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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Mar 28. 2024

‘본능’ 앞에 놓인 ‘자율’


고양이는 따로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다. 자기가 스스로 매일같이 꼼꼼하게 구석구석 핣아서 털관리를 한다. 고양이의 침에는 살균효과도 있다한다. 자기몸 청결을 좋아해 화장실 갔다오면 스크래치를 통해 병적으로 손을 씻는다.


비를 맞아가며 배고픔을 채우기위해 방문한 길양이 대삥 작년 조그만 녀석이 겨울내 못본사이 두배로 커졌다.몇년을 먹여도 길양이는 먹이주는 사람을 경계한다.
상그지 꼴로 비맞고 쉴곳이 없이 떠돈다. 너무 더러워 자체 그루밍을 포기한듯 목욕이라도 시켜주고 싶지만 녀석에게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자기한테 내주는 밥도 눈치보며 먹는다.


길양이들의 평균수명이 2-3년 이라면 집고양이 들은 10-15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생존에 따른 위협도 있겠지만 매일 빗질을 해주는 집고양이들과 달리 길양이들은 자신의 털에 묻은 오물들을 털과함께 매일 자신이 먹게됨에 따른 위생 문제도 크다. 쓰래기 더미들을 뒤적거리며 몸에 묻은 온갖 더러운 병균들을 핣아 먹는만큼 건강을 위협 당할수밖에 없다.


집고양이가 마음껏 야외 흙과 먼지에서 뛰놀면서 동시에 인간과 한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목욕 고문 또한 감수 해야만 한다.


문열어주앙 나가 놀고 싶단 말이야옹 이정도 미닫이는 혼지 여는데 그 다음 철문이 또 있다.
흙에서 뒹굴고 난 다음 씻겨달라고 눈치보는 녀석. 이번엔 물티슈론 어림도 없다. 목욕이 고양이들에겐 가장 견디기 힘든 고문이지만 냅두면 자기가 다 핣아먹는다.


고양이의 바닥 뒹굴기는 자기영역 표시라고 한다. 밤에 뛰쳐나가 흙밭에서 뒹굴기 놀이를 한번 하더니 주기적으로 말안듣고 비행을 저지른다. 얌전한척 마당을 거닐다 순식간에 금단의 선을 넘어 야생 본능을 채울땐 어쩔수 없이 난리를 쳐가며 목욕을 시킬수 밖에 없다. (왼만한 오염은 물티슈나 젖은수건으로 씻겨주면 된다.) 안 씻기면 자신이 묻힌것 자기가 다 핣아 먹어야 한다. 카르마란게 그런거다. - 녀석에게 목욕이 벌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집안에서 생활하기 위한 절차임을 이해 시켜야 한다.


복수하고 말테다.


야밤에 뛰쳐 나가 순식간에 흙바닥에서 뒹굴자 어차피 버린몸 맘껏 뒹굴라고 내버려 둔다. 대신 이번엔 반대로 집안출입을 못하게 문을 닫으니 문앞에서 급 얌전해진다. 다른 길양이들 통곡 소리를 들으며 뭔가 깨달은바 있는듯 하다. 다시 집안에서 뒹굴기 위한 목욕고문에 형식상 불쌍한척 난리를 친다.


반성 모드


목욕 고문을 마치면 화해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고양이는 어차피 야단쳐봤자 알아먹는 종자가 아니다. 잘 참았다 칭찬해주고 츄 내주고 다시 이뻐해줌으로 서운한 감정을 풀어준다. 목욕이 싫으면 흙밭에서 뒹구는 짓 하지 말란 말이다. 몇번 반복하다 보면 깨우치게 된다. 그러면 자기가 선택을 할테고 댓가를 치루고라도 뒹굴겠다면 목욕 고문을 참아내야 한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만큼 녀석은 요물이 다돼 눈치 백단이다. 눈치라는게 주인공 같은애가 적진에 침투해 수십명 경비원들 막 후드러팰땐 안 아파도 적당히 한방맞고 기절해 주는척 해야 하는거다. 배트맨 영화보면 알것이다. 튄다고 안 쓰러지고 버티면 계속 맞아야 한다. 감독이 잘한다고 시나리오 바꿔주지 않는다. 녀석도 그걸 안다.


각오한듯 세번째는 살살 달래가며 온수로 씻기니 고문당하는 놀이를 즐기는듯한 노래를 한다. 싫다고 양하면서도 얌전하게 꼬리까지 흔드네 이녀석.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의 본능을 역행해 엄살 연기하며 내심 목욕 즐기는 고양이가 될지도 모른다. (쫒겨나는건 아닌가 보다 안심해서 그럴수도)


내옆에 누워 새로산 추리닝 바지를 또다시 넝마로 만드는중이다.


목욕후 뽀송해진 털을 핣고나자 신나하는 녀석 아양모드로 전환해 깨물고 꾹꾹이 놀이를 한다.


야밤 비행 신나게 돌아다닌후.. 다른 길양이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심하게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되… 기는 커녕 겁먹고 자신의 안위를 다행으로 여기게 된 듯하다. 고분고분 토라짐을 풀고 다시 나와 레슬링을 즐긴다.


야옹다웅 녀석은 새로운 규율에 부딫치고 본능적 요구를 조율하면서 인간과 살아가는 요령을 배우는 중이다. 늦게배운 도둑질 날세는줄 모른다고 아파트에서 생활할때 우울증 모드로 얌전하게 8년 지낸 녀석의 내면에서 야생 본능이 꿈틀대며 살아난다. 그러나..



새로운 길양이 멤버들. 물갈이가 싹 됐다. 작년 멤버들의 자식들이다. 겨울이 지나고 직접 대면하기 시작한다.
목욕 전과후 털색깔이 다르다.


인간과 함께 실내에서 안락하게 지내고 싶다면 흙바닥 뒹굴고 싶은 본능적 욕망을 순화 시켜야 함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당에 일부러 가짜 잔디 깔아준거다.. 적당히를 배워야 오래 사니라.


놀아달라고 밀당 걸아올땐 내 눈치를 봐가며 살살 깨물고 꾹꾹이를 한다.


녀석이 행복하려면 동종의 친구가 필요하다. 나이만큼 집안에서 혼자서 할건 다해본지라 어떤것도 관심이 없다. 혼자 오래놔두면 우울증 걸린다. 장난감도 새끼들 한테나 놀이감이다. 단지 더러워 지는게 싫다해서 이 좋은날 햇빛을 즐기지 못하게 집안에만 가두는것은 생물체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마당없는 도심에선 집밖 나가는순간 미아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어쩔수 없을것이다.)


눈치빠른 녀석은 마당에 나가게 해달라고 조르던것에서 이제는 나가서 집안문이 닫히는것이 가장 두려운것이 됐다. 놀면서도 알아서 흙투성 안되게 몸가짐을 조심한다. 안락도 보장받고 자연의 환경도 누리며 집안밖을 동시에 드나들려면 규율을 따라야 함을 (목욕이라는) 교훈을 통해 배운거다. 카르마를 녀석이 아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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