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걸림돌을 치우며..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종일 외식으로 시작해 외식으로 끝났다. 아침에 콩나물 국밥을 사먹고 점심은 지인과 후배를 동시에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하고 외출에 나선다.
혹시라도 마지막 만남이 될수도 있기에 내가 밥을 사기로 마음 먹고 호기있게 나섰는데 서로 밥값을 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내가 밥사는건 결국은 실패했다.
"형은 꼭 나한테 밥한번 사야해..밥사주기 전에는 절대 죽으면 안돼."
내가 완치돼기 전에는 절대 안얻어먹겠다고 하는데 후배한테 밥얻어 먹는게 폼은 안나지만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맛있는 삼계탕을 점심으로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들을 하는데 20년 알고지낸 또다른 후배가 온다. 둘다 자기 사업을 하는지라 평일이지만 시간은 내기 나름이고 간만에 옛날 이야기들을 하며 수다 떨다보니 어느새 또 저녁먹을 시간이 된다. 낄낄거리며 노닥 거리다 보니 며칠전에 병원에서 받은 정신적 타격이 어느새 점점 회복돼 다시 원래 내 본연의 페이스인 낙천적인 성격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몇년더 숨쉴수 있는 실날같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장기들을 전부 도려내겠다는 도살장 같은 병원에서는 당장 죽음을 맞이하러 오라고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더 즐겁게 정상인으로 살아야겠기에 미안하지만 쌩깔란다..
나라는 몸뚱아리는 정말 신기해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는가에 따라 컨디션이 오르락 내리락 그 편차가 심하다. 병원에서 사진을 보고나니 그동안은 신경도 안쓰였던 위와 췌장에 쿡쿡 찌르는 통증이 오기 시작해서 멍든것처럼 더부룩한게 며칠간은 위암 췌장암 환자처럼 아프고 불편했다. 대장암이 아니라 위암과 췌장암을 더 신경써야 한다는 무의식의 결과이다. 반면, 메인인 대장암은 그 크기가 줄었다는걸 확인하니 현재로선 전혀 통증이 없다. 한두숟가락 뜨기도 힘들었던 작년과 비교하면 세끼를 외식으로 먹고도 별다른 탈이 없다는것 자체가 엄청난 발전이다. 의식과 육체가 하나로 점점 동일화돼 가는건 일단은 내가 바라던 바이다.. 육체를 의식으로 통제할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사진으로 보이는 상태와 상관없이 여태 신빨로 정상인처럼 잘 지내온것 이기도 하다.
몇달만에 맛보는 맥주맛이 환장하게 맛있다.. 다른 초밥집보다 세배이상 크고 두꺼운 (장어 초밥은 장어가 한마리 통째로 올라가 있다.)특모듬 초밥에 간장새우, 해삼 내장젖. 새우튀김등을 먹으며 중년 아저씨들이 20년전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대며 노닥거리는 즐거움..저녁은 내가 사마 했는데 결국 폼안나게 이번에도 다른 후배가 계산을 했다. 내가 완치되서 밥사기 전에는 절대로 밥을 안얻어 먹을 예정이란다..
"형은 정말 예전에 말로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줬어.."
말들을 들어보면 한참 잘나갈때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줄 알고 후배들을 마구 대하면서도 그들이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돼는지 전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안하무인 독재자 스타일 이었던것 같다..맘은 그렇지 않았는데..정말 미안하다. 수백명 사람들과 일을 했으니 내가 이렇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꽤 될거같다.ㅋ 내가 을로서 만났던 사람들 비위만 맞추려다 보니 내가 갑으로 대했던 백여명 정도에겐 정말 안하무인 상처도 많이 줬던것 같다..우리나라를 현재 헬조선으로 만드는데 핵심역활은 우리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것 같다. 나부터 물질적 성공을 무조건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달려왔으니..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나의 경우 내 생에서 아쉽다고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이 왜 나는 이태석 신부같은 위대한 삶을 살지 못했나 이다. 나하나 잘먹고 잘살겠다고 살아온 삶이 쪽팔려 죽을수가 없다고 후배와 지인분에게 말했는데 진심이다. 이태석 신부같은 그런 삶이었다면 뭔가 위대한 의식으로 뿌듯하고 떳떳한 죽음을 맞이할수 있을거 같은데..
에고는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남보다 잘사는걸 목표로 삶을 사는것이 일반적이다. 나역시 그러했다..죽음앞에서도 존엄성을 지키는것보단 아둥바둥 남에게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되기가 쉽다. 이번에 의사가 정통으로 날린 사형선고로 내안의 원숭이는 실제로 많이 기가죽고 쫄았다. 쌤통이고 잘됐다.. 더 이상은 원숭이가 튀어나와서 내몸을 죽음으로 이끄는짓은 겁나서 못할테니..
원숭이가 나를 지배하는 삶은 더이상 쪽팔려서 싫다. 돈도 중요하지 않고 명예도 중요하지 않고 이태석 신부처럼 스스로 뿌듯한 슈퍼에고의 위대함을 느끼면서 사는 삶, 스스로에게 떳떳한 자부심을 갖고 죽음을 맞이 하고 싶다는 나의 바램은 내가 죽음과 동행하다보니 근래들어 생긴 마음이다. 자신의 삶을 인류와 타인을 위한 봉사등으로 살게되는 삶은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위인들이 대단한 것이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더 맘껏 즐기고 살겠다는 후배는 내말에 현재로선 동의는 안하지만 아마도 형말이 맞을거 같다고 한다. 죽음과 동행하는 사람이 직접 하는말이니 그게 맞는말일거라고 수긍한다.. 자기는 그런데 그렇진 못할거라고...누구나 자기가 가장 힘들다 생각하고 자기 가족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타인에게 봉사까지 하면서 산다는건 에고들에겐 여간 힘든일이 아닌거 같다..대부분의 종교 영성인들도 말로만 떠들고 혼자 생각만 하고 실제 행동은 이기적인 행동들만 하는것을 보면 아무리 마음공부를 한다해도 에고의 한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함을 알수있다. '우주만물 모두가 하나다' 라고 떠드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봤는데 실제 타인을 자신과 같이 대하는 사람은 아직 본적이 없다.
인간은 어떻게 삶을 보냈는가 죽음과 대면해보면 제각각 느낌이 다를것인데 뿌듯하고 개운하게 잘살았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죽음을 맞는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에고의 즐거움과 행복에 목표를 둔 삶을 살다 죽음을 맞는경우는 대부분이 만족했건 부족했건 간에 엄청나게 삶에대해 집착을 보이게 되는거 같다. 나의 경우는 크게 미련은 없지만 뭔가 위대하고 뿌듯한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대로 죽기엔 스스로에게 쪽팔려서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는건 괜찮은데 뭔가 가치있는 죽음이었으면 좀더 폼날거 같다.. 그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삶에대한 미련도 아니고..슈퍼에고 의식의 충만함에 대한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런 삶을 살다 죽은 이태석 신부를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현재 나와 같은 나이에 같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래서 더 그런 비교감정을 갖게 되는것 같다. 일단, 스스로에게 안쪽팔린 삶을 살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좀 살면서 좀더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겠다..내가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면 내 삶은 아직 끝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