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의 공포는 겪지 않고는 모른다.
해피 밸리의 친구들은 산불로 모든 것을 잃었다.
재건을 위해 떠나지 않고 다시 그 땅을 딛고 서는 그들에게 경외를 표한다.
포르투갈 중부, 우리가 살던 코자(Coja) 마을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쎄라 데 아쏘르(Serra de Acor) 산속으로 깊게 들어가면 벤페이타(Benfeita)란 작은 마을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그곳엔 포르투갈 현지인들 외에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등 북쪽 유럽 국가에서 내려온 외국인 가족들이 꽤 많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공동체의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기보단 계곡 하나를 끼고 몇 년에 걸쳐 자연스레 가족이 늘어갔는데, 어느새 40가구 이상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들은 그 계곡을 해피 밸리(Happy Valley)라 불렀다.
폐가가 딸린 땅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기에 우리도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땅을 보러 다녔다.
내 눈에 밴페이타는 이상적이었다. 우선 특정 목적 없이 자연스럽게 모였다는 게 좋았고 자연 속에서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매력적이었다. 집도 서로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좋은 이웃관계를 유지하려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안 좋았는지 마땅한 매물은 나오지 않았다. 카밀도 보면 볼수록 너무 산속 깊이 있고 현지인과의 교류가 적은 게 아쉽다고 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벤페이타에서의 정착은 옵션에서 지워졌다.
2017년에 포르투갈은 산불로 큰 홍역을 치렀다.
원래 건조하고 더운 날씨 탓에 산불이 잘 일어나지만 이 산불은 백 명이 넘는 사망자와 오십이만 헥타르의 땅을 잿더미로 만들고, 3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게 만든 포르투갈 사상 최악의 산불이었다.
그리고 벤페이타는 직격탄을 맞았다. 드레곤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불처럼 엄청난 파워의 불이 마을을 덮쳤고 해피 밸리의 사람들은 뭐 하나 챙길 것도 없이 부랴부랴 대피부터 해야 했다. 간신히 산불이 진화된 며칠 후 마을을 다시 찾은 그들을 맞이 하는 건 산불이 남긴 검은 재뿐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맨손으로 몇 년간 일구었던 집과 밭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중에는 우리와 교류했던 가족도 있었다.
진지하게 정착을 고려했던 우리에겐 실로 아찔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랄까. 폐허 위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 모습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알 수 없는 인생이여.
최근 몇 년간 포르투갈의 숲은 종이 사업을 위해 자연림 대신 유칼립투스나 소나무로 교체되고 있었다.
유칼립투스 나무는 기가 세서 토양의 물을 모두 빨아들이고 주변의 나무를 죽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건조한 환경을 만들고, 그로 인해 산불이 번지는 속도와 피해는 여지없이 커진다.
발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후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 최고 47도까지 올라간 포르투갈 여름의 온도라면 산불이 아니 날래야 아니 날 수가 없다. 산불이 발생하면 나무속의 온실가스가 대기로 배출되고, 이는 기후 변화를 가속시킨다. 악순환인 것이다.
이 때문에 몇몇 환경 단체가 유칼립투스 나무 재배 규제를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자본주의와 시장 논리는 이미 깊은 산골에까지 터를 잡아버렸다.
소식에 의하면 소방관 수가 모자라 산불이 휩쓸 동안 소방관을 한 명도 보지 못한 지역이 많다고 했다. 주민들이 물동이와 호스로 싸워야 했고 전화선과 전봇대가 무너지면서 인근 주민에게 산불의 경로와 탈출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끊겨 피해가 더 커졌다고 했다.
산불 피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난 내 속을 뒤흔드는 허무함에 휩싸였다.
물론 그들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모든 것을 잃었으면 미련 없이 떠날 법도 한데 그들은 떠나지 않고 서로 힘을 모아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펀딩 사이트를 만들어 모금 운동을 하고 지쳐 떠나는 이들에겐 야속함보다는 행운을 빌어준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절망을 딛고 협동하며 일어서는 그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담긴 동영상을 보며 결코 나라면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그들에게 한없는 존경심이 일어났지만, 가슴을 애이는 이 허무함은 어쩌란 말이냐. 모두 인간이 만든 재앙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스 희곡이나 성서를 보면 인간이 저지른 모든 만행을 한순간에 덮어버리는 커다란 자연재해가 등장하곤 한다. 이는 인간에게 벌을 주기 위한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해피 밸리에서 살던 사람들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친환경적 삶을 실천하고 이웃끼리 도우며 소소하고 행복하게 잘 살던 이들이 왜 자본주의를 쫓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죄 때문에 이렇게 벌을 받아야 하는지 난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난 ‘정착 안 하길 잘했다’라는 속 좁은 안도보단 앞으로 다가올 다른 재앙이 더 무섭다.
우리가 겪었던 산불의 공포가 다시 밀려온다.
코자 마을에서 지인의 집을 관리하며 살 때 카밀이 잡초를 제거하던 중 기계의 날이 돌을 쳐서 난 스파크 때문에 산불이 일어났었다. 다행히 소방차가 빨리 출동해서 집을 중심으로 반지름 액 300미터 정도만 타고 진화가 되었지만 그땐 정말 집이 탈까 두려워 정신 나간 개처럼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뛰어다녔다.
방향을 바꾸며 순식간에 요리조리 번져가는 불은 마치 먹잇감을 찾아 질주하는 요괴 같았다. 그 공포는 이루 말로 풀어내기 힘들다. 자연의 힘 앞에 사람이 얼마나 속수무책인지, 당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구를 생각해야 할 때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공룡 기업과 그와 유착한 정치인과 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국가 정책은 지구를 갉아먹어도 너무 갉어먹고 있다. 물은 점점 말라가고 쓰레기는 쌓여간다.
도대체 어떤 재앙을 또 겪어야 그 위험을 인식할는지.
왜 곳곳에서 울리는 경고의 소리를 무시하는지.
주르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해피 밸리의 친구들이 불쌍해서. 지구가 불쌍해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그들의 재건을 위해 난 기부 버튼을 눌렀다.
All photos by Yellow D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