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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빈 시간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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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10. 2021

2022.2.22 '암' 과의 결별


2022.2.22


 2 숫자가 6번 반복된다. 기억하기 좋은 날이다. 이 날은 나에게 국가에서 제공하는 5년간 암 산정특례 혜택이 끝나는 날이다. 정확하게 표현 하자면 날을 시작으로 나는 서류상으론 완치판정을 받고 공식적으로 '암' 환자가 아니게 다. 최후까지 결과가 어찌됐건, 그동안 세금으로 돌봐 주셔서 국가 국민 의료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빚은 갚는다. 


*전국민 대상으로 암환자에게 95% 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복지가 최상인 나라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전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내시경,CT,혈액 수치 모두 정상이고 특별히 재발할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네요."


커피 담배를 좀 과도하게 하는데 철분 수치는 어떻냐고 묻자


"간,폐 전이될 조짐 같은건 딱히 없어요. 철분 수치도 정상이예요" 


이번에도 역시 두분 의사 선생님 모두 딱히 할말이 없을만큼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라는 말이 나왔다. 4기 말기 상태에서 암이 몸안에서 터져 축구공만한 내장 곤죽 덩어리 (위장,비장,췌장,대장) 잘라내고 마지막엔 소장 일부분 까지 한번 더 뱃속을 텅 비었음에도 (3번의 수술과 1번의 시술) 지금은 몇년째 암 세포가 흔적없이 깨끗히 사라졌다고 하니  몸에 암세포가 퍼져 가망없을 거라는 당시 의료계진단은 틀렸고 당시 시체같은 텅빈 해골몸인데도 다시 일어설것 이라던 내 말이 오기나 객기로 부린 허튼 소리가 아니었음을 시간이 입증해 준다.


https://brunch.co.kr/@yemaya/485


"내년에 산정특례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CT나 한번 찍어 보죠"



내년 2022222 를 마지막으로 모든 의무 검사가 끝난다.. 향후 검사를 하려면 일반인들과 똑같은 비용을 내야하고 원할 경우에만 진행하게 된다. 특별히 이상이 없는데 당연히 돈 들여가며 몸에 무리가는 검사를 이유도 여유도 없다.


다시 정상 사회속으로 일반인들 생활 궤도에 들어서려는 것인지, (손가락은 하나만 없어도 장애인이지만 소화기관 내장은 송두리째 사라져도 법적으론 장애인이 아니다. 주차혜택 그런것 다.) 그동안의 암환자 카테고리 에서 생활하던 방식들이 어느샌가 익숙해져 모든 의료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부턴 암보험 가입하라는 스팸성 전화에 핑계꺼리가 사라진다. 


내년 2 에 암센터 방문하면 아마도 암센터를 다시 방문 하게될 일은 딱히 없을것 같다. 5년간 CT 찍은 횟수만 따져도 셀수가 없다. 방사능 피폭량은 말할것도 없고 피는 또 얼마나 뽑아댔으며..


어쨋든 한국 의료계에 한가지 확실한 임상실험 데이터는 제공했다. 인간은 위, 비장, 췌장, 대장 제거하고 소장 일부 잘라내도 짜깁기 소장 하나에 직장만 가지고 뱃속을 텅 비워내고(먹고 마시는것에 제한은 있지만 ) 지장없이 활동하고 살수 있다는 전례이다. 후일 나와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에겐 아무런 정보가 없어 깜깜속을 헤매던 나와같은 막막함은 좀 사라지리라..


비장이 면역을 담당하고 췌장이 어쩌고.. 없으면 면역력 제로가 되고 어쩌고.. 하던 일반 의료상식도 '예외' 가 있을수 있다 라는 점이 고려되야 할것이다. 위장 없는 사람들이 철분흡수를 못해 정기적으로 맞아야 한다는 단백질 철분 주사도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는 카페인을 그렇게 마셔대도) 나에겐 필요 없다는 결론이다. 먹는것과 소화기능에 집중하는 기존 인간들이 전부 나와같은 검사 결과를 얻는다 라는 장담은 할수 없으니 통계에 기초한 기존 의학 상식이 틀렸다고는 말 못하겠다.


* 궁금해 하시는분 계시는것 같아서.. 몇년째 치료 같은것 일체 없다. 약도 식후 소화제 알약을 먹는것 외엔 특별히 먹는약 없다. 6개월마다 정기검사만 진행해왔고 내년 2월이 정기검사 마지막이다. 커피 와 흡연은 원래 좀 많이하고 와인은 (근래들어 거의 매일) 한두잔씩 마신다.


학이야.. 줄담배에 줄커피.. 특별히 건강 걱정한적도 없긴 하다..


매미소리 요란한 호수공원 들러 냉커피 한잔 마시는 중.. 평일에 코로나 거리두기 까지 더해 이렇게 좋은 날씨에 공원인데..  사람이 얼마없고 원마운트 쇼핑가도 상권이 전부 죽어 을씨년 스럽다. 건물만 새로지어 으리으리 하고 문닫은 가게 대부분에 사람은 안 보인다.


세상밖으로 나가려해도 시국이 만만치 않다. 요즘 동대문은 임대료없는 매장들도 있다는 소식이다. 점주 입장에선 비워두면 관리비만 나가게 되니 관리비만 내고 들어오라는 말인데..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도 만만치 않아 임대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냉커피 다 마셨으니 검사결과 기다리는 어머니한테 가봐야겠다. 이것저것 생각할것도 많고 자잘하게 할것도 많다. 암환자라는 일종의 사회적 약자라는 보호막이 사라져 복닥대는 세상속으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시점 같다. 진짜 아프지 말아야 한다. 어릴때 이후, 병원과는 담을 쌓고 살다 중년와서 찐하게 한번 겪은후론 세상이 좀 달라 보인다.


아픈사람, 건강한 사람.. 죽음 또는 삶.. 양분화의 경계선 그 중간지대에 몇년간 내가 서 있었.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그럴지도.. 인간의 삶은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 가야 다. 삶과 죽음도 그러하다. 언제나 결정 내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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