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아름다운 천국이 될수도 있고 괴로운 지옥처럼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기분의 프래임안에 있는가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개개인 기분과는 상관없이 진실과 현상은 일정합니다. 명확하게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고 옳고 그름 삿됨과 공의, 흑과 백이 공존합니다. 단지 자신이 어떤 시각을 갖는가에 따라 첨예하게 편이 갈리고 서로를 대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사고 판단 능력에 있어 옳고 그름,진실과 진리를 따지기 보다는 자신의 기분이 좋고 나쁨을 우선시 합니다. 특히 노인일수록 여성일수록 이성적 판단을 아예 배제하는 경우가 많아 대화 자체가 불가할때가 많습니다.
사건이 터졌을때 차분히 원인과 내막을 파악하고 각각의 현상과 사실관계 잘못을 지적하면 대다수가 (남성보단 여성이 젊은층보단 노년층이) 옳고 그름이 아닌 자신이 기분이 좋고 나쁘다는것만 내세우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같은 행동과 말을 해도 자신이 받아들이는 감정은 극과 극으로 차이나는것을 보면 이해할수 있을것 입니다. 상대가 하는 어떤 말과 행동보다는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 자신의 감정이 더 우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짓을 해도 다 이뻐 보이고 싫은 사람은 무슨말을 해도 반대하고 싶어집니다.
일상 생활에선 방식의 차이라고 넘어가지만 문제는 사고가 나고 해결하기 위해 책임소재 시비를 가릴때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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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쁘건 째지게 좋건 그건 사건과 아무 상관없는 문제이고 나는 사건을 이야기 하는데 그대들은 엉뚱하게 왜 자기 기분 이야기만 하는겁니까?
내가 냉철하게 시비를 가리면 그들은 나에게 인정머리가 없다. 유도리가 없다 등으로 나를 비난 합니다. 인정이 있으면 잘못이 사라질수 있습니까? 벌어진 사건이 없던일로 됩니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왜 나를 모질다고 비난하려 듭니까? 그대들의 무지에 대해 내가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 왜 그걸 나에게 따져야 합니까?
‘천한것이 어디서 감히! ’ ‘어린것이 어디서 버르장 머리 없이! ’ ’ 당신이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사람들은 상대가 무슨말을 하는지 그 내용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자기 감정만을 내세웁니다. 소통이 될리가 없습니다. ‘당신말이 맞아도 내 기분을 안 좋게 했으므로 당신이 잘못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엉터리 논리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사기꾼들의 우대고객 이 됩니다..
사건 해결에 있어 기분이 우선될때 적반하장, 배은망덕, 내로남불등 온갖 부정으로 얼룩지고 해답이 아닌 문제가 더 꼬이기 마련입니다. 도리가 막혔을때 어떠한 소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한 강압만이 통하게 됩니다. 당장은 문제가 해결된듯 보여도 트라우마를 남기거나 잘못을 되풀이 합니다.
도통이라 함은 모든 도리와 이치가 통함을 말합니다.도리에 어긋나는것이 없을때 벽과벽이 허물어지고 쌍방향 오픈이 됩니다.
잡술에 홀려 나라를 팔아먹어도 당당하게 큰 소리 치는 대범한 국민들입니다. 나라가 망해가도 잘잘못 보다는 자기 기분이 더 중요합니다. 지성이 통하지 않는 그 정도 수준의 국민들 다스리긴 정말 쉽습니다. 해결방법도 간단합니다. 역적질 하면 적당하게 삼족정도 살짝 능치처참 해주면 아파트 땅값 올린다고 나라 팔아먹는짓은 절대 안하게 됩니다. 해답이 없는게 아니라 문제를 풀 마음이 없을뿐 입니다.
중년대가 되면 자라오며 의지했던 부모가 보호자로서의 역활을 못하고 자식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가는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온갖 어린아이 같은 자잘한 사건들이 일상에서 벌어집니다. 아주머니들과 노인들의 수다는 에베레스트 산을 수십번 왕복합니다. 별것도 아닌일로 죽일놈 살릴놈 남을 입방아에 올리고 수다떠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노인들 주로보는 종편방송 들도 매일같이 논란꺼리를 던지며 분란을 부추겨 댑니다. 귀신들이 원하는대로 모두 난장판을 즐기세 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의식에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제약을 가하는것이 에고의 습성입니다. 자신이 모르는것은 없다고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들어본적 없고 가본적 없다해서 미국 일본 중국외 실제 지구촌 수백개 국가들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신도 그렇고 마귀도 마찬가지 입니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만큼 삶이 무지와 한계속에 갇힌채 미로속을 헤매 다닐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모른다면 없다고 믿는것이 속편할테지만 발전도 없습니다.
모른다면 알려고 해야하며 알면 알수록 점점 다른 분야끼리도 통하는 근본 원리를 알게 됩니다. 모르는 분야라도 그릇됨이 보이면 잘못된 유혹에 혹하지 않게 됩니다.
바른길을 걸으며 무지가 구속하는 모든 좁은 아집에서 벗어나는 길이 도통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지 마세요.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열려있는 상태를 말하며 안다고 자신할때 한계는 설정 됩니다. 확실하게 알게 되는것만이 자신의 것이 됩니다.
태양은 기분에 따라 뜨고 지지 않습니다.
어리석을수록 올바름을 선택해 줄서기 보다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자기가 속할 라인에 줄을 섭니다. 그리고 무조건 자신의 선택이 맞기만을 고집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맞고 변하지 않는 올바름 이라야 진리라 할수 있습니다. 누구도 태양이 하늘에 떠 있고 만물에 공평 하다는것을 부정할수 없을것 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올바름’ 진리란 그런것 입니다. 항상 올바름과 정도를 선택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인류가 자신 입맛에 맞는 샛길만 찾다 망함을 반복하는것이 인간들 역사 입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태양이 안 뜨길 바라고 지하실에 햇빛이 비추길 바라고 자기들만 태양을 가질수 있다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어리석은 마음은 애초 안 갖는것이 현명한 ‘이익’ 임을 인간도 이제는 알아야 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