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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Jan 25. 2022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 - 인간, 병기

2부 - 챕터# 18. 무토가 지옥의 방에 들어섰다.

    병사 두 명이 복도 양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런 임무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유토 병장은 느긋한 반면 야마구치 일병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담배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장님. 뒤처리 한다는 게 말입니다. 우리가 직접 죽인다는 겁니까?"

    "새끼, 겁나냐?"

    "아닙니다."

    "그 짓이 끝나면 거의 죽었다고 봐야지. 삽질만 한다고 생각해. 암퇘지 한 마리 묻는다고." 

    담배 연기를 뿜던 유토가 어떤 기운에 힐끗 고개를 돌렸다. 무토를 보자 철렁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컥 하고 담배연기가 목에 걸렸다. 순간 두 병사는 도둑질을 하려다 들킨 십 대처럼 경악하는 표정으로 돌변했다. 무토의 예민한 감각이 세 번째 방을 감지하고는 시선이 꽂혔다. 

    "마츠이 중위님께 보고할 게 있다."

    무토가 두 병사를 무시하고 가려는 찰나 유토 병장이 주춤하는 어린애처럼 막아섰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소대장님 명령입니다." 

    무토가 자신의 어깨쯤에 걸린 유토의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눈길 한 번이면 충분했다. 유토는 오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무토의 무지막지한 힘이 자신의 목을 과즙처럼 짜버리는 모습이 떠올랐기에.  



    무토가 저벅저벅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피비린내가 돌풍처럼 훅 밀려들었다. 

    "왔냐?"

    예상외로 마츠이는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통을 벗은 맨 상반신에 한 손에는 대마초, 다른 손에는 럼주병을 들은 채였다. 여자는 사지가 다 묶인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천조각 하나 없는 나체 그대로였다. 여자는 인형처럼 보였다. 이 아이 저 아이 손을 거치며 찢어지고 때 묻은 채 처박힌 인형. 약간 벌어진 입술 밖으로 침이 흐르고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이 없어 보였다. 무토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아편 주사기가 보였다. 대마초 연기를 내뿜은 마츠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배려는 한 거다. 아편 덕 보는 게 나아." 

    마츠이가 케이바를 들어 보였다. 

    "고통은 줄어주니까."

    마츠이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 벌컥 들이켰다. 무토가 한발 들어서며 방문을 닫았다. 

    "여자 때문에 왔나?" 

    "......."

    "묻잖아. 이 여자가 걱정돼?" 

    "후송을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후송은 대대장님의 지시사항입니다." 

    마츠이의 입에서 '큭' 소리와 함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이 벌어지며 소리 없는 웃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삼키려다 만 럼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랬지. 너는 몰라야 한다고도 했고. 근데, 알아버렸네?" 

    무토의 시선이 마츠이의 어깨너머 여자에게 꽂혔다. 여자의 입이 열리며 아주 미세한 웃음소리가 흘려 나왔기 때문이었다. 무토만 느낄 정도로, 새들의 날갯짓 같이. 

    "좀 앉지?"

    무토가 마주 앉자마자 마츠이가 나무 술잔을 탁 소리가 나도록 세우고는 럼주를 채웠다. 마츠이가 무토에게 밀어주었다. 

    "마셔."

    무토가 술잔을 쥐었다. 마시려던 동작이 멈췄다. 지켜보던 마츠이가 고개를 들이밀더니 무토의 눈에 대고 대마초 연기를 뿜었다. 

    "나 같은 놈한테는 말이야 전쟁만 한 천국이 또 없어. 아무 년이나 강간하고 죽여도 아무도 뭐라 안 하거든."

    "......."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나?"

    "모릅니다."

    "소모품이기 때문이지."

    "......" 

    마츠이가 엄지로 등 뒤를 가리켰다. 

    "여자가 아니라...."

    무토의 눈이 마츠이를 빤히 응시했다. 

    "너나 나나 소모품이니까. 언제 몸뚱이가 터질지 모르는 죽음이 예정된 인간이니까. 실탄 떨어진 총 같이 말이야. 그러니까 아무도 뭐라 안 하는 거야. 결론은 저 여자는 죽게끔 되, 어, 있, 다... 그거고."

    무토가 시선을 내려 깔고 술잔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 자신의 두 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마츠이가 기색을 살피는 눈길로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 

    무토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혜는 눈을 떴지만 병기의 모습은 허상인 듯했다. 몸이 뜨거워졌고 간헐적으로 숨이 막혔다. 나른한 기분이 퍼지면서 의지와 다르게 흐물거리는 웃음마저 새어 나왔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듯 구름 위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뒷머리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할 수 없다면... 다르게 묻지. 술잔을 비우고 자랑스러운 황군으로 남을 건가, 저 여자 때문에 죽을 건가?"

    이 한마디가 정혜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빌었다. 

    누가 총알 한 발만 머리에 박아줬으면 좋겠다고. 


    마츠이의 집요한 눈빛이 독니를 드러낸 뱀처럼 무토를 휘감았다. 술잔을 움켜 쥔 무토의 머릿속에는 마츠이가 내뱉은 단어가 멈추지 않게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소모품, 소모품, 소모품.....

    무토가 술잔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마츠이의 입가가 늘어지면서 웃음기가 돌았다. 무토의 음성이 깔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입니다... 여자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곧바로 마츠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유타! 야마구치!" 

    마츠이의 외침이 터지자마자 군홧발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츠이가 병목을 꽉 쥐더니 잡어 탁자에 깨트렸다.  

    "미친 새끼." 

    방문이 열렸고 두 병사는 즉각 들어와 무토 등 뒤에 섰다. 마츠이가 깨진 병을 흔들며 일어섰다. 

    "무토가 손끝 하나라도 움직이면 쏴버려라." 

    두 병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움찔하면서 서로 눈치만 봤다. 

    "대답하란 말이다!" 

    "옙! 알겠습니다." 

    "총구를 겨누라고, 새끼야!" 

    총구 두 개가 무토의 등에 닿으며 각각 심장과 간이 있을 지점을 향했다. 마츠이가 깨진 병을 무토를 향해 치들었다. 

    "지금부터 네 놈의 여자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바로 봐라. 네가 기억을 하는지, 감정이 생겼는지. 만약에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나를 막고자 한다면 너는 배신자로 총살이다. 유토, 야마구치! 알겠나?"

    두 병사의 찢어진 대답 소리가 터졌다. 

    무토는 종을 두드리듯 머리가 띵띵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종소리 속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갖가지 음성이 뒤섞이며 자신을 쫓아왔다. 그 순간 무토는 지난 이틀 동안 머리를 짓눌렀던 두통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그건 돌멩이였다. 자연스러운 의식의 물줄기를 강제로 막아놓은 돌멩이. 


네 놈의 여자... 나의 여자... 

정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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