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자동차를 소유할 팔자가 아닌 걸까?

안타까운 차의 흑역사

by Yellow Duck
카밀과 나의 차 역사는 고난의 역사다.
모두 중고로 총 다섯 번을 구입했는데 당최 좋게 끝난 적이 없다.
장기 여행에 있어 필수 요소 중 하나가 차이거늘,
왜 우린 차와 그리 인연이 안 닿았는지.


언니, 달려!


# 첫차


첫차는 연식이 오래된 르노 11 GTL이었다.

베를린에서 구입했지만 스페인 번호판에, 등록 역시 스페인으로 되어 있는 희한한 차였다.

사실 그때부터 알아봤었어야 했다. 대머리에, 큰 덩치에, 팔에는 망치 타투가 있고 꽉 낀 청바지 위로 엉덩이 골이 보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던 딜러 아저씨의 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는데. 친절이란 단어 따윈 내 사전에 없다는 말투는 내 귀를 불쾌하게 했었는데!

하지만 이 차는 카밀이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차였고, 그랬기에 순진하게 그 딜러 아저씨의 말만 철떡 같이 믿고 산 무지의 소산이었다. (나 역시 차에 대해선 까막눈이었기에 도움이 안 됐다.)

스토리가 꽤 긴데 거두절미하고, 채리티 트래블을 끝낸 후 독일에서 지내던 우리는 유럽에서의 내 3개월 비자 체류 기간이 끝나가자 이 차를 몰고 아프리카 모로코로 가기로 결정했다.

몇 날 며칠을 달려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카밀은 관공서에서 이 차의 등록증을 확인했고, 놀랍게도 도난 차량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뭐라고? 도난 차량이라고? 이 사기꾼 딜러 XX!!

경찰이라면 질색을 하는 카밀은 그 사실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모로코행 배를 탈 수 있는 항구도시 알제시라스(Algeciras)까지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경찰차를 지나칠 때마다 행여 번호판을 확인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알제시라스 항구의 주차장에서 짐을 꺼내 정리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차에 아디오스를 외쳤다.

첫차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워낙 싸게 산 차였고 시동도 자주 꺼졌기에 크게 미련도 없었다.

그렇게 첫차는 이름 모를 스페인 항구에 버려졌다.


불타버린 캥구. 무소유란 이런 것.

# 세 번째 차


세 번째 차는 미루와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공동체 찾기의 첫 발을 내디뎠던 르노 캥구(Renault Kangoo) 파리지엔 스페셜 에디션이었다. (어쩌다 보니 또 르노!)

샛노란 색에 검은색 장식이 있는 예쁘고 튼튼한 차였다. 연식이 오래됐지만 전 주인이 거의 쓰지 않아 새 거와 다름없었다. 우린 이 차를 꽤 좋아했고 덕분에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를 즐겁게 여행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스러운 캥구는 스페인 (또!) 한복판에서 어이없이 불타버렸고 (불이라니! 불!!) 검디검은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그 운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에 대해선 뒤에 자세히 쓰련다.


이런 밴이라면 또 사고 싶다.


# 마지막 차


우리의 마지막 차는 ‘마마카라바나’ 프로젝트를 위해 구입했던 미쯔비시 익스프래스(Mitsubishi Express) 시리즈 캐러밴이었다. (마마카라바나 프로젝트는 언젠가 썰을 자세히 풀 것이니 계속 이 매거진을 읽어주시길!)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에, 미쯔비시라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감 때문에 여행자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밴이었다. 비교적 최신 모델에 전 주인이 장기간 여행을 위해 수납공간과 잠자리 공간을 개조해 놓은 게 마음에 들었고 예산도 맞았기에 주저 없이 친구와 함께 공동 구입을 했다.

하지만 근 삼천오백 킬로가 넘는 긴 여행은 천하무적일 것 같았던 이 밴도 뻗게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독일에서 포르투갈로 돌아오던 중, 미쯔비시는 프랑스 고속도로 위에서 두 번이나 ‘퍼져’버렸고, 구입한 가격의 반 이상을 차 수리비로 써야만 했다. 견인차를 부르고 정비소로 옮기고 수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그동안의 흑역사를 되새기며 ‘차’라는 물건 자체에 완전히 질려버렸고 이 차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차와 멀리하자고 합의를 봤다.

포르투갈로 돌아온 후 첫차인 르노 때처럼 미련 없이 모든 짐을 꺼냈고, 공동 구입했던 친구와 약간의 껄끄러운 정산 후 바로 이 차를 팔아버렸다.

참으로 기나긴 흑역사의 종지부였다. (두 번째와 네 번째 차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 난 차가 무섭다...


난 차가 무섭다. 운전이 무섭다.

면허증은 있지만 면허를 딴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차를 몰아본 적이 없는, 15년 이상 장롱면허다.

죽음도 안 무섭고 바퀴벌레나 쥐도 안 무서운데 차는 왜 그리 무서운지.

번잡한 시내나 고속도로 위에서 바짝 신경이 곤두선 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쭈뼛 선다. 하물며 야간 운전이나 빗길 운전은? 어휴, 공포도 그런 공포가!

나의 이런 뼛속 깊은 두려움이 차와의 악연을 만든 걸까? 반대로 카밀은 운전을 무척이나 즐기는데, 차와 그리 안 풀리다니 참 아이러니다.


필요악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문물들이 있다.

대게 기술과 관련된 것들인데, 누구에게는 컴퓨터고 누구에게는 휴대폰이라면 나에겐 차다.

아직까지는 카밀과 대중교통에 의존하며 버텼지만 결국 난 필요에 의해 차를 몰아야만 할 거다. 키가 작아 다리가 짧아서 브레이크에 발이 안 닿는다는 둥, 산만해서 사이드 미러를 잘 볼 수가 없다는 둥, 이런 변명은 차가 필요한 급한 상황에선 먹히지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지금은 딱히 차의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유럽으로 돌아가 여행을 시작할 경우 어쩔 수 없이 구입해야겠지. 그때 카밀은 나에게 운전 연습을 요구하겠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쿵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결국 내가 넘어야만 할 산이겠지. 피하지 못한다면 즐기라고 했건만, 하아~ 진심 하기 싫구나, 이놈의 운전! ‘전격 Z작전’의 키트는 언제 나오려나?


다년간 쌓인 차와의 악연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거다.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우린 다섯 번이나 그 사실을 경험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싼 차는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선 토를 달 여지가 없다.

우리 차의 흑역사는 무지의 역사다. 앞으로도 새 차보다는 중고차를 구입하겠지만,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신중하고 충분한 정보 수집 끝에 구하겠지만, 난 정말이지 되도록이면 차를 멀리하고 싶다.

필요악과 같이 사는 방법은 어떻게 배울까?


달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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