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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Dec 24. 2018

질문 열하나: 살 곳은 어떻게 찾았어요?

정말이지 지겹고 또 지겹구나. 이놈의 아파트 찾기

이제 웬만한 곳은 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되었다. 
우리 같은 서민을 따뜻이 받아줄 곳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 모든 건 돈으로 귀결되는가?


리스본 전경.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왜 내 아파트는 없는 걸까.


#정말이지 지겹다.


노마드의 설움 중 가장 절절한 설움은 ‘오늘은 어디서 자지?’이다. 트럭을 개조해 집처럼 사는 밴 라이프(Van Life)가 아닌 이상 집 없는 설움은 그 어느 설움보다 농도가 짙다. 그래서 웹사이트를 뒤지고 또 뒤진다. 길에서 ‘임대’ 간판을 찾고 또 찾고 전화번호를 적고 또 적는다. 따르르릉 연결음을 들을 때마다 전화기 너머로 어떤 목소리가 나올지 바짝 긴장된다. 쉬운 건 하나도 없고 백 번은 반복했을 레퍼토리 끝에 전화를 끊을 땐 여지없이 한숨이 나온다. 정말이지 지겹구나, 이놈의 아파트 찾기. 


한 도시에 오래 살더라도 우린 여러 번 이사했다. 서블릿 기간이 대부분 한 달에서 석 달이었기 때문이다. (원 세입자가 사정에 의해 장/단기간 집을 비울 경우 그 기간에 제삼자에게 세를 주는 시스템을 서블릿(Sublet)이라 한다. 에어비앤비 역시 주로 한 달 단위로 렌트를 준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린 주로 한두 달짜리 단기 임대를 선호했다. 그나마 오래 살았던 베를린과 리스본에서도 3~4번씩 이사를 했다. 수도 없이 거친 단기 임대 집은 모두 우리 가족에게 딱 맞은 집이었지만 구하는 과정은 매우 지겹고 많이 지치고 크게 실망해야 했다. 정말이지 이때만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돈비를 맞고 백만장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옥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부동산이 낡은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을 한 후 두 배의 가격으로 세를 준다.


#이제 웬만한 곳은 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제 웬만큼 뜨는 도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베를린이 대표적인 예다. 4~5년 전만 해도 가난한 예술가들의 도시란 명성답게 아파트 월세가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정말 저렴했다. 방 두 개의 넓은 아파트를 440유로 정도에 구할 수 있었고 건물주가 보는 서류심사도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이른바 ‘힙’한 도시로 부상하자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부동산 시세였다. 공인중개사가 인기있는 동네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수리한 후 월세를 높게 올려 내놓는 것이다. 토박이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건 시간문제.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화두가 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리스본은 2-3년 전부터 이 현상을 겪는 것 같다. 예쁘고, 운치 있고, 싸고, 날씨 좋은 이 도시에 에라스무스(Erasmus: 유럽 연합 내 교환학생 프로그램) 학생 및 젊은이들이 모이는 건 당연했고 이제 남은 건 월세 오르는 일뿐. 오늘 심심풀이로 찾아본 리스본 월세는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세상에, 스튜디오가 한 달에 800유로라고? 방 하나도 아닌 스튜디오가? 자본주의의 그 흔한 논리는 결국 부동산 업자들만 배부르게 만들었다. 


에어비앤비 역시 월세를 올리는데 한몫했다. 2008년 에어비앤비가 서비스를 시작했을 땐 지금처럼 상업적이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카우치서핑이 주는 익명의 불안함을 거래의 개념을 통해 극복한 ‘업그레이드 카우치서핑’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엄청난 대기업이 됐고 너 나 할 것 없이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하여 사업을 시작한다. 

내가 에어비앤비에 가지고 있는 불만은 누가 봐도 숙박업인 것을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마치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회 환원의 이미지를 만들려는 데 있다. 단연코 말하건대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이지 공유 경제가 아니다. 베를린의 경우 한때 에어비앤비가 아파트 월세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 정부에서 주택을 2개월 미만으로 임대하다 적발되면 최고 10만 유로 벌금을 물리는 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다른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난 베를린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창문만 쳐다본다.


# 그래서, 어떻게 찾을까? 다시 살 수 있을까?


아파트를 찾으려면 수고스럽지만, 발품이 최고다. 날 잡고 한 동네를 선택해 돌아다니며 ‘임대’ 간판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여유로워야 하며 현지어를 써야 효과적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발품이 어렵다면 인터넷에서 short term rental, 혹은 sublet을 쳐보자. 그러면 관련 웹사이트가 우르르 나온다. (그냥 rental로 찾으면 새 아파트나 텅 빈 아파트의 입주자를 찾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영어 서비스가 있는 웹사이트의 아파트가 살짝 더 비싸다. 의외의 히든카드는 페이스북이나 카우치서핑 같은 소셜 네트워크다. 도시마다 expats(국외 거주자) 그룹이 있는데 어느 동네가 좋은지, 어떤 물건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계약서 및 법적 서류는 어떻게 하는지 등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사기꾼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바다 멀리서 구할 경우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여권 카피를 보내달라거나 선금을 미리 부치라고 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사기다. 

이쯤에서 자연스레 한숨이 나온다. 어딜 가도 내 집 구하기는 정말 어렵구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집 찾을 땐 ‘이 많은 집 중에 왜 내 집은 없을까.’ 한숨만 쉬며 다녔었다. 색색이 다른 타일을 뽐내며 길게 늘어진 아파트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부럽게 쳐다보며 말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따로 없구나!


베를린과 리스본, 모두 기회만 된다면 다시 살고 싶은 도시다. 언젠간 다시 살리라 상상에 부풀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아파트를 찾으라고 한다면... 돈이 많아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모를까, 가난한 소시민으로서 치솟는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 돈 때문에 또 하나의 매력적인 도시가 모래알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치솟는 도시의 집값은 시골살이를 꿈꾸게 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외친다. 

집 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깃들길! 


저 예쁜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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