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4인 가족]
혜선은 남쪽 끝 대도시 남편 직장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둘째 딸을 낳아 네 식구가 되었다. 혜선이 어릴 때부터 바라던 4인 가족이었다. 배가 살짝 나온 혜선의 남편은 둥글둥글 순해 보였지만 눈 빛은 분명 혜선이 좋아하는 야비한 작은 눈이었다.
바다가 가까운 혜선의 집은 혜선을 닮아 다정했고,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앉기 편한 낮은 소파와 명랑한 색깔의 물건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는 혜선의 집. 낯선 남편의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는 사이 진경의 눈에 띄었던 건 단정한 남편의 신발이었다. 눈 빛이 야비하고 신발이 깨끗하고 단정한 사람을 만나서 좋은 냄새가 나는 혜선만의 집을 꾸미고 있다고 진경은 생각했다.
여름휴가에 혜선의 집에 놀러 간 진경에게
”아이들은 너무 예쁜데 남편이 아쉽다."
라며 정말 평범한 여자처럼 남편 험담을 하며 웃는다.
”가장 곤란할 때가 뭔 줄 아니. 자꾸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어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
혜선이 웃는다.
혜선이 원하던 4인 가족을 이루었고, 세상에서 무언가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혜선이 행복해져서 이제 되었다고 안심했다.
남쪽 바다가 가까운 도시는 멀었고 진경과 혜선은 모두 바빴다. 진경은 여전히 질문과 성실한 직장인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꾸리느라, 혜선은 어린 두 아이와 다정한 집을 꾸려가느라 서로의 자리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육아와 살림이 주제인 혜선의 고민을 진경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고, 현실과 5cm쯤 떨어진 진경의 삶에 관한 질문을 혜선이 공감할 여유가 없었다.
"혜선, 43살이라니!! 생일 축하한다. 너의 70대에 등 긁어 줄 친구가 되어주마. 그때까지 잘 살고 있어."
진경이 혜선의 생일에 문자를 보내면
"그러게. 지금도 뼈마디가 쑤셔서 내 손으로 등 긁기 힘들어. 놀러 와라. 너 좀 한가해지면..."
그렇게 또 3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