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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Feb 24. 2017

사회적 의식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

새로운 의식 세계를 향한 도전.죽다...


내가 현재, 육체가 죽음과 동행 하면서도 별다른 동요없이 덤덤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 그건 이미 의식적으로 예전에 죽음을 호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의식적으로 죽음을 경험했던지라 지금 육체적 죽음의 위기도 심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아프면 귀찮고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2006년도 였으니 정확하게 십년이 지났다. 그 당시 나는 사회적으로 극과극의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순식간에 사회적인 몰락을 경험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승승장구 하던 사업과 동시에 벌어진 집안의 어처구니 없는 동반 몰락이었지만, 나를 실제 절망으로 빠뜨린건 사업의 몰락보다는 그것을 이끈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 을 당시의 물질적 욕망에만 몰두했던 내 의식이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였다.


뭔가 알수없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집안과 사업 주변 관계등 내 주변을 박살내 버렸고 몸안에선 신병난 무당처럼 알수없는 강력한 전기적 에너지가 시도때도 없이 뻗쳐 나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내가 누렸던 모든 물질적 생활들과 사회적 관계들이 엉망이 되었는데 몸을 덮쳐오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에 대한 공포감과 신의 장난인듯 집안과 사업이 동시에 몰락한 서러움에 나는 삶에 대해 그냥 될대로 되라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전기 청소기를 멋대로 작동시키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내몸안에서 꿈틀대는 그 거대한 전기적 생체 에너지가 귀신이나 에일리언 인줄 알았다. 내 안에 외계인이 있다!!! 라는 공포감..


당시, 아버지가 목사였던 여자친구는 하느님께 오라고 나를 만날때 마다 울면서 위로했었는데 그때 내 상황은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 뿐이라서 나는 여자친구의 위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이상하게 흐른다던지 하는 얘기를 해봤자 미친사람 취급당할것이 뻔했다. 세상에 나를 실제로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은 단한명도 없다라는 사실에 나는 무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때 이태리에서 당시는 잘 알지못했던 한 여자와 우연하게 연결이 되었는데 내 처지를 알고는 조건없이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당시의 나를 이해할정도면 평범한 보통 여자는 절대 아니다. 서울대 출신에 나름 집안도 괜찮은지 그림 유학을 하던 친구였다. 나는 무조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가지 말라고 매달리는 서울의 여자친구도 무시하고 눈앞에 펼쳐진 몰락한 집안도 뒤로하고 선배가 마련해준 가장 싼 비행기 티켓 한장만 달랑 손에쥐고 이태리로 도망가 버렸다. 경매로 집마저 넘어가려는 상황인데 그냥 될대로 되라 였다. 그야말로 한국을 떠나며 무일푼으로 완벽한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 심정이었다.



이태리 시골마을에서 여행 무비자가 허용하는 3개월을 그야말로 먹고 사색에 잠기고 여행 다니고 지나보니 좋을때도 많았다. 그러나 무일푼인 나를 돌봐주며 동거하는 새로운 여자친구와 막판엔 서로 의견이 맞지않아 무진장 싸워댔다. 그 친구도 나못지않게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해 화를내면 컴퓨터가 망가지기도 하고 그랬다.


싸움이 심할땐 쫒겨나기까지 해서 밀라노 공원을 쏘다니다 여권과 짐마저 몽땅 도둑맞고 거지로 국제 미아가 된적도 있다. 손목에 남아있던 구찌시계 하나가 당시 내가가진 유일한 재산(?) 이었다.. 20대도 네덜란드에서 돈 없이 유학하며 몇년간을 히피처럼 생활했기에 유럽에서의 거지행각은 나에게 그다지 낮선것도 아니다. 어쨋건,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행도 시켜주는 고마운 친구를 마구 대할정도로 그 당시의 나는 안하무인 뻔뻔함이 몸에 밴 상태였던것 같다.


그녀 역시 화가나 나를 쫒아내기는 했지만 오갈데 없는 내 처지를 알기에 곧바로 나를 찾아 밀라노를 해매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녀의 도움으로 무사히 서울에 오게 됐지만 삶을 거의 포기했던 당시의 나는 서울에 오자마자 그녀와도 연락을 끊어 버렸다. 이태리 라는 낮선곳에서 갈곳없는 내가 어쩔수 없이 수모를 당했다고 하는 적반하장의 억울함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맞아도 쌀 정도로 뻔뻔함과 안하무인의 극치였고 그 이후로 그녀와는 원수처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정말로 미안하고 사과하고 싶은 아픈 과거이다. 나는 정말로 나의 미숙함으로 상처입은 지난 관계의 사람들(특히 과거의 연인들에게) 나의 잘못을 반성하고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사과 하고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내 의식이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녀는 시골에서 어린이집등을 운영하며 (나는 통학차를 운전하며) 조용히 살자라고 하였고 나는 그런삶을 견딜수없는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 강하게 거부했다. 철부지로 화려한 사회적 재기 아니면 차라리 죽겠다란 생각을 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공포감은 자살을 가능하게도 만든다. 나의 에고가 가진 가식, 자만감, 자존심은 한순간에 철저하게 무너졌고 나는 과거의 내 의식이 사회적, 경제적 추락으로 인한 두려움에 떨다 죽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죽음외에는 답이 없을것 같던 추락의 두려움도 아예 바닥까지 내려와 보니 경제적으로 바닥권층의 삶도 생각만큼 힘들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나름대로 그동안 몰랐던 삶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런일을 하느니 차라리 죽겟다' 라는 예전의 쓸데없는 자존심도 시간이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짧지만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도 해봤고 호프집도 해봤다. 그외 땡처리로 대량으로 물건을 넘기는일등 험한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장난하듯 즐겁게 해봤다. 성공도 경험하고 밑바닥도 경험해보니 인생이란 게임이 무엇인지 대충 윤곽이 잡히는것 같았다.


적은 소득에도 물질적 욕망에 얽매이지 않게 삶을 사는법을 터득했고 예전엔 바에서 매일같이 고급 꼬냑을 마시면서도 항상 돈걱정에 불만 불평이었다면 천원짜리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별다른 걱정없이 즐거움을 누릴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본질이 무한 긍정과 낙천적 이라는걸 나도 스스로 깨달았고 주변 사람들도 알게되었다. 나는 돈이 있을때나 없을때나 언제나 여유로운 한량 스타일이고 그것은 죽음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내 천성이다.


예전에 비하면 돈을 쓰는 규모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나는 도리어 심적으로 아쉽지 않게 더 넉넉한 생활을 누리며 지내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술자리가 가식적으로 접대하는 사람(여자)이 나오는 자리이다. 그 가식적인 접대 파장이 불편해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돈을 잘벌때나 못벌때나 나는 여전히 술을 즐겼고 비용은 차이나지만 그 즐거움은 비지니스적 가식을 벗어버린 일반 서민들의 술자리가 더 크다. 짜증나는 술자리를 몇백만원씩 주고 먹는것보다 일이만원에 먹는 생맥주가 즐겁고 시장에서 먹는 막걸리가 즐겁다. 위에서는 절대 알수없는 진솔한 서민적 삶의 즐거움이다.


사회적 의식의 죽음을 경험한지 정확히 십년이 흐른 2016년, 이번엔 갑자기 말기암 이라는 육체적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갑작스례 드러난 육체의 통증과 죽음앞에서도 담담할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것은 십년전 부터 이미 의식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일정부분 허물어 트리고 살아왔기에 육체적 죽음이 실제 닥쳤음에도 남들과는 다르게 담담할수 있는것이다. 인간 에고는 잃을것이 없을수록 미련도 두려움도 그다지 크지가 않다.


더이상 나빠질것이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으로 운명이 치달아도 나는 더 이상 공포감을 느끼지 않으며 불행하다고 한탄에 빠지는 대신 항상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불만들을 늘어놓는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나를 봐라' 라고 한다. 나같은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고 있는데 그까짓게 무슨 문제냐는 말인데 친구들도 내말에 수긍을 안할수가 없다. 어떤 악조건이라도 전부 나보다는 자신의 상황이 낫다라는걸 모두가 인정한다.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극단의 추락을 맛보았지만 물질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신성과 우주가 합일되는 의식을 맛볼수 있었다. 제한된 의식에서 벗어나 신성을 맛보는 의식 확장의 세계는 물질적인 몰락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나는 꼭 부자가 아니어도 아쉽지 않게 사는법을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지금은 육체적으로 극단의 추락을 경험중이지만 일반적으로 남들이 두려워 하는 삶에 뛰어들어 적응하면 언제나 새로운 경험에 눈을뜰수 있게 된다. 죽음과 대면하면서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 내 앞에 감추어져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착각이라면 죽을테지만 손해볼것은 없다. 내가 섣불리 죽음을 허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죽음은 언제든지 맞이할수 있지만 죽음에서 올라오는 삶은 지금밖에는 경험할수 없다. 그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것이 있을것 같은 기대감이 나를 계속 죽음에서 건져 올리고 있으며 단순히 살아있다는것에 감사를 드리게 만든다.


Brian Crain - Snow:

https://youtu.be/QqkQ7Hc6U3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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