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지 않아도 괜찮아

- 고추 몇 개, 대파 세 뿌리로 전한 장자의 지혜

by 노란 잠수함

속도와 침묵, 피로와 목적이 팽팽하게 뒤엉킨 공간. 도심의 지하철 환승 통로는 늘 소리 없는 전장(戰場)과 같다.


사람들은 잘 훈련된 병사처럼, 서로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각자의 방향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순간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그들의 걸음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그날, 나 역시 고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전장에 내던져진 병사처럼, 온수역 환승 통로의 거센 인파에 떠밀려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맹렬한 속도의 행렬에서 홀로 비켜난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의 흐름과는 무관한 듯, 인생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의 장사꾼이었다.


길바닥에 깐 것은 조그만 돗자리 하나.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곤 딸랑 고추 여남은 개와 대파 세 뿌리가 전부였다.


사내는 그 흔한 ‘떨이’나 ‘대박 세일’ 팻말 하나 없이, 마치 세상과의 거래는 이미 끝났다는 듯 휴대전화 화면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길바닥에 좌판을 벌였으면, 호객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이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듯한 절실한 눈빛쯤은 보여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도무지 파는 일 따위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장사를 하려는 걸까. 호기심이 동한 나는 슬그머니 인파에서 물러나 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지만, 그는 돌부처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제멋대로 그를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혹시 그는 깊은 산속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다 잠시 파계하고 속세로 내려온 수행자가 아닐까? 아니면 남의 좌판을 잠깐 봐주는 사람일지도. 그도 아니라면, 이미 충분한 이문을 챙긴 터라 남은 시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심보일까. 어찌 되었든 ‘사려면 사고 말라면 말라’는 저 느긋하고 두둑한 배짱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그러다 문득, 뇌리에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혹시 이 사람, 쓸모없음의 도를 몸소 실천 중인 장자(莊子)의 후예는 아닐까?


“쓸모없으므로 오히려 쓸모가 있다.”


그는 정확히 장자가 말한 그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속된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만의 자리를 지키는 방식.


그렇다면 그의 돗자리는 초라한 좌판이 아니라, 번잡한 현실에서 한 발짝 비켜난 ‘소요유(逍遙遊)’의 한 평 남짓한 도량(道場)인 셈이다. 그는 세상의 경쟁을 등진 채, 고추 몇 개와 대파 세 뿌리를 벗 삼아 유유자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날마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허덕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침묵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흐리멍덩한 세상은 매운 고추처럼 정신 번쩍 들게 깨우고, 맛도 멋도 잃은 삶이라면 대파처럼 은은한 향이라도 피워내라. 팔리지 않아도 좋으니, 네 삶의 맛을 잃지는 말아라.’


그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귀한 것을 얻어 나왔다. 조금 덜 가져도 괜찮다는 위안, 조금 뒤처져도 된다는 여유, 그리고 무엇이 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자각 같은 것들.


그날의 사내는, 어쩌면 장자가 내게 보낸 전령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는 걸 넌지시 일러주기 위해, 고추 여남은 개와 대파 세 뿌리를 들고 지하도 한 귀퉁이에 묵묵히 앉아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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