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은 혜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10

[10. 사라진 소리]

by yellowjelly

진경은 혜선과 수아가 떠난 후 일에 더 몰입했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적당히 연기하며 살아남았다. 일을 해 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몰입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몰입할 시간을 만들기 위한 몰입, 해야 할 일을 끝내 놓고 자신의 시간에 몰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에 몰입하고 끝낼수록 또 다른 일이 몰려왔고 켜켜이 일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몇일씩 잠을 자야 했다.


진경에게 3년은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흔하게 찾아와 자신이 숨 쉬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던 자살 충동이 끝났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끝내 온전하게 가득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세상 유일한 사람인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자살 충동이 사라진 건 죽음을 가까이 보면서 더 이상 자신의 생존을 비춰볼 대상으로 죽음을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온전히 살고 싶어 했던 진경의 자살 충동은 가면을 쓰는 자신을 끝내고 싶은 충동이었을 것이다.

'그냥 벌거벗고 싶어, 여린 속살을 내보이며 비명 지르고 싶어'

숨 막히게 목구멍을 가득 채우며 올라오는 비명을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4월 아침이었다.

진경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려고 할 때 한쪽 귀가 먹먹해져 있는 걸 느꼈다. 어제까지 긴 프로젝트를 마치고 오늘이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물을 마셔도 기침을 해도 점점 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단 습관이 시키는 대로 회사에 도착해 정신없이 프로젝트 마무리 행사를 진행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외부에서 들어온 소리가 머릿속에 윙윙 머물러 나가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잘 마무리해야 하는 날이었고,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순간순간 흔들릴까 버틴 하루였다. 다행히 행사는 무리 없이 마무리 됐다. 진경에게 생긴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다. 평소처럼 팀원들과 인사를 하고 나니 소리들이 일순간 빠져나가 뇌 속이 텅 비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잠시 진경의 자리로 돌아가 멍하니 앉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그 모습을 진경은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응시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경의 고요한 집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3년째 텅 빈 집안에서는 혜선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진경 올해 벚꽃은 다시 오지 않아. 나와 보러 가지 않을래?‘

언제부턴가 벚꽃은 항상 미세먼지와 함께 찾아왔고 진경은 그때마다 다시 오지 않는다는 수많은 순간들이 어쨌다는 건지 매번 과제 같았다.

빈방 커다란 침대와 마주해서는 뺨을 대고 엎드려 이불속에 파묻혀 보았다. 공기 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밤이었다. 먹먹해진 귀로 더 크게 공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은 다시 오지 않아’

혜선 목소리가 또 들렸다.


"벚꽃이 피어서 뭐 어쩌라고... 못 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빈 방에 진경의 목소리가 한 줄 쏟아졌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짧은 벚꽃길을 숙제처럼 남겨 놓고 혜선은 자신을 사랑하며 떠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듣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이젠… 그쪽에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