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소소해서 지루하고 너무 지루해서 불안한
소확행, 소확행 하지만
진짜 소확행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뒷마당 중앙의 큰 나무에 목련 비슷한 게 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목련나무와 생김새가 달라 이게 목련인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안타깝게도 높이 있어서 꽃이 잘 안 보인다.
정원 여기저기에 꽃이 많아서 좋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잘 모르는 꽃은 인터넷으로 검색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물끄러미 꽃을 바라본 게 언제였던가.
새삼 돌아오는 소녀 감성에 온몸이 오그라들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오그라듦이다. 꾸깃꾸깃해져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오그라들어야지!
때는 여름이었고, 프랑스로 휴가 가신 시부모님을 대신해 시댁 집을 봐 드리며 긴 하루 끝의 따뜻한 코코아 한잔 같은 포근함과 여유를 즐기던 네덜란드의 날들이었다.
볕이 좋을 땐 정원의 파티오에서 식사를 하고, 풀밭에 매트를 깔고 누워 책을 읽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맨발로 돌아다니며 꽃과 나무에 물을 주고, 닭들이 아침에 낳은 따끈따끈한 달걀을 줍고, 흐드러지게 열린 산딸기를 따다가 요구르트랑 먹고 (이놈의 산딸기는 따도 끝이 없다. 무섭기까지 하다.) 오래된 악보를 꺼내 피아노를 치고, 집시 킹 음악에 맞춰 셋이서 춤을 추고, 해가 기울어 선선해지면 숲으로 산책을 가고, 저녁에 미루를 재운 후 글을 쓰거나 사진 정리를 하거나 영화를 본다. 숲에서 그림책과 아동극 영감을 얻고, 인터넷으로 언어 공부를 하고, 영원히 미뤄뒀던 카밀의 단편소설 번역을 하고, 얼마 전엔 묵혔던 색연필을 꺼내 스케치를 끄적이기까지 했다. 채 만 두 살이 안 된 미루는 닭 보며 놀고, 꽃이랑 개미 보며 놀고, 소를 보면 무우~ 무우~ 소리 내며 쫓아다니고, 중얼중얼 세상 모든 사물과 대화하며 하루를 보낸다.
아! 여기야말로 무릉도원!
이게 바로 가진 건 시간밖에 없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로구나!
자기 전 천정을 보며 오늘 한 일을 생각하면 딱히 생각이 안 나는, 그럼에도 시간은 뜨거운 자갈밭 위를 뛰는 토끼 마냥 빨리 가는 아이러니. ‘규칙적으로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 일상의 뜻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는, 말 그대로 ‘별일 없이 사는’ 날들.
팔자 좋단 말이 저절로 나온다. 먹고 살 걱정이 한 바가지지만 이런 순간의 여유와 행복을 놓칠 수 없어서 걱정은 그냥 걱정 인형에게 맡기고 그저 최대한 1분 1초를 누리고 싶다.
네덜란드는 참 소소한 나라다.
나라 전체에 굴곡 없는 일정함이 느껴지는데, 그건 평평한 이 나라의 지형과 동일하기도 하다. 지형의 영향을 제대로 받는 나라 중 탑이지 싶다. 특별한 사건 없이 잔잔히 진행되는 유럽 예술 영화 같고, 화려한 중국 경극이 아닌 버선발 하나 조심스레 들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비’는 승무와 같다. 풍차와 튤립 외에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네덜란드는 바로 이 소소함이 무기다.
작은 일상의 힘이 강한 나라. 이게 바로 매년 국가 행복지수 탑 텐에 들어가는 네덜란드의 힘일까?
그런데 참 웃기다. 누구나 바라는 천국 같은 생활이 슬슬 나에겐 옻나무에 스친 피부처럼 간지럽기 시작했다.
슬로우 여행을 지향했지만 항상 ‘이동 중’이었고, 어느 한 곳 온전히 ‘우리 집’이 아니었던 까닭에 이런 사치를 부릴 기회가 없어서인지 불청객처럼 찾아온 이런 일상의 여유가 처음 보는 사이처럼 어색했다.
여유가 지나치면 게으름이 되고 게으름이 지나치면 죄악이 된다. 서양의 칠거지악 중 하나가 게으름 아니던가? 게으름은 내 평생의 적인데, 어느 순간 난 게을러지고 있었다. 내 게으름은 게으르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늪에서 허우적대는 최악의 게으름인데, 머리는 팽팽 도는데 몸은 무거우니 곤욕도 이런 곤욕이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혼란스러워야 하나 보다.
소소한 일상을 바라면서도 막상 그 속에 있으면 지루해지는 인간의 이중성은 뭘까?
뭐든 중용이 필요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진리지만 왜 그 밸런스는 이루기 어려운 걸까?
어느새 난 시부모님께서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서 다음 여행지인 포르투갈로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험과 변화를 갈구하는 내 엉덩이에 슬슬 불이 나기 시작했고 순간 내가 알 수 없는 불안감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
안정을 바라면서 동시에 모험을 바라는 이중성.
난 내가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동안 부정해왔던 내 속에 감춰진 노마드의 피를 느꼈다.
여행에서 만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출신 여행자들 대부분은 자기 나라를 떠난 첫 번째 이유로 지루함을 꼽았었다. 즉 너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티는 안 냈지만 그땐 속으로 참 복에 겨운 소리 하고 앉아있네 하며 혀를 끌끌 찼었다. 세상에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모두가 부러워하는 복지국가에 살면서 지루해하다니, 니들이 아직 고생을 덜 했구나!
어찌 보면 꼰대 같은 태도였다. 그 지루함이란 게 어떤 건지 알고 나니 그들이 이해가 됐다. 떠날만했다.
웃긴 건 한 번 여행을 시작하면 계속되는 이동이 너무 힘들어 이런 소소한 일상을 그리워할 거라는 거다. 그때가 좋았지 하며. 참 나,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소소함과 모험 사이. 그건 ‘정착과 여행 사이’로 확장된다. 그 간격이 아직까지는 내겐 너무 크다.
내공이 덜 쌓인 건가? 천천히 좁혀 가고 싶다.
그러고 보니 참 멍청하구나. 목련은 봄에 피는 꽃이잖아. 지금이 여름인데, 목련일 리가 없지.
그럼 저 나무는 무슨 나무지? 세상에, 식물도감을 펼쳐보는 이 여유라니!
All photos by Yellow D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