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病床)만 있고 평상(平床)은 없는 세상

- 침묵의 대기실에서 마주한 우리들의 자화상

by 노란 잠수함


어제, 갑작스레 한쪽 귀가 먹먹해져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오후 다섯 시가 넘은 시각, 대기실은 이미 열댓 명의 환자들로 꽉 차 있었다.


접수를 마치고 빈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병원이라는 곳이 본래 유쾌할 리 없지만, 공기가 유독 무거웠다. 마치 조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문 채 앉아 있었다. 표정도, 눈빛도, 숨소리마저 죽인 침묵까지 비현실적인 적막이 감돌았다.


‘혹시 나처럼 귀에 문제가 있어서 소리를 못 듣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러는 사이, 나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아니라 낯선 공간을 취재하러 온 기자라도 된 듯 대기실 풍경을 유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몇몇은 꺼진 TV 화면처럼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벽에 걸린 모니터에선 갑상선 수술 전후 사진만이 무한 반복되며 불편한 정적을 덧칠하고 있었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저당 잡힌 동화 속 사람들처럼, 그들은 오직 숨만 쉬고 있었다. 물론 병원이 낯선 이와 쉽게 말을 섞을 만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같은 아픔을 안고 모인 곳이라면, 그 인연의 깊이가 아주 얕지만은 않을 터였다.


나는 사실 낯가림이 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거운 정적만큼은 견디지 못한다. 엘리베이터 안이든 버스 옆자리든, 어색한 공기가 흐르면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건네곤 한다.


“날씨 참 좋죠?” “어디까지 가세요?”


별 뜻 없는 말들이지만, 그렇게 툭 던진 말에 대부분은 웃으며 응답해 준다. 얼마 전엔 후배에게 얻은 상추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처음 본 아주머니께 “상추 좀 나눠드릴까요?” 하고 말을 붙여 10층까지 텃밭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며 올라간 적도 있다.


그런 나조차 그 대기실에서는 어항 속 물고기처럼 뻐끔거리기만 했다. 짓눌릴 듯한 적막에 압도되어,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한참 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정적을 깨뜨려보고자 일부러 크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예’ 한 마디면 될 것을 굳이 꼬리까지 단 건, 이 무거운 분위기에 균열이라도 내보고 싶은 객기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곤 다시 스마트폰 속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순식간에 나는 공연히 소란을 피운 눈치 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무표정한 의사가 기계처럼 몇 마디 묻고는 “3일 치 약 드릴게요.” 하고 끝이었다. 웃는 얼굴로 증상에 대해 몇 가지 더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내 표정을 읽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듯 모니터만 응시하는 그를 보며, 대기실의 공기가 왜 그토록 차가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병원은 사람을 ‘살피는’ 곳이 아니라, 잠시 ‘보관’하고 분류하는 창고 같았다. 진료실도 대기실도, 아픈 사람을 따뜻하게 ‘돌보는’ 공간이라기보다 흐름에 따라 환자를 처리해 내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느껴졌다.


진료실을 나오니 대기실 사람들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처방전을 손에 쥔 나는 밀폐 용기처럼 답답한 병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엉뚱한 상상을 했다. 저 삭막한 대기실 한가운데 널찍한 ‘평상’ 하나를 놓으면 어떨까?


문태준 시인의 시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나오는 풍경처럼 말이다. 그 위에 시원한 수박화채나 살얼음 낀 식혜라도 한 그릇 올려두고, 환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는다면.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요즘 환절기라 다들 고생이네요.”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면 어땠을까. 병은 의사가 고친다지만, 불안한 마음은 조금 편안해지지 않았을까.


평상은 병을 고치진 못해도, 사람을 어루만진다. 서로의 안색을 살피고, 주름진 손등을 바라보며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저 사람도 나처럼 힘들구나’ 하는 위로를 얻는다. 그렇게 연결된 마음은 때로 차가운 청진기보다 더 깊은 치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병원엔 ‘병상(病床)’만 있을 뿐, 마음을 기댈 ‘평상(平床)’은 없다. ‘효율’과 ‘속도’가 점령한 세상에서, 머물고 나누고 기다리는 평상 같은 풍경은 이제 멸종 위기종이 되어버렸다.


집에 도착해 의사가 처방한 약을 입안 깊숙이 털어 넣었다. 약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데, 왠지 모르게 씁쓸한 뒷맛이 목구멍에 걸렸다.


눈을 감자, 마음 한편에 그리운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잎 넓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마주 앉아 도란도란 정을 나누던 사람들. 이제는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따뜻한 시절이.

작가의 이전글팔리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