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 레인보우 개더링 1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할 때

by Yellow Duck
'나는 히피인가'를 논할 때 레인보우 개더링에 대해 언급했는데,
내가 이 개더링에서 겪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쓰고자 한다.


저 곳은 현실인가 꿈인가?


# 울트라 환상특급 신세계 '레인보우 개더링'을 당신을 초대한다.


포르투갈 서남쪽의 한 국립공원 안.

같이 간 릴리의 차가 어떤 마을에 도착하자 ‘레인보우’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홍해 바다 가르듯 황량한 벌판 사이로 뻗어 있는 비포장도로를 가리킨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를 유혹하는 노란색 벽돌 길처럼.

우린 무엇에 홀린 듯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오즈로 가는 그 길을 따라간다.

서늘한 미래를 예고하는 코엔 형제 감독의 인디 영화 한 장면 같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 제일 먼저 듣는 말은 ‘Welcome home’이다.


집에 온 걸 환영한다.


서슴없이 '집'이란 말을 쓰듯 여기는 모두가 가족이다.

환영 인사로 안내자가 포옹을 한다. 그 포옹은 상식을 넘는 긴 포옹이어서 처음 온 사람들은 당황한다.

4초, 5초… 30초. 어, 이건 뭐지?

얼떨결에 계속 안고 있지만 왠지 불편하다. 그냥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면 되는 거라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이 포옹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웰컴 홈, 핼로 패밀리, 아이 러브 유를 외친다. 날 언제 봤다고 패밀리이고, 어떻게 안다고 사랑한다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입바른 소리일지라도.


구불구불 작은 길을 따라가자 최소 오백 명은 수용할 것 같은 큰 벌판이 펼쳐진다.

우뚝 솟은 나무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벌판을 둘러싸고 있다.

가운데 캠프파이어가 있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텐트가 산발적으로 쳐 있다.

곳곳에 티피 및 큰 천막,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미니 카페, 부엌 등 다양한 공간이 있다.


오른쪽 커플의 저 포옹. 익숙해지기 어려운 저 포옹.


# 인상적인 건 식사 시간이다.


이곳에선 삼시 세끼를 벌판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같이 먹는다.

벌판 한쪽 구석에 부엌이 있는데, 간이 천막 밑에 테이블 몇 개와 3개의 솥이 다인 이 작은 부엌에서 몇 백 명 분의 음식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상상을 못 한다. 부엌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지만 메뉴를 정할 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요리를 한다.

난 우리 가족 셋의 분량도 못 맞춰 낑낑대는데, 이 많은 인원의 분량을 어찌 맞추는지… 한정된 공간과 도구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내는 게 신기할 뿐이다.

게다가 맛있기까지! 주로 곡물, 샐러드, 과일 등 채식주의 메뉴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밥을 먹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끼니에 맞춰 요리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Food Circle! 하고 크게 외친다. 곧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밥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한 번 더 소리친다. 먹을 테니 준비하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밥이 다 되면 Food Circle Now! 하고 소리친다. 사람들이 소리를 전달하고, 그러면 자기 밥그릇을 들고 하나둘씩 어슬렁 벌판으로 모인다.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들고, 좁으면 안에 하나 더 만든다. 그리고 사람이 다 모일 때까지 노래를 부르는데 레퍼토리가 한정되어 있고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라서 금방 따라 할 수 있다.

사람이 다 모여서 노래가 잠잠해지면 박수를 치고, 명상의 소리를 낸다. 그 왜 가부좌하고 ‘옴~’하는 소리 있지 않나. 그다음 땅에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눠줄 때까지 기다린다.

이러다 보면 밥 먹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데, 어쩔 땐 한 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시계가 없으니 진짜 그렇게 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온몸에선 백 시간은 족히 걸렸다고 발악을 한다.

식사 의식을 신성하게 하는 건 좋지만 아이가 배고프다고 옆에서 칭얼댈 땐 ‘아이고, 작작 좀 하지…’ 할 때도 있다. 밥 먹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니 세 끼 먹으면 하루가 다 간 듯한 느낌이다.


옆에 앉은 사람과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다. 미루도 거부하지 않고 잘 먹는다.

전달 사항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목청껏 소리 지른다.

- 재래식 화장실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지원자는 식사 후 부엌 앞으로 모여주세요!,

- 요리할 때 쓸 땔감과 식수가 다 떨어졌습니다. 각자 땔감을 모아 부엌으로 가져다주시고, 물 길어 오실 분 지원받습니다!’

- 전 저글링을 합니다. 워크숍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어디로 모여주세요!’

- 전 그냥 감사하단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레인보우 가족을 만나 너무 행복합니다!’

마이크가 없어서 모두가 들으려면 배에 힘을 콱 주고 목이 터져라 소리쳐야 한다.

신기하게도 지원자를 모집하면 사람이 모인다. 물론 염치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치 심장에서 뿜어낸 피가 알아서 온몸을 돌 듯, 시키는 사람도 없고 떠밀려 억지로 하는 사람도 없이 모든 일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저 좋아서, 이 공동체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진심 어린 마음에서 할 뿐. 실체 없는 큰 생명체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음식 나눠주는 사람도 자원한 것이다. 이들은 식사 후 모자를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들로부터 기부를 받는다. 내는 사람도 있고 안 내는 사람도 있다. 1,2 유로씩 십시일반으로 보인 돈은 음식 재료를 구입하는데 쓰인다.

먹고 나면 각자 설거지를 하는데 세제 대신 재를 사용한다. 재를 그릇에 뿌려 손으로 비빈 후 3개의 물통에 차례대로 담가가며 헹군다. 음식 자체에 기름기가 없어서 덜 씻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레인보우 개더링 지도


# 뭐지? 이곳은 천국인가?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흩어져 각자 생활을 한다.

음악과 춤이 끊이질 않고 캠프파이어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호롱불 아래 옹기종기 모여 지구의 기운과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마리화나를 핀다.

먼저 마음을 연 사람 옆에 앉아 내 마음에도 들어오라고 활짝 문을 열어준다.

이곳에 있으면 내일은 오지 않을 것 같고, 나의 존재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이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오롯이 내게 집중하여 쌓아 올린 에너지는 눈을 뜨는 순간 온 우주에 전달되고, 상대의 에너지를 받아 사랑과 평화의 탑을 올리고 또 올린다.

쌓고 쌓은 탑 꼭대기에서 궁극의 환희를 느낀다. 진정

‘사랑과 평화’의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이 기분.


참고로 난 마리화나를 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뽕 맞은 듯’ 이런 기분이 드는 건 확실히 레인보우만이 줄 수 있는 고유의 힘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곳은 천국 같다.

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시라.


밴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곳곳에 펼쳐진 텐트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Photos by Yellow 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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