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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Feb 24. 2017

몸안에서 키우는 맹수 '암' 길들이기

주변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환자의 정상생활..


오늘로 이것저것 처리해야할 서류일들을 마무리 지었다. 이제 안쓰면서 요금만 내고있던 여분의 핸드폰 번호 해지하고 방정리 자료정리등만 하면 된다.


요 근래 서류처리들과 병행해 계속 병원에 들락 거렸는데 나 때문이 아닌 입원해 계시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주문하시는 바람에 말기암환자로 백수인 나밖에는 그 심부름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 돌아다닐때는 쓰러지지 않도록 철분을 더 철저하게 챙겨 먹어야만 한다.


아버지 같은 경우는 링겔도 일찌감치 빼셨고 병원에서도 언제든지 퇴원하시라는 입장이지만 이왕 입원한거 돌봐줄 사람있을때 푹 쉬고 싶은 심정이신듯 하다. 환자가 공과금 낸다고 외출한다고 하니 그냥 퇴원하셔도 된다고 하자 외출하고 다시 돌아와 3월 7일날 퇴원하는것으로 합의를 봤다.


병원에서 당장 전문 암병원에 입원하라고 난리치는 나와는 정반대 상황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도리어 아버지 심부름과 병간호를 해야하는 입장이다. 집에와서 거의 정상인처럼 생활하다보니 아버지는 내가 말기암의 중환자임을 이제는 인지하지 못하시는듯 하다. 뭐든지 익숙해지면 그렇게 된다.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은 외식을 하러 나갔다. 암환자는 고기를 먹게됐을때 구이 보다는 지방을 제거한 삶은 보쌈종류가 낫다. 어머니가 보쌈이 먹고 싶다고 해서 보쌈집을 갔는데 대짜를 시켰더니 둘다 소식인지라 절반도 다 못먹고 나머지는 싸오게 됐지만 간만에 어머니 모시고 하는 외식인지라 편한 대화가 오갔다.



"엄마 나 의사가 암센터에 당장 입원해 항암 받으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 엄마가 너 뒷바라지 간병해줄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지금 나도 내몸하나 움직이기가 힘든 상황이라..."


불과 6개월 전만해도 의사말을 따르라고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나와 의절할 위기까지 갔던 어머니도 이제는 말을 싹 바꾸어 더 이상 의사말을 따르라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 그때 내가 엄마말 듣는다고 입원했음 어떻게 됐을거 같아?"


" 지금 이미 죽었겠지."

" 내말이 맞았지? ㅎㅎ"


내 주변에서 보기에 나는 평상시와 다를바없이 생활하기에 점점 내가 말기암 환자라는것을 인지하지 않게 된다. 내가 안정되니 주변도 안정되는걸 느낀다.이미 어머니와 아버지는 본인들 건강에 더 신경들 쓰시는 모습이고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어느샌가 친구들도 위로 보다는 자신들 어려움을 호소한다. 주변이 점점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몰랐던때로 원상복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기암 상태임을 알면서도 여기저기서 심지어는 지방에서도 자신에게 놀러오라고 꼬시기까지 한다. (나 말기암 환자라구요 ㅜㅜ) ..암환자 인건 알겠지만 주변이 점점 나에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정상복귀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내가 아프기 전과 다를바없이 생활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것은 말기암 환자에겐 피할수없는 통증을 내가 현제로서는 제어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암세포가 처음 진단 받았을때 이미 14cm 여서 수술로 잘라내기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지금도 그 이상 크기정도 되는듯 하다.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았으니 더 커졌을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결과, 암세포는 크기보다는 암세포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 


암세포가 한창 혈기왕성하게 탱탱할때는 장폐색 증상과 더불어 죽음으로 향하는 엄청난 통증을 안겨주지만 힘이없고 부드러워 지면 크기와 상관없이 내가 충분히 제어할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것을 알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는 몸의 통증이고 눈으로 확인할수 있는 방법은 변을 통해서다. 암세포가 힘이없고 말랑해지면 별다른 통증없이도 음식물의 통과를 받아들인다. 나같은 경우는 워낙 말라서 뼈만 남은지라 손으로 만져서 상태를 확인해 볼수도 있다. 딱딱한 돌덩어리 처럼 만져질때도 있고 부드러워져 근육처럼 잡힐때도 있다. 여기저기 전이돼 자리잡으려고 폼잡던 새끼암 세포들은 면역력 강화를 통해 충분히 자체 제거와 제어가 가능하다. 대세가 면역력의 우세일때 새끼암들은 어미암 보다 먼저 사라지게 된다. 폐로 전이됐을때는 담배 연기만 맡아도 죽을거 같았는데 지금은 흡연도 한다.


이미 한번 몸을 점령했던 거대한 암세포를 자연적으로 물리치려면 장기전으로 가야 한다. 주도권을 잡았을때 오만방자 하지 않고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굶어 힘이빠진 암이 불쌍하다고 암세포에게 영양분을 제공해주어서는 안된다. 먹고싶어도 모질게 암세포에게 영양을 주는 음식들을 참아야 한다. 오늘도 고기를 먹고 집에 오면서 콜라와 아이스크림이 땡기는걸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이 악물고 롯데리아와 마트를 과감하게 지나쳤다. 나같은 경우 당분을 공급하면 암세포는 바로 힘을 얻어 맹수처럼 으르렁 대고 나를 고통스럽게 물어뜯는다.


당장 죽을거 같을땐 마구 먹어대던 약재도 몸이 좀 살만하면 입에도 대기 싫어져 안먹게 되는데 내가 요즘 그렇다. 서류 처리할것도 대충 마무리 졌으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살아남기 작전을 실천해야 한다.


정상적인 생활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암을 다스리는법을 차차 익혀갈 생각이다.마치, 난폭한 맹수를 몸안에서 키우는 느낌인데 장기간 암과 동거는 피할수 없는 상황인만큼 병마에 얽매이지 않는 정상적인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활동적인 취미 보다는 당분간 독서나 영화감상등을 통해 몸의 안정을 취하고 날씨가 풀리면 시골에서 산책과 가벼운 등산 자전거 타기등을 할 생각이다. 제대로 실천될지는 누구도 장담할수 없다..대장암 이란것은 먹는거 하나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지라 말기인 경우 당장 내일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출혈 한방에 모든것을 날릴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오페라 [마술피리] 밤의여왕 아리아 (한/일 자막):

https://youtu.be/s7vJcUog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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