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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Jan 02. 2019

질문 열둘: 어떤 종류의 여행이 있어요?

꼭 떠나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여행은 진화한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바야흐로 여행의 전성시대에
당신은 어떤 여행을 선택할 것인가?


베를린 템펠호프 공원 활주로에서.


# '관광'을 넘어서서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의 자유화가 선포된 해는 1989년이다. 자유롭게 세계를 드나든 지 벌써 30년이 되는 것이다. 처음 여행의 개념은 당연히 ‘관광’이었다. 유명한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에서 내가 여기 왔었노라 사진 도장 찍고 단 기간 내에 최대치를 뽑고자 줄기차게 진군, 또 진군하는 것. ‘관광’이란 단어를 들으면 난 바로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떠오른다. 인증샷을 찍으려는 몇 겹의 인파 앞에서 감상이란 말은 사치다.


여행이 보편화되고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관광을 넘어선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디까지 가봤니?’로 대표되는 구석구석 탐방이 늘어났고 며칠 보고 오는 게 아닌 살아보려는 의지가 강해졌다. 매년 최악이라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출판계의 총체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여행 에세이는 끊임없이 나오고 세계여행 한 번 다녀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여행기를 쓴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당장 가방을 싸서 떠나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어차피 결정은 당신 몫이므로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 다양한 여행 스타일


여행은 계속 진화한다.

패키지여행부터 시작해 한비야 작가가 일으킨 오지 탐험이 유행이더니, 자전거/모터사이클 종주 여행, 버스 타고 여행, 카우치서핑 여행,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여행, 에어비앤비에서 살기 여행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몇 년씩 여행하는 장기 여행자가 늘어나고 그림, 와인, 커피, 요리, 책방, 드로잉 등 전문적인 테마를 잡아 집중적으로 탐구하기도 한다. 소통 방식도 다양해서 다녀온 후 무조건 출간이란 공식이 아닌 SNS와 블로그, 동영상 채널 등을 이용해 미리 독자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휴대폰과 미디어의 발전에 의한 결과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면 만족했던 티브이는 이젠 웬만하면 눈을 세계로 돌려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다양한 포맷의 여행 예능을 선보인다. 그저 비행기만 타도 영광이었던, 아니 공항에만 가도 신났던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면 지금은 참으로 푸짐한 뷔페 밥상 앞에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바야흐로, 지금이야말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여행의 전성시대인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 베이비!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란 말이 선보인 지는 꽤 되었다. 녹색 창에 이 단어를 치면 ‘일과 주거에 있어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한경 경제용어 사전 참조) 즉 프리랜서로서 랩탑이 있고 콘텐츠를 창출해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롭게 사는 곳을 바꿔가며 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번역가, 작가, 유투버 등 직업의 종류는 다양하다.) 스스로 스케줄을 짜고 여가를 즐기며 일할 수 있으니 이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일 수 있겠다. 태국의 치앙마이나 인도네시아의 발리,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같은 경우 생활비가 싸고 인터넷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서 전 세계의 젊은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로 불린다. 더불어 이를 위한 앱과 플랫폼도 늘어나고 사무실을 같이 쓰며 커넥션을 만드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나 일하기 좋은 카페 등 파생 상품(?)들도 늘어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며 자판을 두들기다가 여유롭게 모히또나 한 잔 마시는 장면을 생각하면 분명 매력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다. 하지만 항상 움직여야 하는 고단함이 있고 (움직이는 고단함이라면 난 한도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다!) 항상 낭만적이지도 모든 사람에게 맞는 방식도 아니기에 막연한 환상과 동경은 금물이다.


프랑스에서 했던 핼프엑스


그 외 헬프엑스(HelpX)나 우핑(Wooofing), 워커웨이(Workaway) 사이트처럼 자신의 노동을 주고 숙식을 제공받으며 다니는 여행 (우핑은 주로 농장 일이고 헬프엑스는 호스트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집짓기, 아기 돌보기, 요리하기 등 노동의 종류가 다양하다. 몸을 쓰는 여행이니만큼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호스트의 입장에선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동력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관계가 수직적이거나 일방적일 수도 있다.) 캐러밴을 집처럼 개조해 최소한의 물건으로 여행하며 사는 밴 라이프(Van-life. 요즘 빠르게 전파되는 트렌드로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멋들어진 드론 영상과 함께 자신의 밴 라이프를 생중계하는 수많은 유투버들을 볼 수 있다.), 레인보우 개더링이나 생태마을의 워크숍을 쫓아다니며 사는 히피 라이프, 아티스트 레지던시(특정 기간 동안 아티스트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를 다니며 예술 창조 작업을 하는 레지던시 라이프 등 새로운, 혹은 전부터 있어왔던 방식이 더 발전되는 형태로 여행은 진화를 계속한다. ‘카우치서핑’이란 단어마저 생소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이런 여러 종류의 여행이 소개되고 있다. 이제 여행은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꼭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


# 꼭 떠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서점에 가서 에세이 서적들을 둘러봤다. 제목이 하나같이 ‘나’를 중심으로 한다.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나를 위로할 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이제 나를 안아줘야 할 시간’ 등등… 사람들이 얼마나 팍팍하게 ‘나’를 보듬지 못하고 살길래 이런 제목이 이리도 많을까 싶다. 이러니 다들 떠나고 싶어 안달하는 거겠지.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듬기 위해 여행을 택한다. 단순히 휴식을 위한다면 편한 패키지여행도 좋겠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러 여행의 형태를 공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떠나야 할 이유가 백만 가지인만큼 떠나지 않을 이유도 백만 가지다. 떠나지 않는다고 해서 용기가 없는 걸로 치부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 한 곳에서 꾸준히 당신의 일상을 쌓아가는 당신을 난 존경한다. 굳이 떠나지 않아도, 괜히 트렌드라며 일일이 다 따라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여행을 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아도 나를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여행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시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행에서도 자존감이 필요하다. 

떠나든 안 떠나든, 여행은 당신 안에 있다.


그래도 떠나는 건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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