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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Sep 29. 2021

생존을 향한 '초감이성'의 시대'

'감성'과 이성'을 통합한 냉철한 판단.


대부분의 에고들은 생각(이성)과 감정(감성)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IQ, EQ로 나눠 좌뇌 우뇌가 각각 담당한다는 말도 있다. 어릴땐 감성이 지배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을 많이하게 되면서 감성은 점차 메마르고 이성이 득세한다. 선천적으로 감성은 '음'인 여성성, 이성은 '양'인 남성성이 강하다. 성인이 될시 두 가지의 균형을 이루는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생활에서는 감성이 활약해야 하는 분야가 있고 이성이 주가되서 활약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감성은 주로 개인 사생활과 교류, 정신세계와 예술 문화에 관여된 분야들이고 이성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시스템, 기계적 업무등에 활용된다. 감성만이 나서사회적 관계와 업무에선 멍청이가 된다. 말이 안되는 바보의 억지 논리가 만인에게 통용되는 유일한 상황은 로멘스 영화에서 나오듯  '사랑'에 빠졌을때 뿐이다. 바보같은 사랑의 감성이 합리적 이성을 누를때 사람들은 감동받고 눈물 흘린다. 생활에서는 감성과 이성 두가지 스킬제대로 조율하지 못할때 사고가 터지고 후회할 짓을 저지르게 되며 사회적 관계가 엉망진창이 되기도 한다.


 위기상황에 내몰릴때나 상대방의 시비, 억지에도 '평정심'을 무너 뜨리지 않으려면 평상시 그만한 감정 조절능력을 키워야 한다. 협상에서 감정에 휘말려 쓸데없는 객기와 자존심을 세우면 손해를 자처하게 된다. 상대 페이스에 말려 흥분하게 되면 판단 능력이 마비돼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 쉽다. 물러설때와 밀고 나갈때를 헷갈려하고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조폭들의 협상처럼 쓸데없는 자존심 따지며 사고를 저지른다. (지나가던 사람이 째려봐서 기분나빠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성제로의 동물형 인간도 실제 존재한다.)



강력한 이성 스킬로 무장하고 악인이 되지 않으려면 억지를 정확한 논리로 제압할만한 이성적 판단능력과 더불어 무조건 상대를 이긴다는 생각 보다는 양보할때와 사과하고 물러설때를 알아야 한다. 양심을 외면하고 사회생활을 오로지 전쟁처럼 승리에만 집착하면 어김없이 '소시오패스' 가 된다. 도덕성이 갖춰지지 않고 감성이 메마른 머리만 좋은 소시오패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사회의 교육은 서로 경쟁만을 부추기는 소시오패스 양성소와 같다. 자본주의는 돈을 벌기위해 소시오패스가 되라고 권고하는 시스템이다.


대부분 허약한 에고들은 순진해서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다. 입모양만 봐도 감정이 드러난다. 반면, 이득권에 민감한 소시오패스 대부분은 이성으로 중무장해서 포커페이스를 구사하는 스킬을 지닌 경우가 많다. (감성만 극대화를 지닌 조커 같은 미치광이 악당도 영화속엔 있다.)


사업가, 정치가, 협상가 들에겐 속마음을 감춘 '포커페이스' 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필수 항목이다. (항상 인자한듯 포커 페이스로 포장한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자들에게 일반인들이 인정 내세우 어설픈 감성으로 대하다간 '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나의 경우는 '포커페이스' 는 소질이 없고 거짓말을 못한다. 미술과 음악을 전공했고 프리하게 되는대로 살아가며 일상 생활에선 한없이 감성에 취해 낭만을 구걸하지만 대신, 약속, 계약과 같은 철저함을 요하는 분야에선 바늘로 찔러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을만큼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사업할 당시 개인과 기업들과 협상과 계약체결 도장 찍은것만 5백건(?) 가량 되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말 바꾸고 약속 어기고 분위기 따라 은근슬쩍 두리뭉실 거짓말하고 어거지 부리는것 용납 안한다. 원칙을 무너 뜨리면 갈수록 서로가 더 큰 댓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 도리를 망각하고 선을넘어 어거지 부리는 엉터리 들이 나를 적으로 여기면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처럼 느껴질 것이다. 


남녀 관계에서도 일정 잘못된 '선'을 넘으면 냉철하게 끊어낸다. 욕망에 휘둘리다 나중에 닥쳐올 막장 드라마 같은 난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상대가 확실하게 잘못한것을 인정에 휘둘려 내가 틀렸다고 할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연애를 못했나?) 내가 불리한 '을' 의 입장이 되어도 원칙은 마찬가지다. 병에걸려 고통속에 몸부림 치고 죽음을 앞에 두어도 무력함 + 처량함을 냉철히 바라볼뿐 아무 이득없는 비극적 감성에 휘말리지 않는다. 죽음을 강요하는 운명의 뻔한 장난질에 동조해 감성까지 놀아날 이유가 없다.


감성에만 휘말려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을 '비 인간적' 이라고 비난하곤 하는데 자연과 신의 작용 역시 '비 인간적'이다. 무심한 하늘을 아무리 원망한들 자연의 원리 작용 어디에도 '정(情)'이나 감성으로 운영체계가 돌아가는 부분은 없다. 단지 자연의 일관된 법칙을 보면서 인간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과 위대한 감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성체계와 감성의 완벽한 조화가 우주이며 자연이며 신의 조화세계다.



변화되는 지구 환경과 자연에서 살아 남으려면 감성이 바탕이 되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요구된다. 


정말로 순수해서 쌓아온 덕 이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믿듯, 감성만으로도 수호신의 도움이 따르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럴 확률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반대로, 감성이 없이 이성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되면 대본대로만  외워서 이때는 슬플때 이때는 기쁠때 이성적으로 시간 나눠서 스스로는 합리적으로 삶을 살아 간다고 착각하게 된다. 대본에 '사랑에 빠진다'  라고 써놨다 해서 실제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건 아니다. 나름 머리굴려 책 읽고 '도' 닦는다는 사람들이 그렇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 인가? 지구자연과 인간의 욕심, 어떤쪽을 살려야 인간적이고 옳은 길인가? 전쟁이 났을때 무기를 드는쪽과 도망가는것, 어느쪽이 평화를 위한 길인가? 중요 판단에 있어서 감성이 앞에 나서야할 부분은 없다. 허약한 감성에 매달리다간 도리어 귀신 농간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것이다.


말세기는 감정 놀음에 휩쓸려 다닐때가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때다. 난세를 살아내려면 원숭이들의 이성만으로도 부족하고 감성만으로도 부족하다. 한쪽만 득세하다간 전부 망한다. 신성으로 통합해 '초감이성' 으로 냉철한 판단을 내리며 세파에 대처해야 한다.


동물 전염병이 돌때 더 큰 피해를 막기위해 무작위로 집단 생매장을 해대는 인간들에게 동물들이 그럴수 있냐고 억울함을 항변해도 인간들은 냉철하다. 자연이 인간에게 그래선 안된다는 논리는 오로지 인간의 감성에만 호소할아무런 근거가 없다. 아인슈타인도 그런 허약한 주장이 맞다는 논리는 발견해낼수 없을것이다. 얌전하다 해서 잠자는 사자 호랑이의 콧털을 뽑는짓은 멍청한 짓이다. 인간종이 대자연에 하는짓이 딱 그렇다. 지켜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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