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알곡 씨앗을 챙겨야 할때..
얼이 빠진 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진실과 마주침을 싫어한다. 아집이 강할수록 자아성찰을 단순 자신에 대한 ‘괴롭힘’ 으로 받아들인다.
사실을 지적하면 아니라 항변하다 유치함이 그대로 드러날때 그들은 화를 낸다.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던지 누구처럼 청문회장을 박차고 나간다.
마녀사냥에 서슴없이 동참하면서도 집단주의에 기대 죄책감 같은건 없다. 숨어서 내지르고 난 안 그랬음 시치미 뚝 때고 있는짓 잘한다.
거짓말 하면서도 양심의 찔림을 못 느낀다 함은 영혼과 단절됐거나 신성기능이 망가져 분리된 ‘껍데기’ 라는 말이다. 바람불면 날라가는 허상들이다.
썩은것을 썩었다고 하면 듣는 썩은것들도 감정과 입이 있다고 발끈한다. 동을 된장이라 할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가급적 얼빠진 껍데기 와의 대립은 피하는게 상책이다.
또 한가지 얼빠짐의 특징은 덜떨어진 멍청함 이다. 사악함과 멍청함은 세트처럼 붙어 다닌다. 그릇됨을 따르자면 멍청해야만 함으로 어쩔수가 없다. 사악함은 나서고 멍청함이 동조한다.
나라의 국격과 국운은 지도층과 그 지도층을 선출하는 국민들 수준에 좌우된다. 사악하거나 멍청한 자들이 지도층이 되고 멍청한 자들이 따를때 각종 사고가 따르고 국가 시스템 전체가 곤두박질 치게 된다. 모든 실정에 대해 하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위에서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하에서 실무자가 버틸려면 비합리적 임을 알아도 영혼을 삭제하고 바보가 되는수 밖에 없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공무원 시스템으로 뺑뺑이 돌고 골탕 먹는건 언제나 힘없는 국민들이다.
법위에서 편법을 쓰는자들이 특권층을 형성하고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하는게 오로지 힘없는 자들뿐이라면 법의 권위나 기능은 실종되고 반발은 당연하다. 종국엔전체 시스템이 기능을 상실하고 붕괴된다.
스마트폰 쓸줄 안다고 다들 비슷하다는 연대감이 껍데기로 살아가는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다. 대세를 따름에 다들 자신이 중간쯤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힘있는 1% 가 내지르는 욕망에 나머지 99%가 끌려 다니는것을 평균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명품가방 세일한다고 새벽부터 백화점 줄서는 사람들끼리 속물 순위 매기고 앞줄 흉보는것과 같다.
자신안의 알맹이를 찾지 못할때.. 썩어서 자신도 들여다 보기조차 싫을때.. 항상 채워지지 않는 빈 껍데기 속을 채울 쓰래기들을 찾아 헤맨다. 망해가는 세상속에서도 삶은 지속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쇼핑으로 채워짐의 위안이 되지 않음을 깨달을때 비로서 쓰래기들을 사모으는 행위를 멈추게 된다. 먹방 흉내 내는것도 그러하다. 채워야 하는것이 위장이 아님을 알아 차릴때가 있다. 지금이 그러해야만 할 때이다.
만물은 추워질수록 오그라들고 응축된다. 흩어진 마음의 기운들 추스려 모으라. 혹한에 문을 나서려면 단단히 무장을 해야한다. 헬렐레 복장으론 겨울 문턱을 넘지 못한다. 알맹이 씨앗들을 챙겨라. 수확이 시작되는 말세다.
껍데기는 날라가고 알곡만 남을것이다.
https://youtu.be/iXqkrkZbqZc?si=uaX2h0GF1Dif7T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