그래서 작은 불편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중용이 필요한 . 지나친 하드코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 고생을 왜 하냐고 묻는 당신은 지극히 옳다. 시골 생활을 다시 하라면 언제든 할 수 있으나 이런 원시적인 하드코어는 이젠 자신이 없다. 다시 하더라도 제발 이 두 가지만은 허락했으면 한다. 


핫 샤워와 세탁기.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문명은 거부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영리하게 잘 쓰라고 있는 거니까.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라던데, 당신은 어디까지 원시적일 수 있는가?

 



사족 1:

현재 까따레나와 샘은 옛날 집에서 멀지 않은 ‘빌라 하 데 로다우(Vila Velha de Rodao)’란 마을에서 에어비앤비 박업을 한다. 샘의 아버지가 투자해 집 한 채를 고 천천히 고쳐서 재작년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에 만났을 때 까따레나가 만삭의 를 자랑했으니,  제이드(Jade)는 지금쯤 여기저기 마구 어다닐 거다. 옛날 집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그때도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아이가 생기니 금전 정을 안 할 수 없어 숙박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여전히 아트 커뮤니티를 꿈꾸는지... 오늘 밤 오랜만에 그녀에게 안부 메일 한 통을 야겠다.

 

사족 2:

우핑(wooofing): 농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숙식을 받는 시스템.

헬프 엑스(HelpX): 우핑과 비슷하나 일의 종류나 호스트가 훨씬 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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