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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Sep 09. 2021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선천적 카르마'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것이 인생이다. 삶의 교훈을 얻기 위한 학습일수도 있고 감춰져있던 카르마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현자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어려움들을 도리에 맞게끔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면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하나씩 정답을 풀어가다 보면 어느순간 구슬이 꿰지듯 한방에 전체 카르마가 좍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자신의 모든 세팅을 이해하게 된다.


카르마 중에서 이 생에서 기필코 가를 치러야만 되게끔 세팅된  카르마가 있다. 선천적 으로 타고나는 카르마다.  한생에 걸쳐 무조건 그 제한된 경험을 체득해야만 하도록 강제적으로 세팅된 경우로 제한을 태생서부터 지니고 나온다.



육체적 제한과 장애 대부분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수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의식에도 그런 선천적 카르마가 있다. 육체적 장애는 의식성장에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의식의 장애는 어찌보면 육체적 장애보다 더 답을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집안 DNA를 타고 내려오는 조상 카르마가 대표적인데 깨달음과 생각을 방해하는 덮개를 의식에 씌어 놓아서 혼자 공부해서 스스로 벗어나기가 정말 어렵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ADHD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대표적으로 일반인들 누구나 조금씩은 이런 기질들이 있고 그 격차에 따라 문제해결 능력도 제각각 차별을 보이게 된다.


의식에 봉인을 가한 제한이 곧 카르마인지라 에고가 온갖 수련과 노력을 해도 그 방황하는 마음의 정체를 알수가 없고 길을 찾지도 못하므로 매번 같은 고민 자리에 돌아오게 된다. 뺑뺑이를 벗어나려면 누군가 옆에서 문제를 풀수 있도록 덮개를 벗겨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럴 사람이 세상엔 없다란 사실이다.


다 같은 처지에 놓인 자들끼리 동호회 결성해 서로 위안삼는 놀이를 벌리거나 올바른 길을 분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삶의 끝까지 온갖 사이비에 휘둘리며 대가를 톡톡히 치루도록 만든다. 뺑뺑이를 풀어줄수 있는 인연을 만나기란 그야말로 조상 대대로 쌓은 공덕에 간신히 의지해야 할만큼 그럴 확률은 정말 희귀하다.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나 많고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드럼 담배 수입해 파는것 까지는 좋은데 가격이 16.000 ! 말도 안되는 폭리가격. 너무 비싸다..


대가를 꼭 치뤄야만 되는 선천적으로 세팅된 카르마인 경우, 최소한으로 대가를 치루는 방법이 가장 무난한 방법인것 같다. 도박으로 패가망신 해야할 운이라면 감당이 가능한 최소의 용돈 정도로 길거리 인형뽑기에 도전해서 실패 하는것이 낫다. 비싼 대가를 치루고도 얻는 지혜는 제각각이라 적게 주고도 금새 깨달아 퉁칠수 있고 끝없이 당하면서도 끝끝내 깨닫지 못하고 채무가 남는 경우도 있다.


꼭 크게 잃고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교훈을 얻고 도박을 멈춘다면 어리석은 만큼에 대한 댓가를 감당해야 한다. '등가교환의 법칙' 이란 무식한 방법인데 스스로 그것에 대한 해결 방법을 모르니 그대로 당하면서 가를 지불할수밖에 없는것이 중생들의 가련한 삶이다. (나 역시 내장이 없는 상태에서 음주와 식탐을 하다 하나남은 소장까지 잘라내는 비싼 댓가를 지불 하고서야 객기부림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어릴때 '전설의 고향' 에서 본 이야기 인데 매일 이유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시달림을 당한 여자가 스님이 갈대자루를 방에 놓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남편이 갈대 자루로 실컷 폭력을 휘두르고는 그 뒤론 버릇이 말끔히 고쳐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생에 남편은 밭갈던 소였고 아내는 소에게 쟁기질을 시키며 매질을 했던 농부여서 그 카르마를 몰아서 가볍게 갚게 만들었다는 전설다.



문제를 아는 사람에겐 답이 보이게 된다. 쉬운 문제인데 풀지 못하는건 공부를 안해서다. 카르마 귀신들은 공부를 못하게 방해하는 의식이다. 그 장단에 놀아나게 되면 항상 정신 산만함과 머릿속에 딴 생각만 들어차게 만든다. 그것 자체가 의식속에 세팅된 카르마 라서 에고는 스스로 혼자서는 그 뺑뺑이 틀을 벗어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우주공식을 풀어내는데 있어 평범한 인류 모두가 머리를 짜내도 아인쉬타인 한명이 풀어내는 공식을 이해할수 없듯 갑자기 머리가 좋아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갖은 고생을 해도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도록 세팅된 의식도 있다. 어떤 상황과 기회가 찾아와도 가난한 생각, 가난한 행동, 가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한다. 부자로 사는 방법을 가르켜 줘도 어김없이 반대로만 행동을 한다. 여유있는 사람에게 부자 되는법 이나 찾아 다니는 가난한 행동을 하지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역시 부자 되는법 찾겠다고 가난과 궁핍의 쳇바퀴 속으로 뛰어든다. 머리가 안 좋아서 형이상학 차원의 법칙을 이해 못하는 것이다.


에고의 마음이 종이 지닌 지능의 한계이자 귀신들이 활개치는 카르마의 통로다. 귀신들의 부르마블 주사위에 정신없이 뺑뺑이 도는 그것을 자신의 마음이라 착각한다.


'에고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에고가 스스로 답을 찾을수 없음을 인정할때 신성에 대한 내맡김을 선택할수 있고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 이란것을 일단 하게 되는것 같다. 신성이 바라보는 에고의 애처로움과 에고가 신성을 바라보는 견성과의 다리를 잘 넘나들어 보라. 자꾸 왕래 하다봄 귀신들도 뭐좀 알게 될수도 있을거다.



자신이 '할수 있는것''할수 없는것'을 아는것

'하지 말아야 할것' '해야 할것'을 아는것


이것만 확실히 깨우쳐객기를 부리지 않게되고 카르마가 내모는 무한 반복의 뺑뺑이와 갈대처럼 마음을 살살 때리고 흔드는 귀신 장난은 무시할수 있을것이다.


'위와 장기가 없으면 철분이 부족하므로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철분흡수를 방해하는 커피 카페인은 피하라' 라는 의사 조언과 '의식이 육체의 주인으로 나서고 모든 균형을 자율에 맡기면 위가 없어도 주사 필요없고 커피 무한대로 마셔대도 철분 부족할일 없다.' 는 나의 상반된 주장중에서 어떤것을 자신에게 맞는 진실로 받아 들일것인지 판단과 선택은 각자가 하는거다.


나의 조언에 태생적 의식의 카르마를 떨치고 가벼움을 느끼는것은 스스로가 그것의 정체를 알아서 인정하고 떨쳐 버렸을 경우이다. 같은 말을 해도 결국은 진리를 판별하고 받아 들일수 있공감능력의 차이다. 남이 해준것이 아니다.


Consuelo's Love Theme:

https://youtu.be/Hmbtp_UPW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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