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매를 들었다

- 몽둥발이가 된 느티나무 앞에서 쓰는 반성문

by 노란 잠수함

학교 운동장 느티나무들이 하루아침에 몽둥발이가 됐다.


여름이면 넓은 그늘을 내어주고, 가을이면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과 어우러져 세상 멈춘 듯한 정취를 자아내던 그 나무들이었다. 그런데 주말 사이 가지치기를 당한 나무들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고, 날카롭게 잘려나간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서낭당 아래 장승처럼 처연한 모습에,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가지치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외형을 정돈하거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였겠지.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듯한 명분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무도 그것을 바랐을까?'


올가을엔 그 어느 해보다 고운 단풍을 뽐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나무의 꿈에 깊은 상처를 낸 셈이다.


그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질 무렵, 기억 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한 아이가 불현듯 떠올랐다. 흐트러진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군가의 삶을 내 기준대로 가위질해 댔던, 나의 부끄러운 기억이다.


새 천 년을 앞두고 공업계 고등학교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익숙했던 내겐 모든 것이 낯설었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웠던 건 학생들이었다. 대학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던 이전 학교 아이들과 달리, 그곳 아이들에게선 목표의식을 찾기 힘들었다. 등교 시간조차 지키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내가 담임을 맡았던 건축과 반에도 유독 눈에 띄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거의 매일 지각이었다. 어떤 날은 수업이 파할 무렵에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기도 했다. 야단도 쳐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는 '극약 처방'을 내리기로 하고, 그를 교무실 한편 상담실로 데려갔다. 얇은 패널로 둘러싸여 안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가는 공간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었던 나는, 그날따라 낯선 사람처럼 돌변했다.


“학생이라면 이래야 한다.”


나는 나름의 기준을 들이대며 그를 몰아세웠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성을 받아냈다. 변명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자극했던 걸까. 나는 그를 엎드리게 하고, 매를 들어 엉덩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둔탁한 파열음이 교무실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말리러 오는 동료 교사는 없었다. 오히려 '문제아'를 대신 훈육해 주고 있다는 식의 암묵적인 동조만이 공기 중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그 모진 매를 흐트러짐 없이, 묵묵히 견뎠다.

지금 생각하면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체벌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순순히 매를 받아들일 학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몰랐다. 내가 휘두른 것이 훈육의 회초리가 아니라, 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폭력의 몽둥이였음을.


그날 이후에도 그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날의 매질은 그와 나,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겼을 뿐이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매를 들지 않았다. 체벌이 교육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깨달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분노에 휘둘려 아이를 재단하려 했던 내 모습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듬해,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그 아이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몽둥발이가 된 느티나무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누구보다 푸르고 싶었고 찬란을 꿈꿨던 나무의 계절을 생각한다. 그리고 제각기 다른 속도로 자라던 아이들을 ‘곧게, 빨리 자라야만 옳다’는 독선으로 너무도 쉽게 잘라냈던 나의 지난날을 아프게 되새겨본다.


그땐 왜 몰랐을까.

굽은 나무에도 꽃은 피고, 더디 자란 나무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내게 상처받았던 그 아이가 부디, 누구의 잣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가지를 뻗어 올리고 있기를. 그의 삶이 오롯이 그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 되었기를.


잘려나간 나무 앞에서, 늦었지만 진심으로 바란다.




이미지 출처 : 노란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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