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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l 19. 2023

7월 반환점을 돌아서..


7월의 중간 종착점  15-16일, 개인적 으로는 만 55세 생일이자 생의 반환점에 도달해 이제 Non Stop 회귀 코스를 시작해야 한다. 등산으로 치자면 갈대까지 갔으니 이젠 (막걸리 한잔?) 하산 이다. 그나마도 처음과 끝이 같을땐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 붙이기가 가능한데 처음과 끝이 다르면 아귀가 안 맞아 일직선에서 낭떠러지 끝이다.



순환 하느냐 다 왔으니 결론내고 - 끝- 하느냐... 모두가 가는 길 끝에 낭떠러지가 떡하니 있음을 보는데 끝에가서 “모두 외롭지 않게 함께 몸을 던지고 끝냅시다 ” 때창으로 구호를 외쳐도 나홀로 “ No!” 끝맺음 보다는 살아나갈 다른길을 선택한다.


환경이 변하고 막바지에 몰리면 도태되는 종이 있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변화하는 종이 있다. 진화론의 흐름에서 돌연변이가 발생되는 막바지 시점에서 백마리 원숭이 효과가 벌어지면 새로운 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있음을 증명하기는 쉽다. 마징가 해골 티셔츠 입고 나돌아 다니듯 있는걸 내보이면 된다. (장농속에 있다고 하면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으면 사기일수 있다. 종교교주들이 잘하는 짓이다.) 그러나 없음을 증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가지고 있지 않음을 당시대엔 아무도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러하고 노화가 그러하며 어둠 또한 그러하다. 죄도 무죄 입증이  밝히기 보다 어렵다. 시간과 역사만이 그것을 판정할수 있다.



가져야 한다고 윽박 질러대던 집단의식의 어리석음은 끝을 봐야 끝이난다. 55년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달해 다시 거꾸로 회귀함은 결국 가지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나의것이 아닌건 미련을 갖지 않는다. 남들따라 낭떠러지로 직진할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https://brunch.co.kr/@yemaya/764



끝까지 가보고 계속 지켜봐도 그건 없더라.. 그 없음을 증명하려면 또 얼마나 걸릴것인가.. 남들과 다른길을 간다는것은 수많은 오해와 편견, 불통의 가로막힘을 뚫고 지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자신의 잣대로 나를 오해해 화를 내고 내가 틀렸다고 고치라는 바보스런 조언들을 앞으로도 끝없이 감수해야 한다는것을 말한다. 한치 앞길을 보지 못하고 일희일비 감정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고 모두가 주장하니 일일히 대응하고 설명 한다는것 자체가 소모적 생의 낭비다.  55년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오직 시간만이 나의편이 되어줄것이다.


* 말기암 상태서 시골서 요양할때도 오늘 내일 하는 아픈몸을 참고 잡일과 선배 농산물 배달을 도왔는데 고맙다는 말대신 수확 일손 바쁜데 더 열심히 안 도와준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말기암 환자가 맘대로 돌아다니고 하루종일 줄담배 피우는걸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장이터져 죽음의 순간이 닥치고 나서야 아프다는 내말이 진실임이 증명됐다.


수술중 임시로 창자까고 배를 가른 상태서 항암 맞을때도 주사바늘 빼고 만나자는 친구의 조름에 주사바늘 매달고 하루종일 사람 만나 운전해주고 놀아줘야 했다. 아무리 주사통 보여주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당장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도 자기들 소화불량이 더 아프다고 징징 대는것이 멀쩡한 에고들 엄살이다.



다 떨궈내고 한칸만 남긴채 55년간 달려온 나의 열차는 이제 다시 회귀 하노라.. 사람들이 몰려가는 길끝에 낭떠러지가 있음은 충분히 알렸고 각자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시대다.


이해가 안되면 내버려 두어라.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의 말들을 당장은 단순 헛소리 정도로 치부할테고 시간이 입증해 봤자 또 다시 그저 괴물 별종 취급하고 말것이다. 반복 패턴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잡스런 저질 술사 놀음이 딱 맞는 국민들 수준에서 이해를 구할것도 기대할것도 없다.



시간만이 언제나 나의 편이자 동반자 가 되어줌은 내가 샛길로 빠지지 않고 생명이 알려주는 길로 맞게 간다는 의미다. 병걸려 내장과 육체를 다 내주고도 해골과 껍데기만으로 다시 부활하는 원리이자 이유다. 내가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이상 생명과 시간이 나를 배신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개구리가 자신이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우겨대는 것을 ‘우물안 개구리’ 라고 한다. 개굴님이 자신의 머리로 인간세상이 이해가 안된다 해서 틀렸다고 거부하면 발전도 없다.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이다. 이해가 안되면 자신의 생각대로 고치라 윽박 지르지 말고 그저 내버려 두어라.



진화의 Step 은 항상 한계를 마주한 극도에서 스위치 ON 되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사신이 형님할 정도로 누가 귀신이고 누가 사람인지 모호해도 죽음이 섣불리 안 건드리는것은 내안의 생명력 또한 끝없이 새롭게 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신과 생명이 벌이는 체스게임에서 내가 어느편도 들지 않는건 진화론적 입장에서 어느쪽도 틀린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에대해 이해를 하건 오해를 하건 그건 각자 자유의식의 영역일뿐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진실들을 집어든것에 대한 결과만이 존재한다. 개와 고양이가 살아가는 방식을 인간이 틀렸다고 할수 없듯 세상 만물이 각자 개성을 뽐내는게 그런 연유 아니겠는가..


https://youtu.be/gt1MOnbX2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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