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청춘!

내 인생도 여전히 축제일까?

by Yellow Duck
제 아무리 말이 안 되고 무모하다 해도
그 모든 걸 낭만으로 만들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젊음의 힘.


포르투갈 리스본의 중심, 에드아르두(Eduardo) 공원 바로 옆에 있는 ‘까사 다 릴리(Casa da Lili)’,

즉 릴리의 집.

미루 또래의 딸 올리비아를 둔 25살의 젊은 싱글맘 릴리는 부유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방 6개짜리 아파트를 렌트해 집주인 몰래 세를 주고 있었다. 친구의 소개로 릴리를 알게 된 우리는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와 또래 친구가 고팠던 미루에게 새 친구가 생길 거란 기대에 방도 보지 않고 바로 오케이를 했고, 그리하여 2015년 초, 이 집에 첫발을 디뎠다.


릴리의 집 벽에 있던 낙서.


# 어쩌란 말이냐, 이 뜨거운 아파트를!


우리 가족 포함, 총 어른 여덟과 아이 둘이 사정없이 지지고 볶는 까사 다 릴리엔 말 그대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테리우스처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직접 개조한 빨간 소방차를 몰고 독일에서 내려온 23살의 사이먼(Simon)은 거실에서 드럼을 쿵쾅거리고, 그 옆에선 훌라후프와 저글링을 하는 23세 거리 예술가 아나(Ana)와 19세 아리(Ari)가 아크로 요가를 하며 엑소시스트처럼 몸을 접는 신기를 보여준다. 런던에서 리스본으로 갖 이주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게빈(Gavin)과 폴란드 출신 에바(Ewa) 커플은 어떻게 리스본에서 새 삶을 꾸릴까 밤낮으로 고민하고, 끓는 피를 주체 못 하는 활화산 릴리는 틈만 나면 파티에 나갈 기회만 노리며, 릴리를 똑 닮아 독립적이고 강한 올리비아는 결코 지지 않는 성격의 미루와 복도를 다다다다 뛰어다니다가 끝내 누구 하나는 울어야 끝나는 루틴을 반복하니, 어디 조용히 앉아 차 한 잔을 마시겠나, 책을 읽겠나?

진짜 이 정신없는 아파트를 어쩌란 말이냐!


매일 밤 벌어지던 파티.


정식으로 사는 사람은 10명이었지만 집은 그 이상으로 북적였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았기에 매일 아침 거실엔 처음 보는 누군가가 자거나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럴 땐 그냥 양쪽 뺨에 키스하며 본 디아(Bon Dia), 즉 좋은 아침 인사하고 각자 일을 하면 됐다. 이름이 뭐니, 어디서 왔니, 여긴 어쩐 일이니, 지금 토스트 구울 건데 같이 먹을래? 같은 대화는 덤이었다.

집 멤버들의 성격상 히피 같은 여행자나 예술가들이 많아서 집은 항상 음악과 예술로 가득했다.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밤늦게까지 파티를 할 때도 많았다. 처음 보는 친구였지만 같이 써는 도마질과 오가는 양념통 몇 번이면 죽마고우처럼 깊은 대화도 나눴다.

국적도 다양해서 유럽 외에 콜롬비아, 미국, 중국 등 다른 대륙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 집은 여러 언어가 가득했고, 영어 외에는 꿀 먹은 벙어리인 내 능력을 한탄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내 불어는 어디로 갔을까?)

카밀은 가끔 이런 정신없는 집에서 사는 게 이상하고 버겁다 했지만 난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 같아 신나기만 했다.


아크로 요가를 하는 아나와 아리.


# 하지만 세상만사 과유불급


하지만 세상만사 과유불급.

사람이 많다 보니 아파트가 깨끗할 리 없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인해 쌓이는 쓰레기와 먼지, 북적이는 화장실, 그들이 쓰는 물과 전기, 음식, 생활용품 등은 이 집에 사는 우리 몫이었다. 젊은 히피들이다 보니 돈은 없고, 신세 지기에 바빴던 것이다. 가끔 자진해서 청소도 하고 냉장고에 음식을 채우는 친구도 있었지만 배려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나았다.

집을 관리하는 릴리 역시 난처해졌다. 거둬들이는 월세는 한정되어 있는데 관리비는 많이 나오고, 한참 젊을 때라 같이 노는 게 좋았지만 밤늦게까지 시끄러우면 아이들이 잠에서 깰까 노심초사여서 짜증이 났다.

결국 친구를 많이 데리고 오던 아나와 다툼이 잦아졌고, 손님 금지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릴리의 집에서 만난 젊은이들을 보며 내 20대를 추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20대를 생각한다.

EU의 틀 아래 자유롭게 여러 나라를 왕래할 수 있는 유럽 친구들에 비해 지리적으로 세상 경험을 할 기회가 적은 대한민국의 20대. 이젠 꿈꾸는 것마저 사치라 말하고 주저 없이 ‘지옥’이란 단어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묘사하는 대한민국의 청춘들.

청년 실업, 삼포, 사포, 육포 세대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최소 히피 흉내라도 낼 여유가 있는 유럽 청춘들에게 질투가 난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경험하고 할 만큼 했다 싶으면 시스템 속으로 후회 없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들의 히피 ‘흉내’가 고깝게 보이고 허세 같아서 콧방귀를 뀔 때도 있다.

유럽도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이들도 전 세계를 휩쓰는 경제 공황 때문에 취업이 어렵고 엄청난 물가를 감당 못 해 꿈을 펼칠 기회 없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적당히 안주하며 살려는 경향도 있다.

어떤 면에선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최소한 20대 때 세상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 그리고 그걸 펼칠 여건이 된다는 것.

내가 릴리의 집에서 질리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건 대학 졸업 후 바로 미국 유학 길에 올랐던 내 20대를 추억하고, 꿈이 없다 못해 무기력에 빠진 지금의 대한민국 청춘이 가지지 못한 여건에 질투가 나서일 거다.

취업 전선이란 현실의 무게가 아닌 세상 경험의 사치를 부릴 여유는 언제쯤 올까?


사랑을 듬뿍 주던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미루는 행복했다.


# 그래서 지금은?


2018년 현재 릴리의 집은 없다.

그때 살았던 멤버들은 모두 제 갈 길을 갔고 릴리도 결국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매일이 들썩이는 축제인 그 집을 감당할 집주인이 어디 있으랴.

SNS를 안 하는 사이먼만 빼고 모두 연락하며 지낸다.

그 사이 둘째를 낳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릴리는 리스본에서 한 시간 떨어진 신트라(Sintra)란 지역의 자연 속에 터를 잡았다. 게빈과 이바는 얼마 전 포르투갈 중동부 지역에 땅을 사 농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나는 브라질 여행 중 만난 남자 친구와 포르투갈 남쪽 파로(Faro) 지역에 터를 잡았고 얼마 전 아들을 출산했다. 여전히 훌라후프를 돌리고 자신이 직접 만든 장신구를 SNS에 올려 팔고 있다. 아리는 히피들 모임에 다니며 인생 탐구를 계속하다 얼마 전 서커스 학교에 들어갔다.


여전히 축제 같은 인생을 사는 그들.

내 인생도 여전히 축제일까?

릴리의 집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은 바로 이거다.

비바 청춘!


이 집이 많이 그립다. 앞으로도 그리울 것이다.


릴리가 찍어준 우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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