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관하여
어릴 적 엄마는 가방을 챙겨주시며 모든 물건에 이름을 붙여놓으셨다. 교과서는 물론 연필, 옷, 가방, 우산, 신발 등등. 자기 물건에 이름 석 자를 써넣는다는 게 그때는 참 유치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실용적인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릴 때나 컸을 때나 물건을 칠칠 흘리고 다녔다. 작게는 머리고무줄에서 우산, 크게는 지갑과 결국 잃어버린 핸드폰까지. 엄마 속 참 많이 태우고 산다.
어제 문득 깨달았다. 아끼던 노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문구점에서 꽤 신중하게 골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나 단어들, 자다가 본 꿈결의 이미지들이나 오늘 있었던 일, 좋은 구절이나 주말에 할 일들, 가보고 싶은 곳이나 읽고 싶은 책들 등 무어라 규정될 수 없는 조각조각의 덩어리들을 채우던, 가장 난잡하기에 가장 나다운 공간이었다. 집 앞 맥도날드에 놓고 온 것 같은데 다음날 가 보아도 없단다. 별 건 아니지만 애써 생각해내어도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찰나의 순간들이 사라졌다는 아쉬운 마음에 며칠간 허전했었다.
그게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 머릿속에서 지워져있었다는 걸 깨닫자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슬펐는데, 미묘하게 다행인 감정도 들었다. 기억하지 못했기에 나는 괜찮게 일상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잃어버린 사실을 잊는다는 건 뭘까. 잃어버린 게 물건이라면 어느 새 곁에서 슬그머니 사라진다는 거고, 그 물건이 채워주던 내 필요를 다른 것이 대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만약 잃어버릴 수 있는 게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어떨까. 만약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 조차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때 드는 감정을 뭘까. 그리고 그건 무슨 의미일까.
얼마 전 핸드폰의 저장 공간이 다 차서 사진첩을 정리했다. 웃고 있는 얼굴, 기억하고 싶은 순간, 벚꽃 사진. 더 내려가다 보니 할머니의 영정사진과 장례식장 풍경이 나타난다. 아, 맞아 그랬지. 두 달 전이었는데도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사진을 보고 기억해낸다. 그 기억이 되새겨지고 되새겨질 때마다 잃어버린 이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서 이름을 적어 넣을 수도 없지만 그 어떤 물건보다 큰 애착을 형성한다. 결국은 잊을 수 없고 영원히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기억이 사라진다는 게 인간에게 가장 큰 복이라는 말이 있다. 상실이 너무 슬프기에 잠시 덮어두어야 하고, 그래야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기억을 잃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것을 축복이라 하기 이전에 허무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물건을 잃어버릴 때처럼 슬픈 감정은 들지만 다행인 감정은 들지 않는다. 아마 결국 그를 잊을 수 없고 그는 다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존재의 상실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는 기억의 상실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절름발이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