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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Nov 12. 2020

'삶'과 '죽음' 양면의 세계..

파드마 삼바바가 보여 주는'죽음'이란것


삶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세계는 실체가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죽음의 세계에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동일하다.


 중요한건 삶속에도 내가있고 죽음속에서도 내가 있다는 것이다. 나(I am)란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며 삶도 죽음도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



육체의 입장에서 의식은 실체가 없는 무형의 것이다. 의식의 입장에서 볼때 육체는 물질에 불과하다.둘중 어느것을 자신의 실체라고 여길것인가.


죽음의 관점에서 볼때 육체가 환상이라면 노화나 병마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의식이 지옥의 화염속에 들어가도 육체는 불에타지 않는다. 바닥을 알수없는 물속에 잠겨도 의식이 고요할때 육체는 전혀 미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라고 믿을때 그것은 실제가 된다. 삶의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는다면 죽음의 세계 역시 현실이 된다.


죽음에 대한 무지가 죽음에 대해 쓸데없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죽음의 세계를 정복하고 관장함으로써 삶의 세계를 고요히 다스린다. 


무슨 보살 붓다를 그린것인지 이름은 몰라도 이뻐보여서..


'티벳 사자의 서' 저자이면서 죽음학의 제왕 이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이름도 멋진 '파드마 삼바바'


파드마 삼바바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 가르침은 삶에 집착하는 에고의 관점에선 끔찍한 괴기 공포 그 자체지만 죽음과 삶의 환상에 대해 많은것을 가르쳐 준다.


파드마 삼바바 전기를 보면 그는 살인도 주저없고 식인도 마다하지 않는 엽기적 인물이다. 게다가 태생도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죽음마저도 기록에 없어 생과사 자체가 미스테리한 신화적 존재이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알수없는 '서유기' 를 능가하는 판타지한 일화들이 많다.)


티벳인들은  인간 자궁에서 태어나 인간 육체의 한계를 절감한 석가모니 부처가 파드마 삼바바로 업 그래이드 환생 했다고 믿는다. 기록으로만 보자면 파드마 삼바바는 태생부터 인간의 DNA 와는 별개의 에일리언 이다. 아기가 궁전의 연못위 연꽃위에서 태어나 반짝거리며 나를 영접하라 폼잡고 있었다고 한다. (레알?)


뭐든지 더 이상 갈데가 없는 극단으로 끝의 한계에 도달되면 그 반작용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파드마 삼바바에겐 화려한 궁전과 5백명의 부인들과 함께 매일같이 벌어지는 향락의 왕궁 생활이 지옥 그 자체였다. 향락도 하루 이틀이지 지긋지긋 했을 것이다. 파드마 삼바바를 붙잡기 위해 왕이 전국 각지의 미인들을 소집해 쏟아부은것 같다. 5백명이면 아마 부인 얼굴들도 제대로  모를것이다.


5년간 5백명의 부인들과 방탕한 결혼생활을 한후 왕위를 물려 받으라는 국왕의 간청을 파드마는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고집으로 맞서고 결국은 성인이 된후 왕궁을 나와 죽음의 세계와 가장 가까운 무덤가에서 발가벗고 시체를 파먹으며 살기 시작했다.



많은 붓다들 중에서도 직설적으로 죽음을 설파하는  파드마 삼바바만큼 파워풀한 존재는 드물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에고들에게 파드마 삼바바는 지옥의 악마나 공포 그 자체로 보일수 있다. 불교계 에서도 밀교를 이단이라고 찬반 논란이 많은것 같다. (특히나 천국과 지옥을 믿는 기독교적 관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티벳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티벳신들은 치장을 좋아해 인간 두개골 주렁주렁 목걸이는 기본이다.)


무덤가에서 벌거 벗은채 시체를 파먹는 모습은 일반인들 눈에 공포스러운 괴물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무나 흉내낼수 없는 기행과 수행이 그를 종교적 논란에 휘말리게 하면서도 죽음에 대해선 초일류급 전문가로 만들었다. 당대의 인간들에겐 감추고 그나마 조금 의식이 성숙한 미래의 후손들에게만 글을 남긴것이 이해가 된다.


당대에는 악마로 몰리고 아무렇지 않게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1만7천 관중앞에서 7일간 태웠는데 불이 꺼진후 잿속에서 어린애로 변한 파드마가 여인들 사이에서 튀어나와 '다 끝났니?나 가도 돼니?' 그러고 화형 선고한 왕에게 훈계했다는... 만화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 극한 고난과 수행을 통해 얻어낸 선배들의 귀중한 지식들을 우리는 편하게 방안에 앉아서 얻을수 있다. 선각자들을 따르고 선배대접 해주는것은 그만한 혜택을 후손들이 받고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덕분에 반도체 디지털 지식을 몰라도 누구나 편리한 스마트폰 세상을 누리고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리거나 시체를 파먹지 않아도 성자들의 깨달음의 지식들을 손쉽게 접하고 공짜로 얻을수 있다.


*본질이 아닌 십자가에 안 아프게 매달리기 같은 엉뚱한거에  관심 갖고 돈 달라고 주문외는 원숭이 짓만 안하면 된다.


[天羅地網] 생명체라면 애초 벗어나기 불가능한 구조다.
Welcome To Death


죽음의 세계의 문은 모든 생물체 누구에게나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죽음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대하는가에 따라 삶도 거울처럼 바뀌어 간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삶속의 악행은 죽음의 세계에서 치뤄야할 새로운 부채로 쌓여간다.


삶과 죽음 양극단의 세계, 어느쪽에 속하는것이 자신에게 맞는 곳인지 최종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붓다나 예수같은 성자와 신성이 온통 사랑으로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떠 받들며 이뻐만 해줄거라는 착각은 모든 에고가 지닌 환상이다. 마약같은 꿀발림으로 죄인들을 유혹하고 끌어 당기지만 (돈 맡겨논것처럼 이것저것 내놓으라고 뻔뻔하게 졸라대기만 하는 )그 유아적 꿈은 죽음앞에서 어김없이 박살나게 돼 있다.



망측한 짓꺼리들을 일삼으며 성자들이라 일컫는 그 이름들과 하나님을 함부로 입에담지 말라.


카르마의 대 순환주기가 끝나는 말세의 끝자락, 올바른 삶을 살려는 자들에게 성자들은 한줄기 빛처럼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지만, 반대로 자신들 이름을 내세우며 마음껏 죄를짓는 자들에게 예수는 칼을들고 자신을 농락한 죄가를 물을것이고 붓다 역시 매몰차게 구원을 거절할것이다. 악한 자들이 올리는 기도는 거미줄처럼 영혼을 휘어감을 것이고 주문이 혈관속으로 파고들어 독을 뿜을것이다.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듯, 스스로 불러들인 죽음이 항상 뒤를 쫒아다닐 것이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옴아훔 바르자 그루 빼마 싯디 훔


Tibetan Healing Mantras

https://youtu.be/zbvmYDPmgis


Tibetan Healing Mantras - Drukmo Gyal - Green Tar…:

https://youtu.be/G6oo7kXy9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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