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으로 족할 끝내주는 파티
앞의 이야기만 들으면 난 천국에 있는 것 같다.
자, 이제 나의 냉소의 세계로 초대한다.
나에겐 히피에 대한 클리셰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만났던 히피에 의해 쌓인 부정적인 클리셰다.
사랑이고 평화고 나발이고, 소비주의, 자본주의,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건 좋으나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환원 없이 그들만의 버블 속에서 거울을 보며 자뻑하는 모습들. 말로는 당장에 세계 평화를 이룰 듯 거창한 얘기를 늘어놓지만 결국 쫓아가는 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쾌락과 행복.
난 이들이 이율배반적이라고 느꼈다.
‘19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에의 귀의 등을 강조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평화주의를 주장한 자연찬미파 사람들.’
백과사전에 정의된 것처럼 처음에 그들은 이랬다.
스콧 매켄지가 노래했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라고. (If you a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하지만 시작과는 다르게 현 밀레니얼 세대의 히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난 항상 히피 문화가 공산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상은 아름답지만 실행은 불가능한, 혹은 변질되기 쉬운 이상주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녹색 창에 ‘히피’를 치면 미장원에서만 쓸 수 있는 말인 ‘히피펌’만 쫙 뜬다.
이런 클리셰 때문에 처음 릴리가 레인보우 개더링에 가자고 했을 때 선뜻 나서질 못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다. 내가 느꼈던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 뒤로 일회성 쾌락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더 자유로운 영혼이다’라고 증명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아닌척하지만 남을 의식하며 보란 듯이 불 앞에서 뱀 춤을 추는 여자들.
거드름 피우며 앉아 인생 모든 걸 득도한 듯 똥 폼 잡는 남자들.
뒷주머니에서 기다렸다는 듯 (마리화나가 아닌 진짜) 마약을 꺼내는 젊은이.
보인다. 알맹이 없는 그들의 허세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
불편한 생활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그런 모습을 봐주기엔 난 너무 못됐고 냉소적이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Phony
우리말로 하면 ‘가짜’, ‘위선자’쯤 되겠는데, 난 마치 홀든이 된 것처럼 phony란 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밤마다 울리는 북소리와 불 쇼와 춤의 행진에서 벗어나 자연이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와 선한 눈을 가진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말하는 소리에 집중한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이 여럿 있다. 그들과 얘기를 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한다.
역시 사람을 빨아들이는 에너지는 사람에게서 나오고, 사람을 밀어내는 에너지도 사람에게서 나온다.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사람이다.
텐트 속, 얇은 매트 때문에 아픈 허리를 뒤척이며 미루를 재운다.
멀리서 들리는 주술적인 북소리와 근 팔백에 달하는 인원의 환호성은 얇은 텐트 천에 굴절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자장자장 미루 등을 토닥이며 난 이 정체 모를 유기체가 과연 몇 명의 인원으로 며칠이나 지속될지 지극히 현실적이 되어 계산해 본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은 어차피 철없는 애송이들이고, 며칠 실컷 쾌락을 누린 후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진심 영적으로 히피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몇 명이나 될까? 백 명? 오십 명? 그래, 오십 명 정도만 돼도 이 공동체를 꾸려갈 만하다.
하지만 얼마나 유지될까? 대체로 한 달 정도 열리고 끝나는데, 한 달이 한계일까?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 운영을 위한 경제 활동은 누가 하며, 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갑자기 사고가 생기면? 이 많은 인원이 배출해내는 쓰레기와 오물은 어디까지 처리가 가능할까? 이 자연은 몇 명까지 평화롭게 보듬어줄까? 물론 많은 개더링을 다니며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 있을 테니 그들의 지혜를 빌릴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난 여기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이렇게 모이는 게 과연 사회를 위해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식의 흐름은 밤하늘의 별을 잇고 북두칠성이 다 그려지기도 전에 난 미루와 함께 잠이 든다.
일주일째 되던 날 아침. 난 여기까지라는 걸 깨닫는다.
짙은 초록 속에 벌거벗고 뛰노는 미루를 보는 게 좋고,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을 만나 연락처까지 주고받았지만, 카밀 없이 이곳에 계속 있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느낀다. (카밀은 당시 네덜란드에 있었다.)
내 기운은 충만해졌고, 앞으로 내 우주를 공유하고 같이 만들어 갈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카밀이란 생각에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난 릴리에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릴리도 동의한다.
그리고 처음 우리를 안내했던 그 노란 벽돌 길을 따라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환상특급의 선을 넘을 때 우리를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사람이다.
그렇게 내 하드코어 ‘정글의 법칙 – 히피 체험 편’이 끝난다.
현실로 돌아오니 뭔가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것도 레인보우 개더링의 효과라면 효과일까?
21세기의 히피는 정신이라기보단 패션 혹은 트렌드인 듯하다. 하지만 이들이 근본적으로 지니는 ‘반문화’ 성격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아직 히피에 대한 내 클리셰는 여전하지만 이 레인보우 개더링이 오랫동안 지속되길 빈다.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하는 히피 문화가 언젠가 진짜로 ‘사랑과 평화’의 힘을 발휘해 제대로 조직화되어 (마약 없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같이 이상향을 도모하는 원천이 되길.
어른들과 주류들이 정해버린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고 세뇌된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겐 이런 한바탕의 파티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파티에서 미친 듯이 놀고 그 기운으로 자신만의 먼 길을 터벅터벅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슬쩍 흥얼거린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All photos by Yellow D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