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 영화' 패신저스' 는 인간의 고립에 대한 영화이다. '로빈슨 크루소' 를 필두로 배구공을 사람처럼 대하던 '캐스트어웨이' 등의 무인도 표류기가 근래들어 SF우주로 배경을 바꾸더니 '마션' 등 여러편이 우주공간에서 혼자 살아가는 인간의 고립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신저스' 는 120년에 걸쳐 식민지로 떠나는 우주함선 안에서 기계고장으로 주인공 단 한명만이 중간에 깨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다른 승객과 승무원은 120년간 동면상태에 들어가 있는데 혼자만 30년 흐른후 깨어난 상황, 식민지까지 도착하기엔 아직 90년이란 시간이 남았다.남들이 도착하기 전에 혼자 우주선안에서 늙어죽어야 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결코 해서는 안될일을 저지르고 만다.
바로, 잠든 승객중에 자신이 사랑하게된 여인 제니퍼 로렌스를 인위적으로 깨워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이 깨어난것이 사고라고 생각하는 여인을 속여 아담과 이브처럼 호화 우주선 안에서 둘만의 낙원을 이루는듯...
이 영화를 보면 인간의 아주 단순한 본능적 속성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같은 환경이지만, 혼자일때 인간은 지옥의 삶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남녀 둘이 돼면 낙원같은 삶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혼자냐 둘이냐에 따라 같은 환경 안에서도 극과극으로 바뀌는 인간의 단순한 삶에 대해서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인간과의 관계도 환자는 해당사항이 되지 않는다. 건강하지 않은 인간에게 새로운 사회적 관계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특히나, 한국에선..
나의 경우,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가슴아프고 상처로 남은 어린시절의 관계가 있다. 10년을 넘게 사귀었고 철없던 나의 잘못으로 헤어진지 18년이 흘렀다..헤어진 이유를 알기위해 몇년간을 술로 방황하면서 보냈던 시절도 있다.
아직도 나에대한 원망을 품고있는듯 결혼도 안하고 서로 중년이 된 지금, 그렇게 18년간을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상처와 원망만을 품고 지냈는데 재회를 원하는 연락이 작년 추석연휴중 갑자기 한밤에 왔다. 시골에 있다가 집에 와있던 짧은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나를 매형처럼 따르던 남동생의 주선으로 그 아이가 사는집앞에 있는 평창동 호텔까지 다음날 내가 직접 찾아가 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문제는... 하필이면 내가 그 당시 암과 싸우던 가장 극악스러운 상황으로 생사를 오가며 내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때였다는 점이다. 어차피 만나면 바로 다 알게될거.. 만나기전에 내가 사실은 병자임을 고백했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하려는 새벽 7시에 약속을 취소하자는 문자 메세지가 왔다. 사회적으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확실한 확인사살을 다시한번 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단지 죽기전에 18년간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풀고 즐겁게 식사나 하자는 생각이었는데...더러운 기분으로 그렇게 오랜기간 쌓인 애증의 감정의 끝을 맺었다.
어제도, 뜬금없이 몇년전 잠깐 알고 지내던 일본에 사는 아이가 전화를 걸어와 5월달에 한국에 오는데 다시 만날 의향을 내비쳐서 내몸 아프다는 말은 안하고 농담이나 하다가 형식적으로 한국오면 연락하라는 건성 대답을 할수 밖에 없었다.내가 상대에게 해줄것이 없는 상황인지라 진짜 연락오면 뭔가 핑계를 대고 안만나는게 정답 같다. 대부분의 나와 헤어진 연인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재회를 희망하고 의견을 타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지금같은 상황은 최악중의 최악 상황으로 만나봤자 서로에게 상처만 더 남길 확율이 크다.
암환자인 남성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겐 최우선의 기피대상이 된다.특히나 나같은 말기암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여성도 사정은 그다지 다를바 없을 것이다. 이미 깊은 연인 사이나 가족이 아니라면 암환자의 일반인과의 교류는 결코 쉽지 않다. 병간호를 요구하는것도 아니고 단순히 차나 마시면서 노닥 거리는 친구사이의 교류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특히나, 한국 여성들의 경우는 나이가 찰수록 결혼이라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위해 아무남자나 만나선 안된다 라는 자기보호 의식이 강해서 기준에 벗어난 남자들은 접근허용을 잘 안한다. 나이가 찰수록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것이 아닌 조건과 조건이 만나게 되는것이 점점 심화된다. 당장 죽을지 모르는 암환자라면 벌레보듯 피하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내가 젊은시절에 만났던 이성친구들에게 항상 나쁜놈이 되고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점도 딱 한가지이다. 인생에 있어 결혼같은건 할맘이 전혀 없었다는것...그것 하나만으로도 남자는 여자를 만날시 결국은 항상 천하의 나쁜놈이 되고 만다. 결혼을 나름 염두에 두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던 여자는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갈수 밖에 없고 나는 언제나 상처를 주고 나쁜놈이 될수밖에 없었던 것이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내가 결혼을 선택안함으로 인해 그녀들을 예약된 불행에서 모두 구원해준 셈이다. 지금의 내 상황을 알게돼면 그녀들 모두 쌤통이라고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까...내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것에 대해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고립된 삶중에서도 한번 더 고립되는게 암환자들인만큼 가족들 기존의 친구들 외에는 그 상황을 이해해줄 사람은 없다.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연락해 온다면 사실을 밝히는것 보다는 다른 핑계를 대고 안만나는것이 스스로가 상처를 덜 받을수 있는 길이다. 눈으로도 구별이 가능한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보다는 그래도 낫겠지만 암환자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차별도 그다지 다를바없다. 고립을 스스로 즐기지 못하면 사람들 관계에서 차별받고 상처받는것은 감수해야한다.. 억울하면 건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