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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Jan 01. 2019

라면 찬양

깊고도 오묘한 MSG의 수퍼 파워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는 라면~
가루가루 고춧가루~!!
라면을 찬양 하노라!


# 베를린에서 살 때 카밀과 대판 싸운 적이 있다.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 못 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 결국 혼자 씩씩거리며 근처 한국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마치 광고를 찍듯 해물라면을 폭풍 흡입했다. 목구멍에 참기름이라도 바른 듯 후룩후룩 넘어가는 면발이 뜨거워 목을 빼고 입김을 뿜어내며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그릇에 얼굴을 파묻으며 마지막 국물까지 쭈욱 빨아들이고 있었다. 후아~! 탄성을 내며 그릇을 탁 내려놨을 때, 발가락 끝에서 머리끝까지 쫘아악~ 올라오는 건 바로 오르가즘을 능가하는 카타르시스. 후련함도 그런 후련함이 없었다.

입 한 번 훔치고, 코 한 번 팽 풀고, 얼마예요?! 계산하고 나오니 언제 그랬었냐는 듯 화로 인한 스트레스는 싸악 사라졌고, 룰루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향했다. 심지어 카밀을 토닥여줘야겠단 생각까지 했다니까!

그때 새삼스레 느꼈던 라면의 힘. 역시 한국인은 라면이다!


프랑스 깡촌에서 발견한 미스터 민 오리지날 코리안 라멘.


# 라면의 슈퍼 파워


타지에 있다 보면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은 남달라 진다.

해수욕장 한복판에서도 전화 한 통이면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배달 문화 한국에서 살다가 따로 아시안 마켓에서 재료를 사고 집에서 오랜 시간 만들어야 먹을 수 있는 타지에 있다 보니 그 간절함은 더하다. 게다가 한국 음식이 좀 번거로운가? 또 외국에 있는 한국 식당은 왜 그리 비싼지. 길거리에서 이천 원이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외국에서는 한 그릇에 만 원이 넘는다.

만들기는 귀찮고, 사 먹자니 주머니 사정이 아쉽고… 아아~ 그립구나, 한국 음식!

순대볶음, 주꾸미, 순두부, 냉면이여!

그런데 신기하게도 임산부 침 흘리듯 당기는 이 한국 음식에 대한 열망을 한 방에 달래주는 게 있으니 바로 다름 아닌 라면이다. 고작해야 MSG 덩어리밖에 안 되는 라면의 이 슈퍼 파워는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참 유럽을 돌아다니던 시절, 당최 라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요즘엔 웬만한 유럽 도시라면 아시안 마켓 하나쯤은 다 있고, 거기서 신라면, 너구리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워낙 깡촌 시골로만 다니다 보니 아시아의 ‘아’도 찾을 수 없었다. 간혹 기적적(!)으로 일본이나 중국 라면을 발견했지만 그게 어디 라면 축에 끼기라도 하나! 한낮 변방의 조무래기들일 뿐.

그런 와중에 프랑스 중부 지방에서 이 컵라면을 발견했으니, 난 프랑스 슈퍼마켓 한복판에서 ‘심봤다!’를 외쳤다. 바로 이 Mr. Min, Original Korean Ramen. 오오~ 진정 네가 오리지널 코리안이란 말이냐?

보는 즉시 바로 구입, 그날 밤 카우치서퍼 집에서 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혼자 몰래 창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포크를 들었는데… 아아~~ 내가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농심, 삼양, 팔도, 오뚜기가 아니더라도 한국 라면 그대로의 맛을 프랑스 한복판 깡촌에서 즐겼으니, 누구인지 몰라도 미스터 민! 당신은 내 영웅이에요! 지금 이 순간, 내 고향의 맛은 MSG 라면 스프일지어다.


라면, 믹스 커피, 참치캔. 타지에서 이런 복이!


# 이토록 평등한 음식이 있을까?


라면은 백수 시절의 가난과 배고픔을 감싸주고, 자취생의 한밤중 친구가 되어주고, 대학시절 MT의 낭만을 더해주고, 대합실 여행객의 출출함을 채워주고, 타지 생활의 향수를 달래준다.

미국의 햄버거가 과연 이만한 정서를 담고 있을까?

내가 라면을 그리워하는 건 비단 맛뿐이 아니라 ‘한밤중 혼자 맨발에 무릎 나온 츄리닝 입고 양반다리 하고 앉아 티브이의 쓸데없는 농담에 낄낄거리며 후루룩 냄비 뚜껑에 올려진 라면을 먹는’ 이런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그리워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구나 라면에 대한 자기만의 추억이 있다. 이런 까닭에 라면이 한국인에게 주는 심리적 편안함과 안정감은 과히 슈퍼맨급이다. 라면의 슈퍼 파워는 ‘보통 사람’, 즉 서민을 대면한다는 사실에서 나올지니, 이만큼 인간적이고 평등한 음식이 있을까 싶다.

라면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런 정서적 힘 앞에 그런 웰빙 이론은 깨갱 꼬리만 감출뿐이다.


나중에 난 미루에게 라면을 먹일까? 카밀이야 당연히 건강엔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MSG 덩어리를 준다며 길길이 뛰겠지만, 그건 한국인의 피가 단 0.1 퍼센트도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미루가 커서 독립을 하고 오랜만에 집에 왔을 때, 내 방문을 빼꼼히 열며 ‘엄마, 우리 출출한데 라면이나 한 판 할까?’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한국인이라면 라면! 누가 뭐라 해도 난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을 한국인의 피가 철철 흐르는 미루와 함께 즐길 것이다.

참고로 난 달걀은 안 넣는다. 라면 스프 그대로의 맛이 좋다. 단 마지막에 아주 살짝 식초를 한 방울 넣으면 맛이 화악 살아난다.


베를린에서 먹었던 해물라면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밤, 라면 물 올리는 소리가 전국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래도 아직 라면은 안 돼. 대신 우동을 먹어라.


All photos by Yellow 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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